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1 장 재림소망의 그릇된 징조들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환난을 경험한다. 계시록 22장 16절에서 예수께서는 교회를 위해 이 증거를 가진 그의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신다고 주장한다. 만약 교회가 이 책에 묘사된 모든 사건(계시록 4장부터 19장)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면 천사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그 기별들이 교회들을 위한 증거가 될 수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계시록에서 교회가 마지막 환난동안 사단의 세력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는 않는다. 묵시적인 7재앙에 의해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람을 위에 무분별하게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세 경배하는 자들 위에”(계 16:2, 14:9, 10 참조) 선택적으로 부어진다. (209.2)
 고대 이스라엘이 열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렸듯이(출 11:17)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거룩한 진노가 악한 자 위에 내릴 때 보호를 받을 것이다. 이 거룩한 보호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계 7:3) 하나님의 진노가 회개하지 아니한 자 위에 내릴 때(계 9:4) 보호를 받도록 하는 천사에 의해 계시록에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강림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이다(계 16:15, 19:11~21). 그리하면 계시록은 교회의 전환난적 휴거가 아닌 그리스도의 후환난적 강림을 묘사한다. (209.3)
 결론. 위에서 논의한 이유들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마지막 환난전에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은밀한 강림의 인기 있는 가르침은 성서의 뒷받침이 결여된 그릇된 재림의 소망으로 결론을 내린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큰 환난 후에 있을 독특한 사건으로 말한다. 그 때에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요, 산 성도들은 변화될 것이며 각 시대의 모든 믿는 자들은 주와 함께 있기 위해 승천할 것이다. (209.4)
 3. 환난시의 성전의 재건
 이전의 두 가지(유대인의 팔레스틴에로의 회복과 휴거)와 밀접히 관련된 세번째의 인기 있는 그릇된 재림 징조는 강력히 주장되어진 마지막 환난 동안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다. 솔로몬에 의해 처음 건축되고 후에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되고 헤롯에 의해 개조된 예루살렘 성전은 미래에 다시 두 번 재건될 것인데 첫번째는 7년 환란기 동안 유대인에 의해 그리하여 환난을 당한 성전이라 불리어짐—두번째는 예수께서 그의 천년 통치를 수립하기 위해 돌아오셨을 때 그리스도에 의해—그리하여 천년기 성전이라 불리어 짐—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209.5)
 우리의 연구 목적을 위하여 환난시의 성전의 재건은 많은 세대주의적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예수 재림의 임박성에 대한 하나님의 극히 중대한 예언의 징조로 생각되어지므로 그 강력히 주장된 견해를 고찰하게 될 것이다. (210.1)
 성전 재건의 때. 대부분의 세대주의자들에 따르면 환난 성전은 7년 환난 중에 재건되어야 한다. 유력한 세대주의자인 토마스 S. 맥콜(Thomas S. McCall)은 이 견해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때에 관한한 그 성전이 환난 중에 재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의도적으로 진술되었다. 이것이 계시의 총괄이다.”67 (210.2)
 이 결론은 네 개의 주요 성경절의 공상적 해석으로부터 이끌어 진다(단 7:26, 27; 마 24:15, 16; 살후 2:3, 4; 계 11:1, 2). 이 본문들은 로마인 적 그리스도가 일어나 한 이레 즉 마지막 7년 환난 기간에 이스라엘과 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추측한다. 이 언약의 결과로 성전의 건축과 희생 봉사 제도의 재건이 있게 될 것이다. (210.3)
 그 환난기의 중간 시점에 로마인 적그리스도가 유대인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이라 주장하며 성전의 제사를 폐함으로 멸망의 미운 물건이 되어(단 9:27)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측된다. 성전의 재건은 휴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휴거는 성전이 처음으로 재건되고 적그리스도에 의해 더럽혀지는 마지막 7년 환난기의 출발점을 가리킨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10.4)
 할 린제이의 시간표. 할 린제이의 예언 시간표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1980년대의 중반 즉 1988년에 끝마치는 7년의 중심점에 완성되어져야 했다. 로마인 적그리스도가 휴거 직후에 이스라엘과 체결해야 했을 보호 조약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3년반에 그들의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 업무를 재건하도록 해야만 하였다(단 9:26, 27; 마 24:15, 16; 계 11:1, 2). 1970년에 린제이는 “대성전 중건의 이야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조속한 강림의 가장 중요한 예언의 징조가 우리 앞에 있다”68고 기록하였다. (210.5)
 성전 재건의 소문들. 아마도 환난 성전(the tribulation temple) 재건의 “예언”을 성취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도우려는 소망이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이 계획을 위한 건축 자재가 미국에서 은밀히 준비되어 왔다는 소문을 퍼뜨리도록 충동한 듯하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는 1967년에 “예 루살렘으로 보내어진 한 조립식 성전이 플로리다의 한 항구에서 보여졌다는 몇년 전의 보도가 널리 회자되었다”고 보도하였다.69 (210.6)
 1967년 영국잡지 더 크리스챤 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에 인디아나의 셀러스버그의 권위 있는 소식통으로부터 받은 한 기사가 실렸는데, 베드포드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석으로 추측되는 기차 500량분의 화물이 정확한 크기로 재단되어 운송 중에 있고, 한 화물이 이미 이스라엘로 보내어졌다. 선적은 뉴욕의 26번 부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70는 것이었다. (210.7)
 그 모든 이야기는 이스라엘 정부와 인디아나 산업 소식통에 의해 단호히 부정되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시작된 제작물은 성전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공상적인 제작은 세대주의자들이 마지막 때의 예언으로 인식한 것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돕기 위한 그들의 비상한 관심을 반영한다. (211.1)
 환난 성전을 위한 성서적 뒷받침.
