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1 장 재림소망의 그릇된 징조들
 레몬 J. 우드(Leon J. Wood)는 성서와 미래의 사건(The Bible and Future Events)이라는 책에서 이 인기 있는 견해를 적절히 설명한다. “가장 분명한 그리스도의 강림의 징조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이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간표가 그 시대의 결실을 맺기 전 이스라엘이 여러 해 동안 그 땅에 존재하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거기에 있는 그 나라와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대해 설명한 조건들에 그것을 적합하게 하는 많은 요소들과 함께 ∙∙∙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이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다.”42 (193.6)
 할 린제이는 “1948년에 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사건들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강림의 시기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예언적인 징조이다”43라고 단언하므로 훨씬 더 특이하다. 그는 심지어 “1948년으로부터 40년을 전후하여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44고 1970년에 담대하게 예언하기까지 하였다. (193.7)
 한 주목할 만한 사건. 간단히 말해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에 귀환한 것과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은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과 유대인들이 중동에서 발생한 이 사건에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타당한 예언 해석인가? (194.1)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올 도덕적이며 역사적 권리를 가졌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섭리로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을 인도하셨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믿는 것은 꽤 타당성이 있지만 이러한 확신이 성경 예언에 합법적으로 기초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 신조를 지지하는 증거로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예언의 일부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194.2)
 구약의 회복의 예언들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먼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영원한 분깃으로 모든 가나안 땅을 그의 자손들이 상속하게 될 것”(창 17:8 참조 12:7, 13:15, 15:18) 이라는 약속이 있다. 부가적으로 몇몇 선지자들이 열국으로부터(렘 29:14)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번째로 그들의 본토로 “귀환할 것”(사 11:11)을 예언한 약속들이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예언된 이 귀환이 불신 상태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겔 36:24~26 참조; 렘 30장)고 믿는다. 그들은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서 이러한 신조에 대한 확증을 발견한다. (194.3)
 그 회복의 약속들은 1948년에 유대인들에 의한 팔레스틴 일부의 극적인 회복과 함께 처음으로 성취되기 시작한 무조건적 문자적 약속으로 간주된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인들에 의한 가나안 땅의 점령과 탈취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영토에 대한 약속들을 성취시키지 못하는 듯하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땅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한 분깃”(창 17:8)으로 약속하셨다. 둘째로, 이스라엘인들은 과거에 “애굽강으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창 15:18)의 약속된 모든 땅을 결코 소유해 보지 못하였다.45 (194.4)
 하나님의 약속의 조건적인 본질. 하나님의 영토의 약속들에 대한 이상의 문자적 해석은 무엇보다도 그 약속들의 조건적인 본질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땅에 관한 약속은 그의 언약의 요구에 대한 계속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창 17:9 참조, 18:19). (194.5)
 아브라함의 언약에 있어서 땅에 대한 약속의 조건적인 본질은 성경에서 분명히 인정된다. 예를 들면 가데스의 반역 후 모세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불순종이 그들의 부모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상기시켰다. “이 악한 세대의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신 1:35 참조 민 14:22, 23 참조). (195.1)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순종 때문에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을 내다보면서 모세는 그 백성에게 “너희 조상에게 맹세한 언약을 기억하시는”(신 4:30, 31, 30:2, 3; 왕상 8:47~50 참조).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하였다. (195.2)
 하나님의 약속의 조건적인 본질은 아마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고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예레미야 18장 9, 10절에 아마도 가장 잘 묘사되어 있는 듯하다. 이 구절에서 성립된 원칙은 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예언은 순종과 불순종을 바탕으로 한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신자들이 그 조건을 성취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것에는 조건이 있으며 아무도 그 성경절에서 “만약”이라는 것을 제거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이다. (195.3)
 불신 상태에서의 귀환. 세대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틴 귀환을 예언한 하나님의 약속의 본질인 조건적인 원칙을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불신의 상태로 그 땅으로 다시 모아져야 할 것을 변증하기 위해 에스겔 22장 17절36장 24절부터 28절과 같은 구절에 호소한다. 그들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국가적인 회개는 그들이 그들의 땅에 회복되 기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46 다시 말해 유대의 영토의 회복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회개를 선행한다고 추측한다. (195.4)
 불행하게도 이 신조는 어떠한 성경의 본문의 곡해에 기초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 모으고 ∙∙∙ 내가 나의 노와 분으로 너희를 모아”라는 에스겔 22장 19, 20절에서 발견되는 진술이 현재 유대인들이 불신 상태에서 팔레스틴으로 이주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취하여졌다. (195.5)
 이 해석은 최소한 두 가지 이유에서 잘못되었다. 첫째로 위의 구절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열국 가운데(15절) 흩어버리도록 하신 그들의 죄를 열거함으로 그들의 미래 상황이 아닌 현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노와 분으로 유대인들을 모으는 것은 불신 가운데서 그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요 역사적으로 바벨론의 침입과 포로를 통해 발생했던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이다. (195.6)
 이 구절은 이 모으시는 목적이 심판이지 회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것은 주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구절에서 분명해진다.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부은즉 너희가 그 가운데 녹으리라”(겔 22:21). 그러므로 에스겔에서 모으는 것은 예레미야에서 모으는 것과같이 회복과 구원이 아닌 심판과 멸망을 목적으로 한다. (195.7)
 재소집과 정결. 불신 중에서의 귀환설을 지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두번째의 “본문 증거”에스겔 36장 24, 25절이다. (195.8)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영토 회복의 약속이 이 구절에서 백성들의 영적 정결을 선행한다는 사실은 먼저 유대인들이 불신 중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것이요, 그 후에 그들이 정결케 되고 구속될 것을 의미하기 위해 취해졌다. (196.1)
 이 결론은 그 구절로부터 유추될 수 없는 인위적인 연대기에 기초되어 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며 차후의 기간에 그들을 정결케 하실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두 가지 일, 즉 그가 그들을 다시 모아 정결케 할 것을 선포한다. 두 사건이 정하여지지 않은 한 긴 시간에 의해 분리된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주어지지 않는다. (196.2)
 그 장의 문맥은 영적 정결이 다시 모으는 것을 뒤따르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시 모으는 일과 정결이 동시에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하게 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겔 36:33). 이와같은 관점은 에스겔 36장 24~28절이 20세기의 유대인들의 불신 상태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것에 관한 아무런 증거도 제공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196.3)
 두 성서적 원칙들. 약속의 땅에 대한 성서의 두 기본적인 가르침은 이 결론을 더 잘 지지한다. 첫째,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신 때문이었다(민 14:23; 시 95:7, 11).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이 가나안 땅에서의 정치적인 안식이든(히 3:18, 19, 4:6~8) 구원의 영적 안식이든(히 4:3, 9, 10) 안식일이 상징하는 안식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불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되풀이 했다. 불신이 가나안 땅에 최초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면 불신은 가나안 땅에 다시 들어가는데 수반되는 조건을 거의 제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언약의 특권으로 불순종이 아닌 순종에 상을 주신다. 선지자가 예언한 회복은 성격상 조건적이다. “만약 저들이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회개” 한다면(왕상 8:48; 참고 호 11:10, 11; 신 30:2, 3, 9, 10)47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다.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