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13 장 안식년과 희년에 나타난 구원의 표상
 4) B.C 457년이 희년인 증거가 무엇인가?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유다의 성읍 46개를 취하고 히스기야를 조롱 하였다 이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굵은 베옷을 입고 구원을 요청한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보내 징조를 주셨다. (291.2)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금년(안식년)에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이 년(희년)에는 또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제 삼 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사 37:30~31; 왕하 19:29). (291.3)
 이사야가 말한 금년은 안식년이므로 땅에서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 이년은 희년이므로 또 다시 거기서 난 것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안식년과 희년이 중복된다는 말인 것이다. 그리고 희년의 다음에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고 수확한 것을 먹을 것을 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히스기야 14년은 B.C 701년이다. 그러나 유대민력으로 계산하면 702년 가을부터 701년 가을까지 이다. 그러므로 “금년”은 702년 안식년이고 제 이 년인 희년이 시작되는 해였다. (291.4)
유다 히스기야 (709-689 B.C, 티쉬리 월력, 즉위년 방식)3
709 708 707 706 705 704 703 702 701 700 699 698 697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292.1)
 확인한 것처럼 기원전 702년은 안식년이었고 희년이 시작되었던 해였다. 702년에서 5번의 희년을 더한 수 245년을 빼면, 457년은 희년이 된다(702-245=457).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의 희년은 한 번도 지킨 사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유대인들 사이에 소유지의 불가양도법이라는 법이 항구적으로 준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기업이 본래의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희년이 오기 전에라도 근족은 기업을 되찾아 줄 수 있었다. 룻기서는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룻 2:20)라고 말한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예수님을 예표(豫表) 하였다. (292.2)
 그리스도는 근족이 되어 오셨다. 그는 ‘기업 무를 자’로 오셨다. (292.3)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70이래에 관한 예언은 우리의 고엘(Goel) 즉 ‘기업 무를 자’가 이 땅에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시고자 오시는 구속의 시간표였다. 이 시간표대로 예수님은 서기 27년 가을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시므로 메시아가 일어나리라(“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는 예언을 성취시키셨다. (292.4)
 이사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곧 ‘기업 무를 자’ 이며 ‘희년’을 성취 하시는 메시아임을 선포하였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 ”(사 61:1~2). (292.5)
 예언은 메시야를 통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눅 4:16~19)예수님은 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죄에서 풀어주시는 기업 무를 자, 곧 해방자의 일을 하셨다. 이것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경험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경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들은 죄의 종살이로 안식이 없는 인류에게 안식을 찾아주기 위한 창조주요 구속주의 사랑이 가장 극대화된 제도였다. (293.1)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근족이 되시기 위해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4~16). 우리의 근족이시며 우리의 ‘고엘’(Goel)이신 그분은 곧 오신다. 희년을 알리던 그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신다. (293.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라”(살전 4:16). (293.3)
 참고
 1) 이외에도 ‘은혜’(라쫀)의 의미는 ‘호의’(favour), ‘마음에 드는(~들다)’(wil), ‘받아들임’(acceptable), ‘즐거움’(delight) 등의 의미를 지닌다.

 2) 시대의 소망(Desire of Ages), p. 652.

 3) 에드윈 R. 딜레(한정건 역), 히브리왕들의 연대기(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기독교문서선교회, 서울 1990), p. 247 (2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