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 (재림교회 신학의 심장) 제 9 장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고동침:속죄의 완성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예로, 성소 자체의 정결을 들어보자. 그것은 욤 킵푸르 곧 대속죄일의 초점이었고, 어떤 이들은 그 상징의 성취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하늘 성소가 십자가에서 정결케 되었다고 주장한다. (178.1)
 하늘 성소가 십자가에서 정결케 되었는가? 그렇다. 성소가 십자가에서 정결케 되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십자가는 의문을 해소한다는 의미에서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정결케 했고, 사랑과 공의에 기초한 그분의 정부의 옹호를 가져왔다. (178.2)
 그러나 하늘 성소의 정결에, 온 우주 앞에서 하나님의 정당성이 최종적으로 옹호되는 것 곧 우주적인 문제들이 풀리고 온 우주의 창조된 지성적 존재들이 하나님의 정부의 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된다면, 아무도 이 일이 십자가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 이후에도 수천의 유혈 전쟁이 우리를 괴롭혀 왔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소름끼치는 학살로 죽었다. 자연 재해, 염병, 기근, 현대적 천벌이라 할 수 있는 테러, 약물 남용 등이 치명적인 희생에 가세하고 있다. “어찌하여”라는 부르짖음이 수백만 번 매일의 침묵을 깨뜨린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한밤중 수 없이 많은 베개를 눈물로 적신다. 거대한 물음표가 지각 있는 관찰자에게 궁극적인 속죄가 아직 여기서는 이뤄지지 않았음을 가리키면서, 우주 하늘에 지워지지 않은 채 떠있다. (178.3)
 여러 해 전 내가 학생 문서 전도인이었을 때 이런 사실이 나에게 강렬하게 와 닿았다. 나는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밴더후프(Vanderhoof)라는 소도시에서 문서를 권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 한 집에 들어가 마루바닥에 선전용 책자를 펴놓았다. 3분 정도 권장한 후에 나는 바람에게 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권유하고 있는 대상이 시름에 잠겨 화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음을 쳐다보고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당황하여 그녀에게 처절하게 슬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79.1)
 내가 방문하기 몇 달 전에 그녀의 남편은 트럭에 곡식을 싣고 있었는데, 갑자기 짐이 무너져 내려 부딪쳐 죽었다. 그로부터 한두 달 후에, 약 95 킬로미터 떨어진 프린스 조지(Prince George) 시(市)에서 건축공으로 일하던 그녀의 오빠가 고압선을 만져 감전되어 즉사했다.(나는 프린스 조지 시에서 문서전도를 하다가 바로 여기로 왔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우연히 알고 있었다.) (179.2)
 그녀는 하나의 사항을 더 언급했다. “당시 앨버타에 살고 있던 내 딸이 그녀의 남편과 함께 오빠의 장례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캐쉬 크리크(Cache Creek) 부근에서 비행기와 함께 추락했습니다.” 그녀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신문에서 그 추락사고(남쪽으로 약 480킬로미터 지점에서)에 대해서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79.3)
 이 모든 비극은 단 6개월 안에 그녀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그녀의 남편, 그녀의 오빠, 그녀의 딸과 사위가 모두 죽었다. 그녀는 “하나님 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사악한 하나님일겁니다”라고 화난 목소리로 쌀 쌀맞게 말했다. (180.1)
 그 순간 나는 펴놓았던 선전용 책자를 접고, 30분 동안 그 비통한 사람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나의 하나님을 더 좋은 모습으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180.2)
 세상에 살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밴더후프의 그 여인과 마찬가 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 섬뜩한 인상을 갖고 있다. 1960 년대에 “신은 죽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 중 리처드 루빈스타인(Richard Rubenstein)이 수백만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했던 1940년대의 나치 만행에 대해 반추했을 때 그는 그들 모두를 대변한 것이다.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차갑고 말없는 무정한 세계에 서 있다. 아우슈비츠 사건 후의 유대인이라면 하나님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28) (180.3)
 아직 모든 질문이 풀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성소와 정부의 완전함이 아직 모든 이에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주의 범인은 아직 제멋대로 날뛴다. 다시 말해서, 성소가 아직 온전히 정결케 되지 않았고, 아직 온전히 올바른 상태가 되지 않았고, 아직 온전히 옹호되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됨”(at—one—ment)이라는 의미로 볼 때 속죄(atonement)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180.4)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일이 왜 이렇게 오래 지체되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적절한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컴퓨터로 150년도 채 안 되는 기간(1844년 이후 기간)에 산 모든 인류를 재판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 하나님은 인간처럼 시간에 반응하지 않는다. 베드로후서 3:8은, 시간의 경과는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라면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181.1)
 둘째로, 하나님은 컴퓨터와 달리 숫자나 통계 및 이론적인 데이터 를 기계적으로 다루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 곧 자신이 창조한 귀중한 존재들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다루신다. 우리는 그분께 중요하며, 그래서 그분이 뜸을 들이는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181.2)
 속죄가 완성되는 때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일이 어떻게 종결될지, 하나님이 어떻게 모든 것을 종합하여 다시 온전케 하실지 분명히 한다. 최종적 과정이 시작될 때,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살전 4:16,17). (181.3)
 속죄가 완성될 때 우주적인 대 희년 나팔이 온 우주에 울려 퍼질 것이다(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52절).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53, 54절). (182.1)
 그런 다음 자신의 귀한 어린 자식들을 차가운 잔디 아래 내맡길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들, 사망의 잔인한 손에 의해 천애의 고아로 내버려진 불쌍한 아이들, 혼자가 되어 그 냉혹한 현실로 슬퍼하던 남편과 아내, 이 모든 사람들이 그때에는 노래하고 기뻐 웃으며 함께 만나 우주적인 조롱을 발할 것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 (182.2)
 “하나됨”(at-one-ment)이 완성될 때,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행한” 자들에게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이다(미 6:8; 벧후 3:13). 그리고 땅의 모든 죄인들과 인류에게 만행을 저지른 모든 자들, 그리고 모든 시대의 압제자 들과 악당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 다음 하늘 성전에서 큰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계 16:7). (182.3)
 그때에는 더 이상 국제적인 경쟁이나 비통함이나 전쟁이 없을 것인데, 이는 그것들을 조장한 폭군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인종적 갈등도 없을 것은 그것을 부추긴 못된 자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인종적 편견도 없을 것인데, 그것을 불러일으킨 자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182.4)
 더 이상 범죄도, 더 이상 자원 남용도, 더 이상 살인도, 더 이상 성적인 패역이나 부도덕함도, 부패함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 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기 때문이다(계 21:27). 거기에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다.(벧후 3:13). (183.1)
 그리고 그때에는 더 이상 질병이나 고통이나 사망이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계 21:4).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인데,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33:24). 그리고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사 35:10).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