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9.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새 기원을 여시는 분)
 오 주여, 주의 뜻에 굴복하여 기다리는 인내심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147.1)
 우리는 홍수 전 “세대,” 부조들의 “세계,” 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또 우리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또는 바울 “당시”가 어떠했느니 하며 그 시대의 독특한 사상과 어떤 사건에 나타난 특성을 말하기도 한다. 올람 은 바로 이런 “세대,” “시대,” “세계”를 말한다. 즉 하나님의 이 이름은 그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장악과 조종을 의미한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항상 당신의 뜻에 따라 만사를 보시고 조종하신다. (147.2)
 한 “시대”의 길이는 얼마나 되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른 하나의 질문을 해 보자: 중세기는 언제 시작되었나? 이런 질문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올람 을 묻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모르게 시작되었다가 사람이 모르게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면 끝나는 기간이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는 “시간/세상/세월을 이기시는” 하나님이시며, 결코 돌발적 사태를 당하는 일이 없이, 점진적으로 마음에 품으신 계획을 이행하시는 분이시다. (147.3)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나무를 심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위해 새 시대를 여셨음을 말하는 표였다. 그의 인생에 새 단계, 크기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새 주기가 시작된 것이었다(창 21:33). 언제나 그 나무를 바라볼 때면 그는 자기의 과거 생애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회상했고, 동시에 그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147.4)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이사야는 이것을 생각하라고 호소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엘 올람 야훼)는 땅 끝들의 창조주시며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신 분인 것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그의 명철은 한없이 깊으시도다. (이것이 올람 이란 말 속에 숨은 비밀을 말하는 대목이다.) 그는 곤비한 자에게 힘을 주시며 무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시나니”(사 40:28, 29).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날을 약속하신 말씀에 기대를 걸고(사 26:1, 2) 곤비한 날이 오더라도 기진 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148.1)
 그 영광의 날이 올 때까지 이사야는 계속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를 앙모했다. 그럴 때 그의 심령에선 용기가 솟았다. 그는 엘 올람 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주께서는 마음을 주께 의탁하는 사람을 ‘완전한 화평’[‘화평, 화평,’ KJV 난외주에는 이렇게 화평을 두 번 써서 강조했다. 「개역한글판」은 ‘평강에서 평강으로’라고 번역함] 속에 지키시나니, 이는 그 사람이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주를 영원히 의뢰하라. 이는 주 여호와 안에 ‘영원한 힘’[이것은 의역이고 문자적으로는 ‘만세 반석’]이 있음이라”(사 26:3, 4). 예수는 언제나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또는 우리 생애가 새로운 기원을 맞을 때 항상 그것이 기초할 반석이 되신다. (148.2)
 시인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안심했다: “산들이 생기기 전, 주께서 땅과 세상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올람 올람)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여기 은 원문에 있으나 ‘주는 ... 이시니이다’는 원문에 없는 것을 역자들이 첨가한 것임]”(시 90:2). 길고 파란 많은 인생을 산 역사가요 입법자인 모세는, 엘 은 진실로 예상치 않은 일을 당하시는 일이 없으시며, 무슨 일을 당하든지 대처할 방안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관찰했다. 다윗도 그와 똑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주의 자비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 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들의 자손들에게까지 미치도다”(시 103:17).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과의 사이에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다. (148.3)
 창세 전부터 이미 존재하시는 예수는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사신 것을 말씀하셨다: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신 그는 이렇게 말씀을 마치신다: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잠 8:23, 32). 시간과 사건이 우리 주께는 전혀 놀랄 만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의 존재하심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영원부터 영원까지 미친다. 그는 엘 올람 이시다. (149.1)
 올람 은 변치 않으신다
 때때로 올람(òlam)은 하나님의 활동과 특성을 수식하는 형용사로 쓰인다. 인간의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판단한다면 그분은 항상 존재해오셨고(전 1:4; 시 93:2), 창조자로서의 그의 지배권은 영원하며(사 63:19), 땅위의 만물도 계속 존속할 것을 그는 보장하셨다. 그의 율법과 그의 말씀은 영구불변이며(사 59:12; 시 119:89), 심판자로서의 그는 당신의 증언을 어떤 책에 기록해 두신다(사 30:8). 지난 모든 세대 동안 이 원칙을 견지하신(사 46:9) 그분의 판결은 총명 있고 최종적인 것이다(시 119:52). (149.2)
