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2편 성소의 기구 제 7 장 분향단과 그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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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향단 또는 분향단은 성소의 첫째 칸 안에 있는 휘장 앞에 놓여 있었다. 분향단은 사방 1규빗에 높이가 2규빗 되는, 모서리마다 뿔이 달린 상자였다. 분향단은 싯딤나무, 즉 다른 말로 조각목으로 만들어져 전체가 다 순금으로 입혀져 있었다. 단 윗면 주위에는 아름다운 금테를 둘렸는데, 금테 아래에는 고리들이 달려 있었으며, 그 고리에는 단을 옮기는 데 사용하는 채들이 있었고, 이 모두가 다 순금으로 입혀져 있었다(출 30:1~6). (62.1)
 단 윗면에 두른 금테 안쪽에는 거룩한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으며(출 30:8), 그곳으로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위에 놓인 향에서 향연이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향기는 성소 전체를 가득 채웠으며, 뜰의 경내 너머로 불어오는 미풍에 날려 널리 퍼지곤 했다. (62.2)
 네 가지의 향기로운 나무 진(津)과 수지(樹脂)들을 동일한 무게로 배합해서 만든 그 향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만들어졌다. 그 향은 매우 거룩한 것이었으므로, 무릇 냄새를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졌다(출 30:34~38). (62.3)
 오직 대제사장만이 여호와 앞에서 금향단 위에 향을 피우는 그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출 30:7~8). (63.1)
 지상 성소의 분향단과 그 향기로운 향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그 사업에 대한 예증이었다(히 8:5). 우리의 마음은 종종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명상해야만 한다(히 3:1). 모세가 성소를 짓도록 명령을 받았을 때, 그에게 하늘의 모델이 “보였으며,” 그는 그 모델에 대한 “한 그림자”를 지어야만 했다. 사랑받는 제자 요한은 계시 가운데서 여러 번이나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구주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는 그 영광스러운 금향단 곁에 하늘의 존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 거룩한 단 위에 바쳐진 그 향도 바라보았다. 그 보배로운 향기가 이곳 지상에서 투쟁하는 성도들의 가냘프고도 더듬는 기도들과 합쳐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영혼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는 그 향기가 합쳐진 후 그 기도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 기도들은 그 향으로 향기로워졌으므로 가납되었다(계 8:3~4).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그러나 성령이라도 그 향기로운 향이 더해짐이 없이는 순결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들의 기도를 제시해 줄 수가 없다. (63.2)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작별하기 위해 몸소 준비하고 계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고 보증해주셨다. 이름 속에 들어 있는 능력은 그 이름을 지니고 있는 개인의 인격에 있는 것이다. 귀하신 구주의 이름은 존귀함을 받고, 그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탄원은 하늘 조정에 가납되는데, 이는 예수께서 죄 없는 생애를 사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고후 5:21). 이 세상 임금은 예수에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 이는 예수께서 순결하시고 거룩하셨으며, 하나의 죄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가 아버지 앞에 가납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義)이다. (63.3)
 요한은 성도들의 기도들과 함께 그 향연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향기롭게 된 우리의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 아버지 앞에 바쳐진다. 계시 중에 있는 요한에게 그것은 그 기도들과 향연이 무한하신 분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는 연기구름처럼 보였다. 죄 없는 분인 예수의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탄원하는 법을 아는 성도는 가장 연약한 자라도 그의 요구에 따라 하늘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백만장자로 하여금 지상 은행의 자기 수표에 날인을 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과는 결코 비교될 수가 없다. (64.1)
 예수의 이름이 종종 아무런 의미도 없이 기도 속에 포함될 때가 있다. 수많은 기도들이 단순히 예배의 형태로 드려지지만 그 기도를 드리는 자의 머리 이상으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는 우주에 계신 하나님의 귀에까지 이르게 된다. 다윗은 그 향이 무엇을 표상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라고 기도했다. (64.2)
 매일의 봉사 중에서 향을 바칠 때처럼 제사장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그토록 직접 인도해주는 다른 어떤 요소도 없었던 것같이, 우리의 종교적인 봉사 중에서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열렬한 기도를 쏟을 때처럼 우리를 주님께로 그토록 가까이 인도해 주는 그 어떤 다른 요소도 없다. 실체에서와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 상달되었다(대하 30:27). (65.1)
 분향단 위의 향이 새 것으로 교체되는 아침과 저녁 시간마다 뜰에 있는 번제단 위에서는 어린양이 번제물로 태워졌다(출 29:38~42). 금향단이 “끊임없는 중보의 제단”으로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상징하고 있었으며, 반면에 번제단은 “끊임없는 속죄의 제단”으로서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것, 즉 죄를 제거하고 소멸하는 것을 상징해 주고 있었다. (65.2)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어린양은 온 회중을 위한 온전한 번제물로 바쳐졌는데, 그것은 죄에서 떠나 자신들을 여호와께 전적으로 바치고자 하는 그들의 소원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기도는 향내 나는 향기와 함께 제단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65.3)
