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1 장 재림소망의 그릇된 징조들
 그리스도의 다니엘 9장 27절의 해석. 다니엘 9장 27절의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의 세번째 약점은 다니엘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그분 자신의 시대 직후에 그리스도께서 적용하신 것을 무 시하는 것이다.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언은 누가에 의해 “군대에 에워싸운 예루살렘”(눅 21:20)으로 분명히 의역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이 의역은 그리스도에 의해 사용된 유대적 표현인 “멸망의 가증한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이스인 독자들을 위해 기록하였기 때문에 누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212.1)
 그리스도의 예언이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2차적인 적용을 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의 우선적인 적용은 분명히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다. 더구나 그리스도께서 결국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한 반면 그의 재림 직후에 그것의 재건에 대해서는 결코 암시하지 않았다. (212.2)
 위의 고려들은 다니엘 9장 26, 27절마태복음 24장 15, 16절의 예언이 환난 성전의 재건에 대해 세대주의의 어떤 신조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어떠한 예언적 뒷받침이 없는 것 외에도 이 신조는 우리가 이제 간략히 언급할 몇몇의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반대들을 무시한다. (212.3)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에 대한 반대들.
 신학적 반대들. 신약 성서는 새로운 성전에 대해 많이 말하였다. 그러나 그 실현은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에 석조 건물의 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과 하늘의 봉사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그의 임재의 상징으로서의 성전(출 25:8)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스도께서 “이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그것을 세우리라”(요 2:19)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을 성전의 성취로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12.4)
 새 성전. 새 성전의 건축은 시온 언덕의 건축물이 아니요, 빈 무덤의 기적이었다. 그의 사망과 부활과 승천에 의해 그리스도께서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성소와 참 장막의 부리는 자”(히 8:2)가 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며 그의 성령을 통해 그들과 동거하시는(고전 3:16)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의해 낙성된 새 성전을 함께 나눈다. 그렇게 하여 신약의 새 성전은 시온산에 미래의 환난기에 세워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셔서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는 것”(엡 2:20)이다. (212.5)
 성전 제사의 끝. 환난 중에 예루살렘 성전이 문자적으로 재건되리라는 견해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성전 제사 제도의 성취와 끝마침에 관한 신약 성서의 가르침과 반대된다.(히 9:11~14, 8:13, 10:9). (213.1)
 이 반대에 대한 일반적인 세대주의적인 대답은 “환난 성전과 천년기 성전의 제사는 속죄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온전한 제사의 기념에 불과하다”74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의 사망의 기념으로서 주의 만찬을 세우셨으며 성경은 그것들이 “폐하여졌다”(히 8:13)고 선포할 때 왜 그리스도의 사망을 기념하기 위해 동물 제사가 다시 세워져야 하는가? (213.2)
 실제적인 반대들. 이미 언급된 신학적인 반대들에 부가하여 성전 재건에 대한 몇 가지 실제적인 장애가 있다. 이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옛날 성전의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모슬렘의 바위 돔(Dome)과 인접한 알-아카 회교사원의 존재이다. 유대인의 관념에 있어서 옛날의 자리만이 성전 재건을 위한 허용 가능한 위치이므로 성전 재건이 고려될 수 있기 전에 바위 돔이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모든 종교의 성역을 존중하는 공약을 범하는 것 외에도 이스라엘을 대항한 아랍의 성전(聖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실제적인 반대는 오직 메시야만이 성전을 재건할 수 있다는 정통 유대인들의 사이의 보편적인 믿음이다. 메시야는 아직 오시지 않았으므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할 자유가 없다.75 더욱이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을 고려할 수 있기 전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들이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제사를 재생시키는 개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대 유대주의는 제사 제도를 회개와 기도, 선행, 토라 연구, 자선, 공의 76 등으로 대체된 고대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적 표현의 형태로 생각한다. (213.3)
 위의 고려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 완전히 성서적 뒷받침이 결여된 세대주의적인 마지막 때의 각본의 또다른 그릇된 징조라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린제이가 예언한 대로 옛 성전이 80년대 중반에 재건되지 않았을 뿐더러 위에 언급한 중대한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반대 때문에 그 재건이 가까운 미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듯하다. (213.4)
 결 론
 본장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옹호되는 두 가지 잘못된 예언 해석의 원칙 즉 “철저한 문자주의”“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분”이 어떻게 마지막 사건의 선풍적이고도 의미 없는 각본의 구성에 이바지 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본 장에서 그 사건들 중 세 가지 즉 유대인의 팔레 스틴에의 회복, 휴거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그러한 사건들이 잘못되고 그릇 인도된 재림 징조임을 발견하였으며 그것은 긍정적으로 재림의 소망을 강화하기보다는 약화시키는 것이다. (213.5)
 공상적인 마지막 사건의 각본을 구성하기 위한 무책임한 성경 사용은 좌절로 이끌뿐이다. 그러한 좌절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믿음을 공상적인 마지막 사건 위에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세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적인 활동의 실제적 결과에 두어야 한다. (213.6)
 8, 9, 10장에서 본 바대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참된 재림 징조의 전 대미문적인 성취와 거룩한 심판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을 점검하여 볼 때 그릇된 재림 징조에 의해 잘못 인도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확실한 재림 징조들은 우리의 재림 소망—오늘날의 불확실함과 고통의 세계 속에 살도록 부름을 입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위로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소망,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고대하면서 거룩함과 경건의 생애를 살기 위한 동기-의 임박한 실현을 가리킨다. (214.1)
 각주
 1. 그 모습들은 할 린제이(Hal Lindsey) 자신에 의해 그의 책, 곧 1980s: Countdown to Amageddon(Toroto, New York, 1981), pp. 4, 11에서 주어졌다.

