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9 장 하나님에 대한 반대의 징조들과 재림소망
 사단. 행악자의 “임함”“사단의 역사”에 의해 일어난다는 이유로 행악자를 사단과 직접 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행악자가 큰 능력을 행하도록 사단에 의해 능력을 받았다면 바울이 그를 사단 자신과 동일시하려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135.1)
 한 황제. 행악자를 네로나 황제의 한 혈통으로 본다든지 스탈린과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로 볼 수는 없다. 비록 이 모든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적인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어 말세의 행악자의 선구자들로 간주될 수 있을지라도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을 숭배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또는 “거짓 기사와 표적”(살후 2:9)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꾸밈으로써, 그리고 재림 때에 그리스도의 입 기운(살후 2:8)으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종말론적인 반역의 역할을 성취시켰다고 할 수는 없다. (135.2)
 계시록의 짐승. 행악자를 요한계시록 13장17장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직접적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록 유사한 점이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차이점은 그들의 본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우선적으로 과거와 미래의 왕들로 설명되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지적했듯이 적그리스도의 정치—종교적 권세를 갖고 있다. 반면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행악자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특성이 없는 종교적 인물이다.34 (135.3)
 두번째 차이점은 그들의 활동 기간이다. 그 짐승은 42달의 예언기간 동안 성도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정복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행악자는 말세에 나타나 오직 믿지 않는 자(살후 2:10)만을 속이고,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곧 멸망당한다(9절). (135.4)
 세번째 차이점은 그들의 활동 방법이다. 짐승은 사람들을 위협하여 자기를 경배하도록 강압 정치를 사용하는 반면에 행악자는 “불의의 속임”(살후 2:10)을 이용한다. 요약하면, 우리는 짐승이 일차적으로 기독교 역사 시기에 활동한 정치 및 종교적 적그리스도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행악자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나타날 종교적 기만자로 묘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35.5)
 4. 행악자의 정체
 반역의 구체화. “불법의 사람”의 신원을 파악함에 있어서 교리적 독단주의는 합당하지 않다. 그 인용구는 바울이 이미 구두로 가르친 바 있는 단편적인 정보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합리적으로 분명한 것은, 바울이 최후의 궁극적인 배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을 가장 잘 구현할 인물의 출현으로부터 이르러 올 것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는 경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뿐이라고 주장한다. (135.6)
 사단에 의해 능력을 부여받은 이 행악자는 속이는 이적과 기적을 행할 것이요 아마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거짓으로 꾸밀 계획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불의의 속임”으로 인해 많은 불신자들이 그를 추종할 것이다. 이 종말론적 반역의 생애도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남으로 폐하실”(살후 2:8)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맺게 됨으로써 오래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135.7)
 인물인가 원칙인가? 분명하게도, 과거의 어떠한 역사적 인물도 이 사람의 독특한 특성과 필적하지는 못한다. 그의 출현이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끝나게 될 것으로 보아 미래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으리라. 여전히 미래에도 존재하게 될 이 악인은 누구인가? 그는 보통 인간인가? 초자연적 인물인가? 아니면 격렬한 악의 세력인가? (136.1)
 먼저 마지막 질문이 매우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 이유는 바울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었”(살후 2:7)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불법의 사람이 이른 것은”(9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곧 배도와 반역으로 발전하게 될 현재의 강한 악의 세력으로 결론짓는다. (136.2)
 인간적인 특성들. 이 해석에 있어서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종말론적 인물에 대한 인간적 특성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불리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을 대하여 반역하고 자존하는 자,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하고,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그를 막는 것”이 있고, “주께서 저를 멸하시리라”(살후 2:3~6)고 묘사되고 있다. (136.3)
 우리는 이 모든 인간적 특성들을 추상적인 의인화로 무산시킬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분명히 인간적인 인물임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묘사 가운데는 단지 인간적인 인물만으로 축소시킬 수 없는 요소도 많다. 예를 들면, 기존의 모든 신 위에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권위와 이름을 찬탈하는 자는 단순한 인간 이상의 존재이다. (136.4)
 이러한 결론은 행악자가 처음에는 은밀하게 존재하다가 막는 자가 제거된(살후 2:6~8) 후에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사실로서 더욱 확인된다. “나타나리라”는 동사는 세 번(살후 2:3, 6, 8) 사용되었는데, 에드몬드 히벌트(Edmond Hiebert)가 지적하는 바대로, “그것은 그가 지구상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죄인으로서 증명되기 전 수년 동안 살아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35 (136.5)
 5. 결론
 사단의 성육신(成肉身).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종말론적 행악자가 아마도 인간적인 특성과 초인간적인 특성을 함께 지닌 특별한 인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악의 세력(“불법의 비밀” 살후 2:7)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전 이 행악자의 세력은 그리스도께서 선의 화신으로 성육신 하신 것처럼 참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 할 것이다. (136.6)
 이 결정적인 사단의 성육신은 인류를 기만하여 자신을 약속의 구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단에게 능력을 부여 받은 이 행악자는 큰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약속된 주로 받아들이도록 속이는 데 성공할 것이다. (136.7)
 압도하는 기만. 엘렌 화잇은 어떻게 “그 큰 기만자가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를 예언적 통찰로 묘사한다. 그녀는 설명하기를 그가 “요한이 계시록에서 말한 하나님의 아들처럼, 찬란한 광채의 위엄있는 존재로서 인간 가운데서 나타날 것을 말한다(요한계시록 1:13~15). 그를 둘러싼 영광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다. 나팔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진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주께서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그가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 동안 그들은 그 앞에 경배하기 위해 부복한다.”36 (137.1)
 바울은 그가 그와 같은 압도하는 기만으로 많은 불신자들을 휩쓸 것이나 주의 나타남의 광채와 “그의 입의 기운”(살후 2:8)으로 그 큰 기만자를 멸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137.2)
 이 징조의 예언 성취는 아직 미래에 속한다. 아무도 바울이 예언한 이러한 대 기만적 행악자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 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가 나타나기 전의 중요한 상태(즉, 마지막 배도)에 대한 예언 성취의 징조들을 이미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출현이 머지 않은 장래에 있을 것임을 믿게 한다. (137.3)
 현재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살후 2:7) 중임을 인식하고 그를 저항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 큰 기만자가 나타날 때, 우리는 미혹당하지 않을 것이다(마 24:24). (1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