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9 장 하나님에 대한 반대의 징조들과 재림소망
 징조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구속의 완성이 긴박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또한 끊임없이 준비 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주의 재림의 소망을 마음에 품도록 해주었다. “적그리스도”의 징조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한 요한 시대의 거짓 교사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그러나 요한 시대 “이미 세상에 있”었던(요일 4:3) “적그리스도의 영”은 모든 세대의 교회에 그 촉수(觸手)들을 뻗치고 있으며 특별히 오늘날에도 널리 퍼져 있다. (125.3)
 3. 현대의 적그리스도들
 금세기 동안에 “적그리스도의 영”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나타났다. 그 한 실례를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제성 뿐만 아니라 오류가 없는 성경의 권위와 말씀에 의한 창조,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기적적인 사건, 재림, 원죄 등과 같은 근본적이고 역사적인 그리스도인 신조에 도전하는 합리주의적 자유주의 운동에서 볼 수 있다. 이것들과 그 외의 중요한 성서 신조들이 그것과 기적적인 사건을 배제하는 인본주의적 역사관을 조화시키려는 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비신화화(非神話化, demythologized)” 되었다. (125.4)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함. 예를 들면, 루돌프 불트만은 그가 분명히 진술한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을 포함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14는 이유로 확실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배제한다. 하버드의 신학자 고오는 디 카우프만(Gordon D. Kauffman)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적 묵시에서 야기된 것으로 설명한다.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그는 부활의 의미를 예수의 죽음에서가 아니라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활동에서 찾고 있다.15 (125.5)
 믿음을 역사적인 근거로부터 분리하려는 이러한 교활한 시도는 그 보증의 기초가 되는 믿음을 공허하게 한다. 바울이 기록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 너희 믿음도 헛 것”(고전 15:14)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없애기 위해 그것을 하나님의 사역의 상징으로 바꾸어 버린 것은 신자들로부터 그들의 마지막 부활과 새 창조의 확실한 보증을 앗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5:12~24). (125.6)
 성육신을 부인함.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있다는데서 적 그리스도의 영은 요한의 때처럼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7년에 영국의 7개 대학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신비라는 표제 하에 한 논문집을 발행했다. 그 제목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1세기의 중반에 개종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하는 하나의 신화로 취급되었다. 그 기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돈 큐피트(Don Cupitt)는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등장하는 1세기의 하나님의 사람, 즉 순수한 인간 예수” 16로 정의하고 있다. 죤 알 더블유 스토트(John R. W. Stott)가 그 기고자들 중 한 사람에게 묻기를 “당신은 예수께 경배한 적이 있는지 나에게 말해 주시오” 17라고 하자 그는 즉시 “아니오, 그런 적이 없소”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主)요 구원자로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진정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요한이 그런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묘사한 것은 분명히 적절한 것이다. (126.1)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함. 또 다른 적그리스도의 영의 실례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역사 가운데 일어날 우주적인 사건으로가 아닌 어떤 영원한 진리에 대한 신비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실존주의 신학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현재의 기대에 대한 미래의 실현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현재의 경험으로 바꾸어 버린 것은 재림의 의미에 대하여 현재의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자들로부터 종말에 대한 성서적 전망과 재림을 고대하면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려는 동기를 빼앗아 버린다. (126.2)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함. 적그리스도의 영은 수년 전에 신의 죽음을 선포함으로써 전국적 뉴스거리가 되게한 급진적 신학자들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토마스 제이 알티져(Thomas J. Altizer)는 그의 저서 급진신학과 신의 죽음(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에서 “신은 우주와 역사와 우리의 실존에서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18고 주장한다. 그는 계속해서 “종교”의 신도 죽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회와 전체 기독교국의 교회의 신”도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급진적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세속화된 세상의 견해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126.3)
 세속적 인본주의. 세속적 의식(consciousness)은 오늘날 독특한 방법으로 적그리스도의 영을 구현하는 만연된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본 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평등, 관용 같은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강조해 온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속적 인본주의는 강력히 신을 부인하고 있고 진화론과 자아 방종을 조장하고 있다. (126.4)
 어네스트 몰간(Ernest Morgan)은 인본주의자(The Humantist)라는 책에서 기록하기를 “나는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무시한다. 나는 예수를 현명하고 헌신적인 하나의 교사로 본다. 그는 당대의 사상가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한 인간이다”라고 하였다.19 요한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다. 오늘날 인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 둘 다 신인(神人)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개체를 부인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영을 공유하고 있다. (126.5)
 몰간은 현대인들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이상과 가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 정하지만 “그들은 이 가치들을 싸고 있는 고대 신학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속해서 “곡식을 겨와 분리하는 것은 ∙∙∙ 현대를 사는 우리의 주요한 도전이다”20라고 말하고 있다. (127.1)
 우리가 그들의 신학적 근거들을 파괴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이상과 가치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구원과 궁극적 회복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행하셨고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행하실 일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127.2)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하는 행위들을 부인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는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려는 바로 그 기초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127.3)
 4. 적그리스도의 영의 영향
 종교교육 그리고 일반적인 교육, 그리스도인 신앙과 정부정책, 대중매체,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에 끼치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들의 영향을 평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의 몇 가지 예들은 이러한 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27.4)
 신학교육. 신학교 협회에서 연 2회에 걸쳐 발행하는 신학교육(Theological Education, 1981년 봄)에서 밴더빌트 신학대학의 에드워드 팔리(Edward Farley)는 깜짝 놀랄 정도로 솔직하게 “주요노선”의 신학 교육이 통일된 중심에서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127.5)
 팔리가 말하는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경의 권위를 파괴해 버린 비평적—역사적 연구의 부정적인 영향이다. 성경에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이상 없다면 시종일관 계속되어온 그리스도인의 기별과 사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단원 각자가 자기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기악 연주자마다 다른 음악을 연주하여 불협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 된다.21 (127.6)
 불신과 배교. 자유주의 신학 교육이 만들어낸 이 불협화음의 메아리가 특별히 “주요” 교파에서 들려옴으로써 교인수가 놀라울 정도로 감소하고 있고 근본적인 기독교 신앙이 침식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캐나다인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특별히 대도시 교회인 캐나다연합교회의 교인수가 놀라울 정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127.7)
 그 조사는 “실제 연합교회 교인들의 약 40퍼센트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믿음을 솔직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22고 지적한다. 이 연합교회는 교인수가 1966년에 1, 062, 006명에서 1977년에 930, 226명으로 감소했다. 교회 출석률도 1956년에는 61퍼센트로 높았었는데 1978년에 연합교회는 28퍼센트, 그리고 성공회 교인은 24퍼센트로 떨어졌다.23 (127.8)
 유럽에서는 그 문제가 북아메리카보다 더 심각하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스스로 교인이라 하는 2,800만의 영국인 중 2퍼센트만이 영국 국교의 고정된 예배에 참석한다.” 24 1975년에 비비씨(B.B.C)의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29퍼센트만이 인격적인 하나님의 실존을 강력히 믿는다고 기록했다.25 (1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