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의 분신(分身)이듯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호흡을 지닌 그분의 분신이다. 그분이 창조하실 때는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셨는데, 구원하실 때는 팔을 쓰셔야 했다.

 — 시편 8편(61.1)
 별빛이 강처럼 흐르는 밤에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밤, 저녁상을 물리고 마당에 펴놓은 멍석에 누워 별빛이 강처럼 흐르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누나와 함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을 헤아리던 소년 시절의 회상이 새롭다. 한없이 높고 끝없이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은하수 물굽이를 따라 시선을 첨벙이던 소년은 이내 잠잠해진다. 신비의 늪에 빠져든 것이다. 풀벌레 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을 귓전에 흘리며 소년은 어느새 초가을 저녁 시간에서 풀려나고 앞마당에서 벗어나 콧등을 스치는 바람결을 영원처럼 느끼며 밤하늘의 변두리를 향해 치닫는 것이다. 아, 신비한 우주! 그리고 이 신비한 우주 한 모퉁이에 나둥그러진 나는 누구인가? (61.2)
 감성이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 목자였던 다윗은, 양떼와 함께 들판에서 밤을 보내며 뜨고지는 달과 은모래를 뿌린 듯 반짝이는 별들의 바닷가를 거닐며 그런 사색의 블랙홀(black hole)로 빠져들어 간 것이다. (62.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편 8편 1절). (62.2)
 밤하늘은 신비롭다. 낮 동안 구만리 장공(長空)을 이글거리며 질주하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나면, 밤하늘은 검은 색 융단을 허공에 펴고 우주의 보석을 쏟아놓는다. 그리고 낮 동안 땅 위의 하찮은 사물에 마음을 빼앗겼던 허망한 인간들을, 온통 눈이 어리는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명상의 궁전으로 초청한다. (62.3)
 밤하늘의 검은 바탕에 별들의 금강석으로 새겨진 하나님의 이름이 별빛을 따라 하늘에서 반짝일 때, 하늘 위에 두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을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62.4)
 그러나 이렇듯 명백하고도 단순한 밤하늘의 신비를, 별 것 아닌 인생살이로 머리가 복잡해진 어른들, 터무니없는 무신론적인 편견과 부질없는 합리적인 독선으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로마서 1장 21절)진 인간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답답한 일이다. (62.5)
 동심은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
 밤하늘에 펼쳐진 하나님의 영광을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노래하던 시인은 갑자기 노래를 그친다. 명명백백(明明白白)한 사실을 가지고도 명분을 내세워 시비를 일삼는 골치 아픈 어른들이 생각난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어른들을 가르칠 사람은 어린 아이뿐이다. 동심(童心)은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63.1)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편 8편 2절). (63.2)
 어린 아이의 통찰은 직관적이어서 본 대로 말하고 있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리 꼬이고 저리 뒤틀려 생각이 비뚤어진 빗나간 어른들의 거짓과 독선을 여지없이 들통나게 한다. (63.3)
밤하늘의 검은 바탕에 별들의 금강석으로 새겨진 하나님의 이름이 별빛을 따라 하늘에서 반짝일 때, 하늘 위에 두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을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63.4)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 행하신 일들은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인류의 구주이심을 밤하늘의 별처럼 분명히 드러냈다. 아이들은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데도, 편견과 독선으로 직관(直觀)이 망가져 사시(斜視)가 된 종교 지도자들은 한사코 그를 대적했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예수께서는 시편 8편을 인용하셨다.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없느냐”(마태복음 11장 25절). (63.5)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을 헤아리던 동심의 맑은 눈으로 마침내 하나님을 보게 되는 청결한 마음인 것이다(마태복음 5장 8절 참조). 마음이 맑아야 별도 보고 하나님도 보게 되는 것이다. (64.1)
 달과 별을 우러러보면
 싫증나는 어른들의 독선과 편견을 후닥닥 떨쳐버리고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온 시인은 다시 더 정다워진 달과 더 찬란해진 별들을 지극한 외경(長敬)을 가지고 바라본다. (64.2)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편 8편 3절). (64.3)
 인류의 하나밖에 없는 거처인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고 태양계는 은하계의 일부이다. 그런데 태양을 직경 1cm의 구슬에 비하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도 300km나 떨어져 있는 구슬이 된다. 그런데 태양과 같은 이런 별〔恒星〕들이 자그마치 2천억 개쯤이나 모여 은하계를 형성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다시 은하계 밖을 빠져나가 더 멀리 가면 안드로메다와 같은 성운(星雲)들이 있는데 이들도 1천억 내지 2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외부 은하들이다. 직경이 10만 광년이나 되는 은하계와 1천억 개도 넘는다는 외부 은하에는 1조의 1천억 배(1023) 보다도 더 많은 별들이 빛의 속도로도 50억 년은 걸려야 가로지른다는 광대 무변한 우주에 흩어져 있다니 참으로 무한한 공간에 무수한 별들이다. (64.4)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원과 무한의 개념이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전도서 3장 11절)신 하나님이 거기 밤하늘 저편에 계셔서 영원한 별들의 언어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리라”(이사야 40장 26절).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아직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아브라함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창세기 15장 5절)고 속삭이셨다. 그 때도 영원한 별들의 언어로 말씀하신 것이다.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