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경험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렘 36:2)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가 수년 동안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하신 것을 모두 성령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기억하고 기록했을 거라고 보긴 어렵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였다(4절). 그런 다음 “바룩이∙∙∙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게 했는데(10절), 그것이 “야훼의 말씀”이었다고말한다(8, 11절). (64.5)
 이렇게 선지자들의 말을 야훼의 말씀으로 간주한 것은 선지자가 야훼의 말씀을 글로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영감]을 받고 그분의 지도를 받았음을 강하게 내비친다. 마찬가지로, 선지자 미가가 자신의 기별을 거짓 선지자들의 기별과 대조하면서 “오직 나는 야훼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고 외쳤을 때도 구두로 한 말뿐 아니라 기록된 말을 거기에 포함시켰다. (64.6)
 여호야김 왕이 두루마리를 불경스럽게 태웠을 때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유다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하였”다(렘 36:32). 이것이 이른바 예레미야서의 증보된 제2판이었다. (64.7)
 예레미야의 경험을 보면, 선지자들은 단순히 필사 자가 하는 것처럼 그들의 책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전존재가 거기에 관련되어 그들이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지도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선지자로 일컬어지지 않은 성경의 기자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많은 잠언과 아가의 저자인 솔로몬은 자신이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고(전 12:9) 또한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10절)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눅 1:3)고 말한다. 이렇게 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하고 문헌을 조사하는 일은 솔로몬이나 누가가 기록한 책들의 편찬에 중요했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이와 유사한 과정이 성경의 다른 책들을 편찬할 때도 있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64.8)
 인간 기별자가 말하고 기록할 때 언제나 성령의 감동하심을 의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경험과 관련지어 보면 그런 의식을 가졌을 것이라는 암시가 빈번하게 발견된다. 성경의 정보를 주의 깊이 연구해 보면, 영감 받은 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글을 읽은 다른 이들도 그런 소통을 통해 거룩한 영의 특별한 감동을 인식했음을 알수 있다(모세, 민 12:7, 8; 여호수아, 신 34:9; 사무엘, 삼상 3:19; 다윗, 삼하 23:2; 에스겔, 겔 2:2; 다니엘, 단 9:22; 10:9-11; 미가, 미 3:8; 베드로, 행 11:12; 바울, 고전 7:40; 요한, 계 1:10). (65.1)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이 한 말을 두고 어떤 이들은 바울이 영감을 받아 한 말과 단순히 개인적인 견해로 한 말을 구분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가 10절에서는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 말하고 12절에서 가서는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다시 25절에서 그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내] 의견을 고하노니”(고전 7:25)라고 말한다. 사실 이 본문들이 다루는 것은 영감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다. 바울이 10절과 12절에서 대조하려는 점은 전자의 경우에는 주의 명시적인 명령을 언급할 수 있지만(마 5:32; 19:1-6) 후자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2절이나 다른 곳에서 준 이런 권면도 전체적으로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결혼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한 이 강론을 끝맺음하면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40)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께서 성경의 각기 다른 책들의 기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지도하신 과정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 기자들은 전인격이 온전히 관련된 인간존재로서 기능하였다. (65.2)
 2. 영감의 대상
 영감의 대상은 ‘누가 또는 무엇이 영감 받았는가?’라는 질문과 관계된다. 영감은 선지자나 사도 같이 하나님이 택하신 특정한 개인과 관련되는가, 아니면 이들이 구두로나 글로 전달하는 메시지, 구체적으로 말해 성경과 관련되는가, 아니면 성경이 발생된 신앙 공동체와 관련되는가? 처음 두 선택사항은 오랫동안 논란의 주제가 되어 왔고 세 번째 선택사항은 특히 근자에 들어와 부상하였다. (65.3)
 이 논문의 앞부분에서 제시된 성경적 증거는 하나님이 택하신 특정한 개인들을 성령이 역사하는 일차적인 장(場)으로 가리킨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야훼의 신이 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오직 나는 야훼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 (65.4)