 2. Hal Lindsey, The Late Great Planet Earth(Grand Rapids, 1970), p. 54. Henceforth referred to as Planet.

 3. Planet, p. 54.

 4. 그의 책의 서문에서 린제이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의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1980년대의 10 년간은 역사의 마지막 10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n. 1) p. 1라고 썼다.

 5. Planet, pp. 56, 109, 110, 151~152.

 6. Planet, p. 153.

 7. Planet, pp. 56, 152~153.

 8. Planet, pp. 77, 153.

 9. 린제이는 러시아의 중동 침공과 로마 연합군의 반격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도표를 제공한다.

 10. Planet, p. 111.

 11. Planet, p. 157~160.

 12. Planet, p. 162.

 13. Planet, p. 175~179.

 14. 왈부어드(John F. Walvoord)의 몇권의 책은 Israel in Prophecy(Grand Rapids, 1962), The Millennial Kingdom(Grond Rapids, 1979) · The Rapture Question(Grand Rapids, 1957) ; The Return of the Lord(Grand Rapids, 1971)이다.

 15. Cornelius Vanderwaal, Hal Lindsey and Biblical Prophecy(St. Catherines, Canada, 1978), p. 8.

 16. Hal Lindsey(n. 1), p. 4.

 17. 세대주의의 등장과 확산에 대한 간단한 이해를 위해서 래드(George Eldon Ladd)의 The Blessed Hope. A Biblical Study of the Secand Advent and the Rapture(Grand Rapids, 1973), pp. 35~60을 참조하라.

 18. 채퍼(L. S. Chefer)는 Systematic Thealogy, 8 vols.(Dallas: Dallas Seminary Press, 1947)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변론적인 세대주의의 주장을 전개한다.

 19. 지도적인 세대주의자인 우드(Leen J. Wood)는 명백하게 말한다 ; “그리스도의 재림의 가장 확실한 징조는 현대국가인 이스라엘이다”(The Bible and Frutare Events〔Grand Rapid, 1973〕, p. 18).

 20. Herman Hoyt,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in Robert G. Clouse, ed.,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Dow ners Grove, Illinois, 1977), p. 66; also L. S. Chafer(n. 18), vol. 4, pp. 259, 288.

 21. Charles C. Ryrie, Dispensationalism Today(Chicago: Moody Press, 1965), p. 96.

 22. L. S. Chafer(n. 18), vol. 4, p. 288.

 23. 예를 들면 John F. Walvoord, Israel in Prophecy(Grand Rapids, 1962), p. 125; Charles Lee Feinlerg, “The Rebuilding of the Temple, ”in Prophecy in the Making, ed. Carl F. H. Henry(Carol Stream, Illinois, 1971), p. 109을 참조하라.

 24. J. Dwight Pentecost, Things to Come(Grand Rapids, 1964), p. 112.

 25. 세대주의적 예언 해석 방법의 가장 분명한 분석을 위해서 라론델(Hans K. LaRondelle)의 The Israel of God in Prophecy(Berrien Springs, Michigan, 1983)을 참조하라.

 26. 예를 들면, J. Dwight Pentecost(n. 24), p. 98; John F. Walyoord, “The Future of Israel, ”in Prophecy in the Making(n. 23), pp. 327, 341을 참조하라.

 27.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에 대한 장래의 분석을 위해 Lours A. De Cars, Israel Today:Fulfulment of Prophecy?(Grand Rapids, 1974), pp. 60~65을 참조하라.

 28. R. J. Zwi Werblowski, “Prophecy, the Land and the People,” in Prophecy in the Making(n. 23), p. 346.

 29. pp. 53, 34, 317, 261을 참조하라.

 30. Scofield Bible Correspondence Course as quoted in C. B. Bass, Backgrounds of Dispensationalism(Grand Rapids, 1977), p. 150.

 31. 밑줄친 부분 강조.

 32. John F. Walvoord, Israel in Prophecy(Grand Rapids, 1962), p. 125.

 33. Lewis Sperry Chafer, Dispensationalism(Dallas, 1936), p. 107.

 34. C. C. Ryrie, The Basis of the Premillennial Faith(Neptune, New Jersey, 1966), p. 136.

 35. J. Dwight Pentecast(n. 24), pp. 91, 465을 참조하라. 래드(George Eldon Ladd)는 이 견해를 “한 강력한 해석”으로 올바르게 분류했다(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Grand Rapids, 1974〕, p. 200).