 단 9:24~27. 마지막 환난기동안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에 대한 다니엘 9장 24~27절에서 성서적 지지는 몇몇 예언적 구절 속에서 추구된다. 이것들 중 첫번째요, 최고의 것은 다니엘 9장 24절부터 27절에서 발견되는 70주일의 예언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에 포함된 한 예언을 두 개의 구분되는 예언으로 분리한다.71 26절에서 그들은 70주가 아닌 69주일에 메시야의 죽으심과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알리는 첫번째 예언을 발견한다. (211.2)
 27절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후 19세기 이상 뒤에 있을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에언하는 두번째 예언을 찾아낸다. 이 적그리스도는 구주 공동 시장으로부터 일어날 로마인 독재자로 추측되어 진다. 그는 한 이레 즉 70번째 이레의 7년 동안 유대인과 언약을 맺을 것이다. (211.3)
 이 언약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성전을 재건하게 하고 그들의 이전의 제사 제도를 다시 수립하도록 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7년 기간의 중간에(주일의 절반) 로마인 적그리스도는 일방적으로 그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그는 제사와 희생을 금지할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할 것이다(살후 2:4). 이 행위에 의해 그는 다니엘에 의해 언급(단 19:27)된 그리스도에 의해 인용(멸망의 가증한 것 마 24:15, 16)된 “미운 물건”이 될 것이다. (211.4)
 보증받지 못하는 시간차(Time-gap). 이 애매한 해석은 세 가지 중요한 결함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첫째로 그것은 69주와 70주 사이에 거의 20세기의 시간차를 소개하므로 70주일 예언의 통일성을 깨뜨린다. 가브리엘은 어느 곳에도 70주일을 구성하는 세 기간 즉 7주와 62주와 1주 가운데 간격을 시사하지 않는다. 이 세 개의 시간 단위는 그것들이 24절에서 70주일의 한 기본적인 기간으로서 처음에 주어진 사실에 의해 나타내어진 바대로 하나님의 연속적이고 일관된 깨트릴 수 없는 통일성으로서 나타내어진다. (211.5)
 정교한 반복. 두번째 약점은 다니엘 9장 24절부터 27절에서 “정교함을 가진 반복”의 히브리 문체의 형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72 최근의 연구는 2627절 사이의 축어적 일치성은 후자가 전자를 교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6절에서 발견되는 메시야 대(對) 파괴자의 형태는 27절에서 메시야 대(對) 황폐케 하는 자로 반복된다. 그러나 27절은 의미 심장한 지식을 더한다. 26절에서 단순히 끊쳐지는 메시야는 27절에서 많은 사람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약속을 굳게 하고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73 이 두 행동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의 만찬을 세우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하고(마 26:28) 그의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을 둘로 나눔을 통해 제사 제도의 효력을 끝마치셨을 때(마 27:51; 히 10:9 참조) 성취되었다. (211.6)
 26절에서의 성과 성전을 황폐케 하는 자는 27절에서 “황폐케”하기 위하여 미운 물건의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다. 이 말에 의해서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에 의한 성전의 완전한 파괴가 묘사되었다. 그렇게 하여 26절27절 사이의 히브리식 평행성은 27절의 황폐케 하는 자가 구주 공동 시장으로부터 나와서 환난 성전을 파괴할 마지막 때의 로마인 독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26절에서 암시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한 동일한 인물인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이다. 유감스럽게도 세대주의자들은 한 예언을 둘로 나누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한 과거의 로마 황제를 현재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한 문자적인 성전을 황폐케 할 것으로 추측되는 미래의 적그리스도로 변형시켰다.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