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13 장 안식년과 희년에 나타난 구원의 표상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스 7:7). (287.4)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스 7:25). (288.1)
 1) 2300주야의 기산점이 된 B.C 457년은 안식년 이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느헤미야는 기원전 444년에 돌아와 443년에 안식년을 지켰다. 어떻게 안식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느헤미야 8장 14절에는“칠월 절기에 초막”절을 지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초막절에“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느 8:14~18)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288.2)
 신명기서에 안식년의 초막절에는 율법책을 읽으라고 명하였다.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신 31:10~11)라. (288.3)
 또 다른 증거는 느헤미야가 그 초막절을 지키면서 특별한 부흥을 경험하고 그 달 24일에 다시 모여서 개혁을 단행하면서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느 10:31). (288.4)
 443년이 안식년 이었다면 450년, 457년 역시 안식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B.C 457년은 안식년이 되는 것이다. 이 457년을 기점으로 유대인을 위한 은혜의 시기가 주어지고 메시야의 출현과 속죄의 희생의 연대가 정해져 있었다. (288.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5~26). (288.6)
 가브리엘의 설명에는 메시야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나기까지는 B.C 457년부터 7이레와 62이레가 걸릴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이 금지될 것이라고 하였다. 보라! 얼마나 예언이 놀랍게 성취되었는가! 70주 중에 7주와 62주가 지난(69주) 후, 즉 483년(B.C 457~A.D 27) 후에 메시야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났다. 그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예수님은 69이레(483년)가 지난 서기 27년 가을에 물과 성령의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사셨다. 그리고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요(27절)라는 예언처럼 3년 반이 지난 31년 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예언이 반 이레(안식년의 반)라고 한 것에 주목하라. 이레가 이미 안식년이 포함된 의미이기 때문에 반 이레는 두 안식년(27년과 34년)를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두 사이인 A.D 31년에 돌아가신 것이다. 두 안식년 사이로 표현된 서기 31년은 참으로 의미 깊은 해였다. 유대인을 위한 특별한 은혜의 기간이 마쳐지면서 구약 4,000년이 마치는 해였다. (289.1)
 “그리스도께서는 두 제도와 그 의식에 따르는 두 큰 축제 사이의 전환점에 서 계셨다.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속죄물로 지금 막 바치려고 하였으며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사천년 동안 당신의 죽음을 지적하여 온 예표(豫表)와 의식의 제도를 끝내실 것이었다.”2 (289.2)
 2) 서기 34년은 안식년이며 희년이 시작되는 해였다.
 유대력(티쉬리월 력)은 가을~가을(7월~7월)을 1년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서기 34년은 안식년이면서 동시에 희년이 시작되는 해이다. 희년은 대속죄일이 마치는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도 이미 앞서 설명한바 있다. (289.3)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자신의 사명이 희년 즉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사명은 희년의 자유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290.1)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6~19). (290.2)
 상기 말씀은 이사야가 메시야의 사명에 관하여 예언한 것이다. 특별히 이사야가 사용한“은혜의 해”는 희년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이다. (290.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290.4)
 메시야의 사명이 희년으로 설명된 것은 구속사의 큰 의의가 있다. 안식일 제도, 대속죄일의 “큰 안식”(레 16:31), 안식년, 희년의 기초에는 안식일에 종들과 육축들 까지도 누리는 자유와 은혜가 녹아있다. 무엇보다도 죄에 포로 되고 죄에 갇혀있는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 은혜의 혜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노예 석방 제도는 오직 안식년과 희년에만 있었다. 그리고 자유라는 말은 안식년과 희년을 특징짓는 말이었다. (290.5)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 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 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출 21:2). (290.6)
 3) 7과 7의 배수들로 이루어진 제도들은 구속의 시간표를 예시한다.
 안식일, 일곱절기, 안식년, 희년은 예수님의 구속의 시간표를 예시하여 준다. 유대인을 위한 70이레 즉 490년의 기간은 ‘10번의 희년(49X10) 기간을 말한다. 유대인의 구원의 기간은 완전했다. 희년으로 끝나도록 계획되었다. 희년을 계산할 때는 50년째로 하지만 희년은 안식년의 첫해로 다시 계산되기 때문에 49년을 주기로 희년이 오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계산을 하면 490년이 마치는 A.D 34년이 안식년이며 동시에 희년이 시작되는 해였다면 490년의 기산점이 되는 B.C 457년 또한 안식년이고 동시에 희년이 시작되는 해가 되어야 한다. 한 해에 안식년과 희년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는 유대민력(티쉬리월 력)이 가을(7월, 우리 달력 9-10월) 부터 가을까지를 한 해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