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에 관한 재림교회의 입장이 복음에 배치되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매도하는 일에 속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쓰면서, 특별히 이와 관련된 문제들 때문에 재림교회 를 떠난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던 두 부부를 생각한다(사실 나는 두 부부 중 나이가 더 적은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맡는 특권을 누렸다) (161.1)
이 부부 중 나이가 더 많은 부부의 경우, 특별히 나는 그들의 재능 많은 두 자녀도 한때 지역 교회에서 함께 나눴던 친밀한 교제를 끊고 교회에서 나갔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이 아팠다. (161.2)
나는 이런 친구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면서, 그들이 이전보다 예수님과 더 친밀하게 동행하고 있다고 믿는 그런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서로 교제를 나누고 있지만 나는 그 같은 운동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앞길에 슬픔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161.3)
이 장을 쓰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내가 그런 사람들 및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자들에게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개진하려는 점들 가운데 어떤 것은 이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 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직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사안 및 문제들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162.1)
한 공개된 편지
몇 년 전에 필리핀의 중앙 루손(Luzon)합회의 회장(지금은 고인임)이 그 합회에 소속된 교인 세 명의 서명이 붙은 공개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원문 그대로 인용하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1844년 신학”에 대한 두 가지 반대에 주의를 돌리고 있었다. 이 반대 중 하나는 속죄 교리와 관련된 것으로, 이 주제에 대한 재림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62.2)
편지는 계속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이 반대는 속죄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사도들의 복음은 구속의 완성된 사역을 선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좋은 소식이다. 그는 속죄를 이루시고(롬 3:25; 요일 2:2) 사망을 폐하시고(딤후 1:10) 마귀를 타파하셨다(히 2:14).”1)(162.3)
이 형제들은 1844년 이후 하늘 성소에서 있는 “최종적” 속죄라는 재림교회의 신조에 주의를 돌리면서, “속죄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면 계속되는 어떤 속죄 행위도 그대가 그것을 최종적 속죄 혹은 특별 속죄라고 부르든지 말든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것이 바로 재림교회의 선구자들, 특별히 유라이아 스미쓰와 엘렌 G. 화잇의 입장이었다고 이 공개된 편지는 주장한다.2)(162.4)
그러므로 나는 이 공개 편지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된 두 지도자이며, 사실 우리의 선구자들 중 가장 영향력 있었던 유라이아 스미쓰와 엘렌 G. 화잇이 견지한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속죄에 대한 재림교회의 입장 평가를 시작한다. (163.1)
유라이아 스미쓰(Uriah Smith)의 입장
유라이아 스미쓰는 속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여 표현했고, 따라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인용한 것은 옳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피를 흘렸을 때 속죄를 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라이아는 그의 전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이 사실을 마음속에 영원히 고정시키도록 하라”고3) 덧붙였다. 이 진술은 십자가와 관련하여 속죄에 대한 유라이아 스미쓰의 입장을 잘 대변한다.4)(163.2)
하지만 유라이아 스미쓰의 저작들을 좀 더 폭넓게 읽어보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점을 판단할 수 있다. 위의 취지 그리고 같은 맥락의 기타 많은 진술들을, 스미쓰가 십자가의 중요성과 중심성을 조금이라도 격하시킨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됨이 확실하다. (163.3)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죄를 위한 제사로서 완전히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그가 그 행위를 속죄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63.4)
스미쓰는 자신의 입장을, 고대의 표상적 제도에 대한 엄격한 해석에 바탕을 두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통해 그는 속죄가 1년에 한 번 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원형적 속죄도 마찬가지로 성소(물론 이 경우는 하늘 성소를 말함)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164.1)
이제 이 공개 편지는 이러한 동기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또한 스미쓰가 십자가에서 속죄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부인한 것은 부분적으로 용어와 정의에 관련된다고 언급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공개 편지를 기록한 자들에게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라이아 스미쓰와 반대 입장을 취한 것에 그들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그 편지는 그의 입장을 정확하게 진술한 것이다. 스미쓰는 실제로 이 점에 대해 잘못이 있었다. (164.2)
엘렌 G., 화잇의 입장
공개 편지에 인용된 엘렌 G, 화잇의 진술들을 보면, 그녀가 스미쓰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부활 후에 승천하여 하늘에서 이룰 그 사역을 시작하였다.”5)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성되기 전에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기 위한 속죄 사역이 있다.”6)(164.3)
이 진술들은 분명히 하늘 성소에서 속죄 사역이 계속될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십자가의 속죄가 불완전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164.4)
그러나 엘렌 G. 화잇이 십자가에서 있은 속죄와 관련하여 유라이아 스미쓰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녀가 십자가에서 있은 속죄가 불완전함을 가르쳤다고 결론짓는 것은 전반적인 증거에 비춰볼 때 전적으로 불공정한 것 같다. (165.1)
그녀가 기록한 다음의 강력한 진술들을 주목하라. “그리스도의 속죄에 하늘의 인이 쳐졌다. 그의 희생은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했다.”7) 같은 기사에서 그녀는 우리 주님의 승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온 하늘 세계가 그들의 왕을 영접할 때가 왔다. 천사들, 그룹과 스랍들은 이제 십자가 앞에 섰을 것이다∙∙∙하늘의 기쁨 곧 하나님께서 속죄가 완성된 것을 보시고 그분의 독생자에 대해 그분이 표현한 만족감과 즐거움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8)(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