 예수는 영원한 보좌(시 45:6)를 가지신 기름 부음을 받은 왕(시 110:4; 사 9:6)이시며, 그의 나라는 어느 시대에나 항상 불변이다. 그는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지 누구나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 구속자가 되시며(사 63:15, 16), 그의 변치 않는 사랑은 끝을 모른다(시 25:6). 때로는 그분이 긴 침묵을 지키는 것 같아도(사 42:14; 57:11), 그의 귀는 당신의 자녀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 위해 항상 열려 있으며, 그분의 말없는 응답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한다. 어떤 경우에나 변함없이 우리가 만나는 엘 올람 은 그의 백성에게 영원한 희망을 주신다(시 131:3). (149.3)
 수백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고 이사야는 어느 시대, 어느 길목에서든지 충성스런 자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계시로 보고 기쁨으로 고백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속자이시니, 주의 이름은 영원부터 있나이다”(사 63:16). 예레미야는 이 말에 동의했다: “주는 참 하나님이시며,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영원한 왕이시라”(렘 10:10). 미가는 나사렛 예수를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로 보고 “그의 나오심은 옛 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고 우리에게 공개한다(미 5:2). 그러므로 그분은 그의 자녀들에게 “영원하신 아버지”가 되신다(사 9:6). 그는 항상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준비를 갖추고 계시지만, 선지자는 그분의 신비를 포착하고 “오 구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자기를 숨기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선언한다(사 45:15). 엘 올람 은 항상 계셨지만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숨어” 계신다. (149.4)
 사람은 하나님의 장래 계획을 읽을 길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숨겨져 있어서 (올람 의 뜻에서 본 것처럼) 사람이 알아낼 길은 없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과거 행적을 알아보고 시대마다 그가 성취하신 사적을 분석해 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신 말씀의 진의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150.1)
 다시 우리가 잘 아는 예화로 돌아가 보자. 모세가 하나님께 그의 “길”“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을 때(출 33:13, 18), 주께서는 당신의 특성을 나타내 보이실 것을 약속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할 것이며, 내가 네 앞에 (야훼 의) 이름을 선포하리라”(19절). 우선 모세는 “한 바위 위에 설지니라”(21절) 하신 지시에 따라 갈라진 바위틈에 들어가 바위 위에 섰다. 주님은 그 갈라진 바위틈을 손으로 막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그 앞을 지나가셨다. 모세는 갈라진 만세 반석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못 자국난 손을 렌즈로 하여 내다볼 때 비로소 모든 세월을 “견디시고” 모든 시대를 “다스리시는”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출 33:19-23; 34:5-9). 이 계시를 통해 모세는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으나(20절), 그의 “뒷부분”은 볼 수 있었다(23절).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후에라야 그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는 있고, 지나 본 후에야 그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150.2)
 예수는 올람 의 기능을 공개하셨다. 그에게는 변함도,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할 때, 그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 그는 우리의 문제를 예상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공급하심으로 그것을 견딜 힘을 주신다. 그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경험을 돌아볼 때 우리는 발걸음마다 주께서 우리와 동행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임재와 능력이 아브라함과 요셉,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모든 성도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안다.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의 수한으로만 측정할 수 있는 영원한 세상을 시작하는 일을 마치실 것이다. 어느 무명의 독일 시인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그 나라에 가기 위해 분투하도록 하자. (151.1)
거룩하신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만유의 주님, 당신 앞에 저희가 엎드립니다.
온 땅이 당신의 홀(笏) 아래 있고
   온 하늘이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무한한 당신의 나라
   영원한 당신의 통치.
            (SDA Hymnal, No. 30)
(152.1)
 오 주여, 우리를 결실 없는 불안에서 지켜 주시고, 우리가 매일매일 당신의 길을 행할 때 당신의 평화를 허락하옵소서. (152.2)
 그 이름 아름다워라 (152.3)
 참고
 1. Seventh-day Adventist Bible Dictionary, “Ishmael.”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