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5 장 구약에 나타난 새 언약의 약속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동안 어떤 종류의 희망을 받았는지 고려하고자 한다. BC 722년에 앗수르가 북방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다메섹 너머로 추방하였다. 그 다음 BC 605년과 586년에 느부갓네살이 남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수많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예루살렘과 아름다운 솔로몬 성전은 폐허가 되었다. 선지자들은 이 역사적인 이스라엘의 재앙을 하나님께서 그의 반역적인 언약의 백성을 상대로 소송(rîb)을 제기한 결과 즉 언약의 저주나 야훼의 심판으로 해석하였다(왕하 17:7-23; 대하 36:15-21; 사 1장; 미 6장; 렘 2장; 단 1:2 참조). (71.1)
 이 나라의 조상들은 “야훼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속적으로 그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폭력으로 위협받으며 원수의 땅에 끌려왔다. 그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은 열방 가운데서 독특한 정체성을 제공하던 두 가지 제도, 곧 다윗 왕조와 성전 의식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동안 이제는 무엇이 그들에게 정체성과 희망을 줄 것인가? (71.2)
 새 언약의 핵심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심판을 받은 역사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세 명의 선지자 곧 예루살렘에 예레미야, 바벨론 포로 중에 에스겔, 그리고 바벨론 궁정에 다니엘을 부르셨다. 이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무리에게, 특별히 자비로운 언약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기꺼이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 언약을 다시 확신시켰다. (72.1)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새 언약과 새 성전으로 다윗 언약의 약속을 새롭게 하였다. 다니엘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단 9:419; 신 27장레 26장 참조) 이스라엘에게 내린 언약의 저주는 정당하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이스라엘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하였다. 그는 수치를 느끼며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9:16)고 인정하였다. (72.2)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호소하였다. “내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단 9:45). 그러나 다니엘을 압도하던 관심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옹호되는 것이었다.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9:17-18). (72.3)
 그의 간청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새 생전의 봉헌과 함께 예루살렘 재건을 약속하셨다. 그 새 성전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정하”고, 그 성전은 다시 “영광으 로” 가득 찰 것이었다(9:24-27; 학 2:5-7 비교). (73.1)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미래의 언약 관계는 약속된 왕 메시아를 통해 더욱 효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사명을 성공할 것이다(사 42:14; 61장; 단 9:24, 27). 에스겔은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겔 37:23-26) 하리라고 예언하였다. 메시야 시대에 모세 언약의 도덕법은 하나님의 선민의 양심과 성화된 삶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구약 학자 해럴슨(W. J. Harrelson)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 하였다. “율법은 더 이상 백성들이 그것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불충으로 반응하는 그들에게 외적인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있고 그들의 삶 그 자체를 형성한다. 그 결과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친교하며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1 (73.2)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둘 다 참된 종교는 각 개인의 심령과 삶 속에 내면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이 내면화 경험을 모세의 율법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이 그의 성령에 의해 그들의 가슴과 마음에 기록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러한 “재창조” 행위가 믿음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성화의 의지가 온전히 실현되는 신령한 이스라엘이 되게 한다. (73.3)
 예레미야는 인간 영혼의 본래적인 자기중심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진술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께 진정한 순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타고난 마음에 대한 유일한 치료책은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변화시키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청중들에게 호소하였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야훼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야훼의 말이니라”(렘 9:24). (73.4)
 예레미야는 각 사람들에게 야훼를 찾아서 그를 경험적으로 알아야 된다고 격려하였다. 그는 주의 이름으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야훼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렘 29:13-14)리라고 주의 이름으로 확신을 주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새 언약은 개인적인 믿음의 헌신이 없이는 주장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언약의 축복의 개인적인 성취는 참 이스라엘 사람의 회개하는 태도, 곧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13절)을 필요로 한다. (74.1)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린 언약의 저주는 은혜롭게도 그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칠십 년”(25:12; 29:10)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 회복하리라는 보증을 더 첨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작은 소책자로 볼 수 있는 30-33장에서 그것들을 한 데 묶었다. 학자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거룩한 네 가지 약속이 있는 이 네 장을 “예레미야의 작은 위로의 책”이라고 부른다. (74.2)
 새 언약의 종말론적 관점
 예레미야의 영감적인 희망의 기별 가운데서 우리는 다른 기별 들 위에 두드러진 한 약속을 발견하는 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에 북극성처럼 비치고 있다. 그것은 “칠십 년”의 끝에 바벨론에서 그들의 고토로 돌아올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야훼의 새 언약의 약속이다. (74.3)
“나 야훼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야훼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 음이니라 나 야훼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야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야훼의 말이니라”(렘 31:31-34)
(75.1)
 포로 중에 있던 열두 지파 모두에게 주신 이 “새 언약”의 약속 은 이스라엘 언약 신학의 고전적인 구절이다. 이 새 언약의 약속은 또한 기독교 신학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구절은 신약에 인용된 구약 중 가장 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히브리서 8장에 인용되어 있고, 일부가 히브리서 10:16-17에 반복되어 있다. 예레미야의 구절은 또한 아홉 개의 다른 신약의 본문의 주제 이기도 하다. 그 중 넷은 주의 만찬을 다루고(눅 22:20; 고전 11:25: 마 26:28; 막 14:24), 셋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추가적인 언급들이며(9:15; 10:13; 12:24), 바울 서신의 두 구절은 “새 언약의 직분”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미래의 용서를 다루고 있다.(고후 3:6; 롬 11:27). 분명히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이 구약과 신약을 본질적인 연속성과 통일성 속에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75.2)
 선지자들은 “말일”에 율법이 현저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을 때 하나님의 토라에 종말론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사 2:2-4; 42:14; 미 4:14 참조). 그들 모두는 자기들의 미래에 대한 조망을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이라는 틀 안에 두었다. “나 야훼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 31:3). (75.3)
 예레미야의 위로의 책에 나타난 이 중심 주제는 오직 신명기 30:1-10에 나타난 모세 언약의 약속을 재생한 것이다. 모세도 하나님의 신정 왕국으로서 이스라엘이 고토로 귀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새로운 마음의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이 마음의 “새 로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모든 약속의 핵심이다. 특별히 선지자 이사야는 40-66장에 나타난 그의 방대한 회복의 약속을 이스라엘 언약 경험의 영적 갱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네 모든 자녀는 야훼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사 54:13). (76.1)
 이 언약의 약속은 새 땅에 위치한 새 예루살렘에서만 그 우주적 충만함으로 실현될 것이다(사 11:9, 54:10-15; 65:17-19; 벧후 3:13; 계 21:2-5 비교). 밀러(Patrick D, Miller)는 예언적 희망을 “이 모든 본문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조건들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순종을 약속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약의 요구들을 지킬 수 있다”2고 잘 요약하였다. (76.2)
 예레미야에서 신약으로 옮겨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예레미야의 약속을 그의 직접적인 청중들인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들의 귀로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는 그 약속을 예레미야의 전체 “위로의 책”(30-33장)과 함께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 예언은 그 자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적 상황은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동 시대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약속들을 에스겔의 약속들과 함께 포로 중에 있는 같은 이스라엘에 나란히 놓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메시아 시대를 위한 새 언약의 약속을 좀 더 충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레미야 31-32장에스겔 36-37장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