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9.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새 기원을 여시는 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구원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 거의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으리 만큼 높고 우뚝하게 드러나는 인물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 앞에 그의 장점과 단점을 공정하게 보여준다. 성령께서는 그를 다루신 방법을 상술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모든 배경을 후세에 알림과 동시에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를 엮어 나가는 모든 배역들의 역할을 보여주신다. (141.1)
 지난 장에서 연구한 중요한 내용을 다시 한번 간략하게 복습한다: 사래와 아브람이 애굽인 여종 하갈을 이용해서 자식을 낳으려던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간음하지 말라”하신 분명한 계명을 알고도 범한 수치스런 행위였다. 처음부터 말썽의 소지가 있던 그 사건의 후유증은 오늘도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민족적 적대감으로 남아 있다. 나쁜 씨는 결코 좋은 열매를 생산할 수 없는 것. 이스마엘이 19세쯤 되었을 때,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녀의 아들을 내보내라는 사라의 요구를 수락할 것을 종용하셨다. 그들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은 고민 끝에 결국 그 일에 동의했다. (141.2)
 하갈과 이스마엘은 장막을 떠난 후,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창 21:9-14).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시니 그가 자라서 광야에서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고, “그의 어미가 그에게 애굽 땅에서 아내를 취해 주었”음을 알게 된다(창 21:15-21). 이 혼인에서 아랍 민족이 태어났는데, 그들은 거의 3,000년 동안이나 이삭의 후손과는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로 지내고 있다. (142.1)
 이 때 아브라함은 그의 팔레스타인 이웃 부족의 지도자인 아비멜렉과 비골을 상대로 화친 조약을 맺는다(창 21:32). 이 조약은 쌍방의 필요에 의해 체결된 것으로 당시 아브라함의 양 떼와 소 떼가 너무 많은 데다가 그 지방 전역에 걸쳐 물 부족 문제가 극심했으므로, 그것이 항상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조약을 비준하기에 앞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종들이 우물 하나를 완력으로 강탈당했다고 아비멜렉에게 주장한다. 자기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아비멜렉의 해명을 받아들인 아브라함은 자기의 목자들이 판 우물에 관해 희생의 피로 조약을 체결키로 하고 거기에 필요한 양 일곱을 자기가 제공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조약의 발효를 위해 당시에 공인된 필요한 절차와 의식이었다(창 21:22-32). (142.2)
 이곳은 후일 브엘세바란 이름으로 불리는 지방으로 아브라함의 양 떼가 머무는 중요한 야영지였으며 후일 점차 커져서 도시로 발전했다. 브엘세바란 “일곱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팔레스타인 변경에 위치한 이 도시는 점점 번창하여 남쪽 나라들에서 이 지방으로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그 위치가 남쪽 끝에 있었으므로 남북으로 뻗은 이스라엘의 국토를 일컬을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상용구를 쓰게 될 만큼 유명해진 지방이었다. (142.3)
 아브라함—팔레스타인 사람들 틈에서 살다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틈에서 여러 해를 섞여 살았다. 그곳에 그는 나무를 심어 그 지방에 오래 정착하여 살 의지를 표시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된 것은 그가 이곳 이방인들과 이웃하여 살 때의 일이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주 야훼 의 이름을 불러 엘 올람 (É òlam)이라 하였더라”(창 21:33, 34)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습관이 그러시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새 이름은 우리가 친숙히 잘 아는 이름과 결부되어 소개된다. 이번에는 그 친숙한 이름이 야훼이다.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이란 이름에서 새로운 깊이를 깨닫고 자기가 이미 아는 여호와의 지식에 새 지식을 첨가한다.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이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총체적으로 포괄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다. 그는 바로 ‘영원하신 분’이다”(TC 8:270). 그러면 성경에서 이 칭호를 찾아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143.1)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들은 언제나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계속 다짐받았다. 방황자가 어떤 곳에 머물면 그것은 임시 주소요 “팔레스타인 땅”에 살지만 그들은 그곳 사람들의 얄팍한 인심 덕분에 붙어 있는 나그네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그는 자기보다 그 지방에 뿌리가 훨씬 깊은 사람들과 물 사용을 둘러싸고 협정을 맺게 된 것이다. 부조 노부부는 자기들이 예상하는 기간 안에 하나님이 상속자를 주지 않으시므로 유혹을 받았을 것이고, 그들이 소유할 땅을 받는 문제도 너무 지체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를 다루신 하나님의 과거 행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믿음이 생겨,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버리시거나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이 통찰을 이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143.2)
 올람 의 의의
 (É)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힘, 능력, 용맹을 뜻한다(창 31:29“내 손의 능력”단 4:35“그분의 손”을 참고하라). 은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칭호들과 합쳐져서 복합적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부각시킨다. (144.1)
 올람(òlam)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이 말은 “숨기다, 숨다”란 뜻을 가진 어원에서 파생한 말로, 진실이 가려져서 실상을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진실의 은폐나 외면(外面)을 위한 고의적인 무지(無知), 또는 애매한 발언 등을 들 수 있다(참고 레 4:13; 5:2; 욥 42:3; 시 90:8; 레 20:4; 삼상 12:3; 신 22:1, 4). 그런 숨김과 속임은 물론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둘째로 이 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한없이 긴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있는 긴 시간이다. (144.2)
