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자들은
파루시아란 말이 바울에 의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절에서 은밀한 휴거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3장 13절에서 바울은 모든 그의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것—세대주의 자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두번지 국면을 묘사하시기 위해 사용되었다.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서
파루시아를 적그리스도의 파멸을 초래할 그리스도의 재림—세대주의자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두 번째 국면에 있을 것으로 생각됨—을 말하기 위해 그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사하게 아포칼립스와
에피파네이아란 말은 전환난주의자들의 휴거(
고전 1:7; 딤전 6:14)와 재림 혹은 그리스도의 강림의 두번째 국면(
살후 1:7, 8, 2:8)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그 복된 소망의 용어는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상호 교환 가능하게 사용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두 국면을 분리하기 위한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아니한다. 이 세 용어들이 믿는 자의 소망의 목적으로 보여지는 그리스도의
후환난적 귀환을 묘사하기 위해 분명히 사용된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면
파루시아는
마태복음 24장 27, 37, 39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서 논박할 수 없게
후환난적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7절의
아포칼립시스와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서의
에피파네이아도 똑같다. 그러므로 복된 소망의 용어는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은밀한 강림과 7년 환난의 뒤이은 가시적이고 영광스런 강림에 의한 유대인의 천년 왕국을 수립할 가능성을 배제한다. 사용된 용어들은 명확히 신자들에게는 구원과 불신자들에게는 보응을 가져올 단일의 분리할 수 없는
후환난적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2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