 고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성전 가까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번제를 드리는 시간에 함께 모여들곤 했는데, 종종 “모든 백성”“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기도(눅 1:10) 하였다. 가정에서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의 습관은 바로 이 표상적인 예배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진실한 이스라엘인은 아침과 저녁마다 그 향이 피어오르는 그 성전 쪽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곤 했다. 요세푸스(Josephus)는 그 향이 저녁에 해가 넘어갈 때, 그리고 아침에 해가 뜰 때 드려졌다고 말한다. (65.4)
 그 표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그 표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 성소에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다함없이 공급해주신다. 표상에서 향이 언제나 위로 올라가는 것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투쟁하는 영혼이 도움을 얻고자 부르짖을 때, 또는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받은바 그 도움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그날의 의무가 너무나 큰 것처럼 보일 때, 그 무거운 짐을 진 영혼은 그 표상 중에서 매일 아침에 분향단 위에 새로운 향이 올려 놓인 것과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그 한 날을 위하여 실체적인 하늘 성소로부터 도움이 이르게 될 것을 상기할 수 있다(신 33:25). 저녁에 한 날의 일과를 반성하면서 그날에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것을 발견했을 때, 거기엔 복스러운 위로가 있으니, 이는 우리가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할 때,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향기로운 향이 우리의 기도에 더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상에서 그 향연이 제사장을 감쌌던 것처럼(레 16:13) 그리스도의 의가 그 한 날의 과오들을 가리어 줄 것이며, 우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다만 흠 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만을 바라보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의 특권을 좀 더 충분히 깨닫는다면,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사 61:10)이라고 고백한 선지자처럼 우리도 종종 그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66.1)
 하나님 앞에 가납되는 모든 기도가 즉시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의 향기가 더해진 모든 기도는 하늘의 향단 위에 옮겨지게 되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때에 응답받게 될 것이다. 요한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손에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집무하는 자들을 보았는데, 요한은 말하기를 그 향은 “성도의 기도들”(계 5:8)이라고 했다. 이 기도들은 가납하신바 되었으니, 이는 그 대접이 더해진 향이 너무나 향기로워서 요한은 그 대접들이 향으로 가득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67.1)
 표상적인 봉사에서 자기가 사용하려고 그 향을 만드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짐을 당하였으므로, 그 향의 모조품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출 30:37~38). 여호와 앞에 있는 단으로부터 취해진 불 이외에는 그 어떤 불도 향을 사르는 일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답과 아비후는 독주에 취해서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레 10:1~10). 그들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의의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여호와 앞에 나타나는 모든 자들에 대한 하나의 실물교훈이다(사 64:6). (67.2)
 염병이 이스라엘 대군을 치고 있었을 때, 대제사장 아론은 향로에다 향을 담아서 백성 가운데로 달려감으로 그 “염병이 그쳐”졌다(민 16:46~48). 그 거룩한 향은 금향단과 제사장들의 향로에서만 피워졌다. 그 밖의 다른 레위인들은 향을 피우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민 16:3~35). 특별한 의미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표상하는 그 일을 수행했던 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서 향을 피울 수 있었던 유일한 지도자들이었다. (67.3)
 금향단의 뿔들에는 종종 속죄제의 피가 발렸는데, 그것은 곧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음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그 향의 향기가 성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이웃까지 공기를 타고 널리 퍼졌던 것처럼,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을 때는 그에게서 감화력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며, 그와 접촉하는 자들은 그 향기가 하늘의 원천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68.1)
  (68.2)
표 상 실 체
출 30:1-3; 40:26 금향단은 휘장 앞에 있었다. 계 8:3 하늘에 금향단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출 30:7-8 향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대제사장에 의해서 금향단에서 피워졌다. 계 8:3-4 많은 향이 모든 성도들의 기도에 더해져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출 30:9; 레 10:1-9 다른 향이나 불을 가지고 향을 피우는 자는 멸망을 당해야 했다. 사 64:6 자신의 의를 옷 입는 자는 멸망을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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