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문 동기가 정확하게 말해서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이 2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니고데모는
“밤에”(
“by night”) 찾아왔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사람들이 시간을 말할 때,
(1) 특정 사건으로 말할 수도 있고,
(2) 때로는 시간의 길이로 말할 수도 있으며,
(3) 때로는 시간 사용의 질적인 면으로 말할 수도 있다.
시간을 질적으로 사용한다는 말은, 시간이 의미, 즉 보다 높은 영적 혹은 철학적 실재를 가리키는 지칭어(指稱語)로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3:2에서 시간을 가리키는 속격(屬格, genitive case)은 셋째 유형의 표현을 가리킨다. 이 복음서의 저자는 니고데모가 온 것이 몇 시였는지, 예수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대화를 계속하셨는지(이것들은 처음 두 가지 유형의 표현이다)에 관심이 없고, 니고데모가
어떻게 왔는지—그의 영적인 상태—에 관심이 있다. 그는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고 그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혼의 어두움 가운데서 찾아왔다. 그러나 비록 그가 어두움 속에 있었지만, 그는 올바른 일을 하였다. 예수께 나아옴으로 그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간다(
1:4, 5; 3:19-21; 8:12; 9:5). 이것은 빛에서 어두움으로 가버릴 유다와는 반대이다(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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