 36. 밑줄친 부분 강조.

 37. F. F. Bruce in The New Bible Dictionary, ed. J. D. Douglas(Grand Rapids, 1979), p. 558.

 38. 예를 들면 왈부어드(John F. Walvoord)의 The Millennial Kingdom(Grand Rapids, 1979), p. 170을 참조하라. 리리(Charles C. Ryrie)는 “바울은 강력하게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을 공격했다; 그러므로 그가 특별한 축복으로 이 율법주의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새 창조의 법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기록했다(dispensa tionalism Today〔Chicago, 1965〕, pp. 139–140).

 39. 밑줄친 부분 강조.

 40. 밑줄친 부분 강조.

 41. 밑줄친 부분 강조.

 42. Leon J. Wood(n. 19), pp. 18, 22.

 43. Hal Lindsey, A Study Manual to the Late Great Planet Earth, pp. 11, 13, cited in Dave MacPherson, The Incredible Cover-up(Medford, Oregon, 1980), p. 126.

 44. Planet, p. 54.

 45. charles C. Ryrie(n. 21), pp. 154~155을 참조하라.

 46. Keith M. Bailey, “Israel: Nation of Destiny,” Christian Life(November 1967), p. 54; also Richard Wolff, Israel, Act III, The Bible and the Middle East(Wheaton, Illinois, 1967), pp. 44~45; James M. Gray, Prophecy and he Lords Return(New York, 1917), p. 23.

 47. 밑줄친 부분 강조.

 48. J. F. Walvoord in Prophecy in the Making(n. 23), p. 338. Also by the same author, Israel in Prophecy(Grand Rapids, 1962), p. 66.

 49. W. M. Smith의 기사, “The Second Advent of Christ, ”Christianity Today(Pecenber 22, 1967)을 참조하라.

 50. 이 견해의 방어를 위해서는 C. F. Baker의 A Dispensational Theology(Grand Rapids, 1972), p. 606을 참조하라.

 51. 위의 n. 43을 보라.

 52. Hal Lindsey, The Rapture: Truth or Consequences(New York, 1983), p. 24.

 53. Planet, p. 54.

 54. Hal Lindsey(n. 1), p. 11. The whole chapter 4 of The Late Great Planet Earth is devoted to this subject.

 55. Hal Lindsey(n. 52), pp. 1, 23.

 56. 그 이상은 Dare Mac Pherson, The Incredible Cover-Up(Medford, Oregon, 1980), pp. 49~50; 또한 Hal Lindsey(n. 52), pp. 169~172에 보도되었다.

 57. Ibid, p. 85.

 58. 전환란주의의 전개에 대한 간략하지만 유익한 조사를 위해서는 Richard R. Reiter의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the Rapture Position,” The Rapture. Pre-, Mid-, or Past—Tribulational, Symposium(Grand Rapids, 1984), pp.24~34을 참조하라.

 59. See also Norman F. Douty, Has Christ’ Return Two Stages?(New York, 1956); alexander Reese, The Approaching Advent of Christ(Grand Rapids, 1975).

 60. Dave MacPherson(n. 56), p. 125.

 61. John F. Walvoord, The Rapture Question(Grand Rapids, 1957), p. 50.

 62. C. C. Ryrie(n. 21), p. 159.

 63. Planet, p. 143.

 64. Ibid.

 65. 밑줄친 부분 강조.

 66. John F. Walvoord,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Chicago, 1966), p. 103.

 67. Thomas S. McOall, “Problems in Rebuilding the Tribulation Temple,” Bibliotheca Sacre(January 1972), p. 79.

 68. Planet, p. 57.

 69. “Israel: Things to Come,” Christianity Today(December 22, 1967), p. 35.

 70. The Christian and Christianity Today(August 4, 1967), pp. 7–8, cited in Christianity Today(n. 69), p. 35.

 71. John F. Walvoord, The Rapture Question(Grand Rapids, 1957), p. 25.

 72. J. B. Poyne, “The Goal of Daniel’s Seventy Weeks,”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June, 1978), p. 109을 참조하라.

 73. 단 9:24~27의 교차대구법의 분석을 위해서 J. Doukhan, “The Seventy Weeks of Daniel 9:An Exegetical Study,”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Spring, 1979), pp. 1–22 ; W. H. Shea,“ Poetic Relations of Time Periods in Dannel 9:25,”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Spring, 1980), pp. 59–639 참조하라.

 74. John F. Walvoord(. 32), p. 125.

 75. A. Cohen, Everyman’s Talmud(New York, 1949), pp. 354–355 ; Moses Buttenweiser, “Messiah,” The Jewish Encyclopedia, VIII(1904), p. 511을 참조하라.

 76. 히어쉬(Emil G. Hirsch)는 설명한다 ; “개혁 유대주의는 그들의 종교 의식에 맞지 않는 희생과 피예식에의 대한 기도서의 언급을 생략해 버렸다”(“Sacrifices,” The Jewish Encyclopedia, X〔1905〕、p. 628.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