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의 첫 장은 엘리사벳과 마리아와 사가랴의 노래에 드러난 예언의 은사를 보여 준다. 사복음서는 모두 침례자 요한의 선지자적 사역을 기록하고있다. 예언의 은사는 사도교회 내내 활동적으로 남아 있었고, 1세기가 끝날 무렵 계시자 요한의 사역에도 나타나 있다. (718.1)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중에 선지자들을 세우셨다고 독자들에게 두 번이나 말한다(고전 12:28; 엡4:11).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엡 2:20). 이 선지자들은 신약의 선지자들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에베소서 3:4, 5에서 말하기를 성령께서 이전 세대에는 알지 못하던 그리스도의 비밀을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다고 하였다. (718.2)
에베소서 2:20의 헬라어 문장 구조와 3:5의 문장 구조는 사도와 선지자 둘 다 하나의 범주에 부합하거나 동일한 은사 즉, 사도는 또한 선지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신약에는 사도가 아니었던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아가보, 유다, 실라, 그리고 빌립의 네 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718.3)
빌립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영적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4:1-3).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방언이 통역된다면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은사와 동등하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5절)고 하였다. (718.4)
이 점에서 바울의 웅변적인 질문을 기억해야 한다. “다 선지자겠느냐∙∙∙.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30). 다시 헬라어 부정 부사(메)가 현재형 의문문에 사용되었다. 분명히 대답은 ‘아니오’이다. 따라서 비록 바울이 모든 사람이 선지자가 되어 예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모든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718.5)
이와 같은 이해의 기초 위에 고린도전서 14:29-33에 나오는 선지자는 구두 예언 선지자의 범주에 부합한다. 그들은 설교나 찬미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 그들에게 인상을 남긴 일의 한두 가지 생각을 나누기 원하는 그런 교인은 아니다. 이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들은 다른(호이 알로이) 선지자들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며, 만일 그것들이 수용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기별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히 이해되고 적응되어야 한다. (7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