 올람(òlam)을 번역하기 위해 「70인역」의 역자들은 아이온(aiōn)이란 헬라어를 사용했다. “무궁한 세월”이란 뜻을 가진 영어의 “aeon”은 거기서 온 말이다(마 13:39). 고대 히브리어 사전을 편찬한 파크허스트(Parkhurst)는 올람(òlam)의 뜻이 “불분명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애매하고 난해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것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을 말한다. 이 말은 “확실히 정의되지 않은 시간의 길이” 또는 측정되지 않은 시간으로, 주로 “한 평생,” “시대,” “영원,” 등으로 번역된다. (144.3)
 이 말의 뜻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올람(òlam)을 사용하신 주요한 성구를 몇 개 살펴보고 거기서 개념을 포착해야 한다. 올람 은 한도가 있으면서도 한계가 밝혀지지 않은 시간이다. 성경에 “영원”이란 말로 번역된 말이 그것이다. 예컨대,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성전에 바칠 때 거기 “영원히” 머물게 하리다 하였다(삼상 1:22). 한나는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 “평생토록”이란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인에게 종신토록 예속되기를 자원하는 종은 “영원히” 섬길 계약을 맺었다(출 21:6; 레 25:46; 참고 신 15:17). 그러나 이것도 물론 종의 “평생”을 의미할 뿐이다. 한때 블레셋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해 말하기를 “그가 영원히 내 종이 되리라”(삼상 27:12)고 했으나 다윗이 언젠가는 죽을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144.4)
 올람 (òlam)은 땅을 산 때로부터 희년이 올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 경우가 있다(레 25:23). 그러므로 이것은 땅을 매입한 새 주인이 땅을 사용할 수 있는 전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땅을 소유한 사람은 언제나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라도 합법적으로 “도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레 25:32). 예레미야는 자기 모친의 배가 자기를 배고 항상(영원히) 큰 채로 있지 않았음을 탄식했다(렘 20:17). 이 말은 또 왕에게 인사할 때 사용되었다. “내 주 왕은 영원히 사소서”(왕상 1:31; 느 2:3). 유대인의 나라가 “영원히” 가리라 하던 말도 시한이 있는 개념이었다. 이 말이 복수로 쓰였을 때는 (시 77:7, 8; 사 45:17; 단 9:24; 등) 영어로 “from ages to ages” 또는 “for ages”로 번역된다. KJV에는 이 말이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영원부터 영원까지”로 번역되었다. (145.1)
 올람 은 과거와 미래는 물론 현재에도 적용된다
 올람(òlam)은 미래뿐 아니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에 적용되기도 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날에(올람) 하수(유브라데 강) 저편에 거한 너희 조상들”의 이야기를 회고했다(수 24:2; 참고 전 1:10; 겔 26:20). 이 말은 “옛날”로 번역된 경우도 있고(시 143:5; 신 32:7; 시 25:6), “오랫동안”으로 번역된 경우도 있다(사 42:14). (145.2)
 또 하나의 흥미있는 용법은 사람이 “세상(올람)을 마음에” 둘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 솔로몬의 글에서 발견된다(전 3:11; 시 73:12). 이 말은 현 세태, 풍조, 또는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시대의 정신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세상(aiōn, aeon, ‘세대’)을 사랑하여”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데마를 슬퍼할 때 이 말을 썼다(딤후 4:10). 데마는 세상의 분위기, 당시에 유행하던 세태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을 개척한 조상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한다. 만일 우리가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는 다른 올람에 살고 있다”는 말로 표현할 것이다. (145.3)
 아래에 열거하는 것들은 성경이 “영원히” 또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들이다: 아브라함의 상속(창 13:15), 아론 자손의 제사장 직분(출 40:15; 민 25:13), 레위족의 직분(대상 15:2), 유월절(출 12:14, 17), 제사 음식(레 6:14-18), 성전 봉사(레 16:34), 이스라엘의 저주(신 28:45, 46), 아이성의 황폐(수 8:28), 게하시의 문둥병(왕하 5:27).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그 옛날에 하늘의 뜻이 다 이루어진 후 없어져 버린 것들이다. (146.1)
 상기한 여러 경우를 관찰해 볼 때, 올람(òlam)은 사람은 모르나 하나님은 아시고 그가 완전히 조종하시는 “시간의 길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올람(평생, 시대, 세월, 세상)이 한동안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다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후에는 끝나게 하신다. 이 낱말이 하나님을 수식할 때는 “시간/세상/세월을 견디시는”(R. Young), 또는 “시간/세상/세월을 경영하시는/다스리시는/역사하시는”(A. Jukes)의 뜻으로 쓰인다. 올람 이란 말은 그러므로 오래 참고 견디시며 시대마다 당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어휘이다(시 90:2-4; 사 40:28; 63:16; 렘 10:10; 미 5:2; 롬 16:26; 골 1:26; 딤전 1:17; 히 9:26—다만 상응하는 헬라어가 사용된 경우). 이 진리를 분명히 깨달은 지혜의 사람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으니 ...”(전 31-11). 엘 올람 은 각 시대마다 말할 수 없는 인내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마지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46.2)
 “나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신 야훼 하나님은 바로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더 깊은 의미에서 그는 위대한 촉진자이시므로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대로 되는 자, 내가 만들고자 하는 대로 만드는 자”라 선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엘 올람, 즉 영원하신 하나님이란 이름은 그의 변치 않으심(말 3:6)을 말하며, 따라서 그는 시대마다 항상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계속하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흔히 임의적 주기(週期)라고 부르는 모든 시간적 주기의 주인이시다. 언제든지 이 칭호가 사용된 경우 하나님은 사람의 연한을 정하시고 그들의 생애의 전후 각 단계를 조종하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드러내어 강조한다. 엘 올람 은 구원의 역사의 각 시대를 통해 역사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복 주시는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가차없이 수행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엘 올람 은 치밀한 시간 사용의 비결을 아시며, 결코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