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5 장 구약에 나타난 새 언약의 약속
 언약의 약속들의 신학적 연속성
 예레미야는 두 개의 다른 경우에 “새 언약”을 약속하였다. 첫 째는 예레미야 31:31-34에서이다. 32:37-41에 나타난 그의 약속은 병행 구절의 역할을 한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영원한 언약”(32:40; 50:5에서도)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으로 예레미야는 이사야가 미리 약속한 다윗 언약을 통한 “영원한 언약”을 이어갔다. 이사야는 그것을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55:3-4)다고 했다. 그러므로 “새 언약” 혹은 “영원한 언약”은 분명히 이방인 참여자들의 무리를 초청한다. (77.1)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법을 그들의 속에”(렘 31:33; 32:40) 기록한다는 그의 생생한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 한 심오한 종교적인 구절 곧 “야훼를 두려워 함”을 모세로부터 빌려온다. “야훼를 두려워함”이란 모세의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마음의 순종과 같은 표현이다(신 10:12, 20). 예레미야에 따르면, 이 주를 “두려워 함”“한 마음과 한 도”(렘 32:39)로 귀결될 것이다. (77.2)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새 언약을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16:60)을 갱신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화평의 언약”“영원한 언약”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 마음”“새 영”을 주는 것이며(11:19, 20; 18:31; 36:26),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에”(37:27 참조) 다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처소를 만드는 것이다. (77.3)
 에스겔은 새 언약의 약속을 위해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이 약속은 그들의 믿음의 순종을 행사하여야 할 이스라엘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에스겔은 포로된 백성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행습에 대한 개혁을 통해 약속의 실현을 찾으라고 구하라고 호소하였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 18:31). (78.1)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주의 깊이 비교해 보면,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은 예레미야(30-33장)와 에스겔(36-37장) 모두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선지자는 거룩한 열정을 갖고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믿고 있는 각 개인들에게 더 효력 있는 새 약속으로 갱신하고자 하려는 것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선지자적 확신이 그의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향한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을 보여 주었다. (78.2)
 히브리인들의 어법을 배우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히브리어 카다쉬 [châdâsh]; 헬라어 카이노스(kainos)]라는 말은 종종 일시적인 새로움[네오스(neos)]보다는 질적 새로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새 마음”“새 영” 혹은 “새 언약”의 예에서 보듯이 옛 것보다 새 것이 우월함을 나타내면서 “갱신” 혹은 “회복”의 질을 더 가리킨다. 예수께서도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옛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 친히 그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의 새로운 본질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요 13:34; 요일 2:7-8 비교).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옛 것과 새 것이 동시에 될 수 있다.3 (78.3)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새 이스라엘에게 갱신된 언약과 새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그들의 고토로 귀환할 것을 약속하 였다. 선지자들이 말한 것 중 무엇이 계속되는 것이며, 무엇이 새로운 면들을 보여주는가? 먼저 연속되는 특징들을 살펴보자. (79.1)
 모세 언약과의 본질적인 연속성
 예레미야는 옛 언약의 문제가 하나님 자신이나 그의 도덕법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백성 때문에 생겼다고 설명한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31:32). 히브리서의 그리스도인 저자도 같은 문제를 인식하였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8:9),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8:8). 시내 언약만 부정적으로 보는 자들을 위해 모세 언약의 이런 특징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79.2)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언약은 백성들의 가슴과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않은 옛 언약의 불순종의 관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모세와 예레미야는 둘 다 이스라엘의 특징은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레 26:41; 신 10:16; 30:6; 렘 4:4)을 가진 백성이라고 하였다. 분명한 것은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맺은 하늘 “남편”과의 언약 관계에 있다. (79.3)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그러므로 새롭게 된 충성스러운 관계가 예레미야의 호소의 초점이었다.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렘 2:2, 겔 16:8-14 참조). (79.4)
 예레미야보다는 에스겔이 거룩한 남편에 대한 예루살렘의 불충실을 음탕한 창녀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그 결과 랍비는 에스겔 16장을 회당의 예전적 낭독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토의하였다.4 아이히로트(Walther Eichrodt)는 에스겔 16장23장에 대해 “자기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치유할 수 없는 불충의 속성이 산산조각이 나는 그런 식으로 인식된다.”5 (80.1)
 분명히 하나님이나 그의 거룩한 율법의 아니라 백성의 가슴과 마음이 변화되어야 했다. 하나님은 각 신자들에게 온전한 효과가 있으며 영원한 새 언약의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렘 50:20; 겔 16:60).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신경이 곤두 서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기별은 복음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취소할 수 없이 유지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이해 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80.2)
 이제 우리는 “새” 언약의 내용을 가까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언급된 대개의 특징은 하나님의 이전 언약의 약속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 나타난 연속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80.3)
· 언약을 맺으시는 동일한 하나님(31:31, 33);
· 동일한 율법, “나의 토라(Torah)”(31:33);
· 동일한 거룩한 우정,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31:33);
· 동일한 아브라함의 자손,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
· 죄에 대한 동일한 용서(31:34).
(80.4)
 새 언약을 구성하는 이 다섯 요소는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의 공통 핵심이 야훼의 토라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야훼를 경외”(참조 신 6:6, 7; 10:12, 13; 30:6)하는 증거로써 마음속에 감사하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라고 반복하여 촉구하였다. 토라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 자발적인 순종은 모세 언약과 새 언약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구약 학자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다음과 같은 예리한 주석을 제공한다. (80.5)
토라(Torah)는 야훼께서 “오늘날” 이스라엘과 맺으려는 새 언약의 중심에도 서 있다. 그리하여 야훼의 자기 계시의 내용에 관한 한 새 언약은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 예레미야도 시내 산에서 주어진 계시가 전체이는 일부이든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 어떤 개념으로도 그 내용을 새 언약에서는 변경하거나 확대해야 한다고 제 안하지도 않았다 ∙∙∙ . 여기에 나타난 요점은 새 사람에 대한 묘사이다. 그는 그의 본성에 대한 기적적인 변화로 인해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된 사람이다.6
(81.1)
 이 심원한 통찰은 새 약속과 과거에 있었던 아브라함 자손들의 구속적 경험 사이에 극단적인 대조를 만들지 않는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칭찬은 그의 신실한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승리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다(참조 히 11장). 모세 언약을 균형지게 평가하려면 특별히 시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81.2)
 사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 그들 마음속에 있으며, 그들을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한다고 주장하였다(시 37:31; 19:8 참조). 다른 시편 기자는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야훼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 내가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시 119:10-12, 16, 97)라고 기도 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의로운” 자는 성경을 의미하는 “야훼의 토라를 묵상하는” 중에 영적 “기쁨”을 체험하였다(시 1:2; 수 1:8 상단).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뜻과 조화되도록 그들의 삶의 질서를 잡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지시를 성경에서 발견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6편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1절). (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