 영감이 영감 받은 기자에게 임했다고 보아야 하는지, 그가 기록한 성경에 임했다고 보아야 하는지는 대체로 논의가 불필요한 난제이다. 영감의 일차적인장(대상)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성령께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말하고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은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들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지혜를 따라 기록된 성경의 일부로 인정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들을 쓸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따라서 그가 기록한 편지들도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성경의 일부가 되었다. 영감의 일차적인 장은 사도이고 그 영감의 결과가 성경이다. (65.5)
 영감의 장(대상)을 말하는 세 번째 선택사항 곧 성경이 기원된 신앙 공동체는 현실성이 없는 견해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 개념은 주로 특정한 성경 연구 방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학자들은 문학적 역사비평 성경연구 방법을 통해 많은 성경의 책이 오랜 과정의 마지막 산물인데 그 과정에 알려지지 않는 작가, 편찬자, 편집자등이 참여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현상을 근거로 이들은 대체로 분명한 역사적 상황에서 살았던 특정 저자가 성경의 책들을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이해를 거부했다. 이런 저자들이 영감을 받은 게 아니라, 그런 저술의 최종적 형태를 얻게 된 특정 신앙 공동체가 영감을 받아 성경의기별의 타당성과 권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참조 성경 해석 IV. F, G). (66.1)
 편집하고 편찬한 증거가 있다 해도 대부분 영감 받은 저자 자신이나 그의 절친한 동료나 때로는 후대의 영감 받은 저자가 그런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모세의 책들을 편집하고, 신명기의 마지막 절들 같은 곳에서는 어떤 사항을 추가했다. 어쨌거나 영감의 장이 성경의 저자라기보다는 어떤 신앙 공동체라고 말하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성경 자체의 진술을 지지 해야 한다 영감의 장(場)은 영감 받은 저자이다. (66.2)
 3. 영감의 정도(범위)
 “영감의 정도”라는 말은 성경이 어느 정도 영감 받았는지를 묻는 것과 관련된다. 성경의 단어 자체도 영감 받았는가? 아니면 단어 배후에 깔려 있는 사상만이 영감을 받았는가? 성경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영감을 더 많이 받았는가? 어떤 부분은 전혀 영감 받지 않았는가? 성경은 전체적으로 영감 받았는가 아니면 각 부분이 차등적으로 영감 받았는가? (66.3)
 특별 계시와 영감에 대해 논의한 내용(. B;IV. B)에 비추어 볼 때, 계시-영감의 과정에는 여러 측면이 있어서 접할수 있는 정보만으로는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하지만 단어뿐 아니라 사상까지도 이 과정에 관련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꿈과 이상 및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영감 받은 사람은 시각적인 형태나 구두 형태로 사상을 받았다. 그런 다음 이들은 그런 사상을 받은 그대로 충실하고 진실하게 전달했다. 때때로 이들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신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기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66.4)
 사상을 어떻게 받았는지에 상관하지 않고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임을 강조했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선지자들의입에 두실 거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인용했다(신 18:18;참조 렘 1:9). 예수님은 성경을 가리키면서 신명기 8:3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고 천명하셨다. (66.5)
 성경의 저자들이 기록한 말은 분명하게 인간의 단어들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렘 1:1) 또는 “솔로몬의 잠언”(잠 1:1) 같은 표현으로 자신들의 책을 시작한다. 사상 그리고 때론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주어져 인간 저자들이 자신들과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단어로 표현했다. (66.6)
 참으로 성경은 온전히 인간적이고 동시에 온전히신적인 것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단지 인간적인 것이고 다른 부분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사상은 성경 기자들이 그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에 위배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말은 부분 영감(partial inspiration)을 지지하는 어떤 개념도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에는 영감의 차등을 지지하는 어떤 암시도 없다. 성경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할 수는 있지만(예수님은 마태복음 23:23에서 “율법의 더 중한 것”에 관해 말함),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영감을 더 많이 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성경을 받아들이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살전 2:13) 받아들인 것처럼 해야 한다. (66.7)
 D. 영감의 결과
 영감은 무엇을 이루는가? 성령께서 영감 받은 저자에게 끼친 특별한 영향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성령의 감동하심은 성경을 세상의 다른 모든 책과 다르게 만드는 특질을 그 저자들의 책에 부여하는가? 수 세기 동안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영감의 독특한 특성과 속성과 결과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마지막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들이 제기한 이견과 갈등들은 이 논문의 말미에서 역사적 개관을살펴볼때 논의할 것이다. (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