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9 장 하나님에 대한 반대의 징조들과 재림소망
 (4) 그는 자신을 위하여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살후 2:4)를 폐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대적자이다. 그는 대단히 무례하게도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살후 2:4)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를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영광과 경배를 찬탈하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132.6)
 (5) 그는 어떤 닥는 자가 “옮긴”(살후 2:6, 7) 후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살후 1:7)과 의도적으로 대조하면서 세 번(3, 6, 8절)이나 사용된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는 동사는 악인의 참된 본성과 행동을 나타내기 위해 그 휘장이 제거될 특정한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그를 막는 것”이라는 구절은 둘 다 행악자(Evildoer)가 나타나기 전 그의 은밀한 선재(先在)를 암시하고 있다. (132.7)
 (6) 바울은 행악자의 “임함(파루시아)”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방할 것을 나타내고 있다. (132.8)
 그리스도처럼, 행악자도 “임할”(살후 2:9) 것이고, “나타날”(3절) 것이며, “거짓” 된 복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에게만 숭배(4절)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면서 그는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9절)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은 것처럼 행악자도 사단에게로부터 능력을 받을 것이다(9절). (132.9)
 (7) 행악자의 생애도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살후 2:8)실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끝이 날 것이다. (133.1)
 2. 행악자의 구약적 배경
 위에서 언급한 행악자의 특성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일어난다. 즉 바울은 이 종말론적인 존재에 대해 그것을 어디에서 알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재림 전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마 24:24)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지만 그의 재림의 전조로서 나타날 대 기만자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셨다. (133.2)
 바울은 이러한 정보를 특별한 계시를 통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니엘(7:25, 8:10~13, 11:36, 37), 에스겔(28:1~19), 그리고 이사야(11:14, 4:3~23)에서 사용된 표현과 바울의 표현 사이의 언어학적 그리고 개념상의 어떤 유사성을 볼 때, 사도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이 세 구약성서로부터 그 행악자의 묘사를 이끌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133.3)
 언어학적 유사성. 몇 가지 언어학적 유사성은 이 점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바울이 말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을 높이는 자 ∙∙∙ ”(살후 2:4)라는 구절은 다니엘이 묘사한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단 11:36) 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방왕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33.4)
 유사하게도,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 자”(살후 2:4)라는 바울의 표현은 아마도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겔 28:2)라고 말한 두로 왕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 같다. 바울이 말한 “주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폐”(살후 2:8) 하실 불법의 사람에 대한 묘사는 놀랍게도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 11:4)라는 메시야로 말미암아 악인들이 멸망할 것을 묘사한 구약 선지서와 유사하다. (133.5)
 개념상의 유사성. 언어학적 유사성 뿐만 아니라 개념상의 유사성도 있다. 예를 들면, 바벨론 왕(사 14:3~23)과 두로 왕(겔 28:1~19)의 자아 신격화와 운명이 그 행악자(살후 2:4, 8) 의 자아 신격화와 운명과 상호 관련이 있음을 보게 된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작은 뿔의 자아 찬양의 말 가운데서 유사한 상호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할 것이나, 나라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될 때에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단 7:25~27) 것이다. (133.6)
 어떻게 바울은 두로와 바베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말세의 행악자 출현과 멸망에 대해 논리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었을까? 바울의 정당성은 우선적으로 이 예언들의 모형적인 상징 가운데서 즉, 그것들이 직접적인 역사적 상황 너머를 가리킨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바벨론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홀을 꺾으셨도다 ∙∙∙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사 14:5, 7). (133.7)
 지구의 심판, 안정, 평화, 그리고 기쁨에 대한 묘사는 바벨론 왕이 몰락한 직후의 역사적 결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주의 날의 마지막 심판과 회복을 표상한다. 윌리암 니일(William Nei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예언들은 여호와의 날과 서로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모든 악과 압박의 완전한 몰락과 황금 시대로의 집입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되어야 했다.”32 (134.1)
 역사적 개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세부적인 역사의 개괄,(즉, 불법의 세력을 막음, 막는 자의 물러남, 불법의 사람의 출현,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불법한 사람의 멸망)을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예언의 연속적인 역사로부터 제시받았을 것이다. 다니엘서에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 하는 “작은 뿔”은 로마제국이 몰락하고 열 나라로 분열한 후에 일어난다(단 7:7, 8). 그의 생애는 그를 멸망시키고 “영원한 나라”(단 7:26, 27)를 설립할 “옛적부터 계신 자”(단 7:22)의 임함으로 끝난다. (134.2)
 만약 바울이 예언한 재림 전의 사건들이 다니엘서의 연속적인 예언을 가리킨다면, 신비스럽게도 “막는 자”(살후 2:6, 7)는 로마 정부의 구체화된 법과 질서의 체계로 볼 수 있다. 여러 번에 걸쳐서 바울은 로마 관리의 제지하는 권세로 노한 군중들로부터 구원을 받았다(행 18:12-16, 19:31, 23:23~30). 그러므로 그는 로마 정부를 “선을 위한 하나님의 종”(롬 13:4)으로 말할 수 있었다. (134.3)
 법과 질서의 저지 기능은 로마 정부가 멸망할 때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다. 바울은 근본적인 공의의 구조가 무너지고—아마, 하나님의 저지하는 능력이 사라진 결과로서—이것으로 인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무대가 될 미래의 시간을 분명히 예견하였다. (134.4)
 구약 성서의 표상적 예언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구약의 배경에서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바울이 아마도 재림 전의 사건들에 대한 그의 예언의 윤곽을 구약의 예언들과 또는 적어도 그 속에 있는 지지에서 이끌어 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영감 아래 사도는 아마 두로와 바벨론 왕들의 표상과, 다니엘 7장의 연속되는 역사 속에서 미래에 대한 암시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임재로 사라져버릴 마지막 배도(반역자가 이끄는)를 본 것 같다. (134.5)
 그러므로 바울이 예언한 재림 전의 사건들은 구약의 예언과 예언적 표상들 가운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구약의 표상과 예언이 신약의 종말론과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은 바울 서신의 독단적 주장이 아니라, 그것이 편지서 기자들 가운데서 일반화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한스 케이 라론델(Hans K. La Rondelle)은 분명히 그것을 “유기적인 신학의 통일성과 주제의 계속성 안에서 구약과 신약의 종말론을 함께 묶는 사도적 원리”33로 부르고 있다. (134.6)
 3. 행악자의 잘못된 신분
 바울이 말한 종말론적 행악자의 정체는 진지한 학자들과 괴팍한 이론가들 양자 모두에게 즐거운 사냥터가 되었다. 몇몇 그릇된 정체를 간략히 살펴 보는 것은 정체를 파헤치기 전에 몇 가지 잘못된 개념들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