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울의 맹세가 얼마나 잘못 되었든지 간에, 줄거리는 여호와께서 사울과 백성이 그것을 존중하기를 기대하신 것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죄”(
38절) 즉 맹세를 어긴 것이 수정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조언을 주시지 않을 것이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주장의 타당성을 인식하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마침내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同事)하였음이니이다”(
14:45). 그리하여 그들은 요나단을
“구원”(
45절) 혹은
“속량하였다”(「새개정표준역」). 본문은 그들이 그의 생명을 구하였는지, 돈을 내었는지(
출 21:30; 민 3:46-51), 동물을 대신 내어놓았는지(
출 13:13, 15; 34:20) 말하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맹세는 현명하지 못한 것이든지(예컨대: 입다,
삿 11:35), 속아서 맹세하였든지(예컨대, 기브온 족속,
수 9;
삼하 21:1-14) 간에 매우 심각하게 취급되었다. 이 경우에서는 패주한 베냐민의 경우와 같이(
삿 19-21) 이 맹세의 요구를 벗어날 길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그 피할 길은 맹세한 사람 당사자가 아니라 제삼자에 의해 조정되었다(
삿 21:16-23과 비교). 다른 말로 하면, 그저 맹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맹세는
“잘못된” 것일지라도 다 지켜져야 한다.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