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늘 변동하는 역사의 흐름을 해석하기 위해 구체적인 하나님의 비추임이 없다면 유한한 인간 존재가 역사적 사건들의 혼란스런 파노라마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성경에 비추어서만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작동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역사 및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사도교회의 복음 선포에서 추적할 수 있다(마 24:1-14; 행 7:1-53; 10:34-43; 13:16-41; 17:22-31; 엡 1:3-3:13). 성경은 인간 역사 전체에 의미와 목적을 주며, 따라서 성경을 떠나서는 그런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없다. 역사도 하나님의 계시의 양태이지만 하나님 자신이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해석을 제공할 때만 그런 계시를 인식할수 있다. (54.5)
 앞에서 살펴본 천연계와 인간 존재와 역사에 대한 개괄적 연구에 제시된 증거는 이것들 각각이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임을 강하게 내비친다. 그러나 이런 계시는 자연 신학을 위한 충분한 자료가 되지 못하며, 따라서 확신과 평화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낳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지 못한다(참조 신론 I. B). (54.6)
 C. 자연(Natural Theology)과 이방인의 구원
 수 세기 동안 성경학자들은 천연계와 논리적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하였다. 고대 헬라 철학자들은 이성적 성찰을 통해 그들이 신(쎄오스)이라고 일컬은 보편적 이성(로고스)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철학적 지식을 신에 관한 이성적 지식 곧 “신학”(theology, 헬라어 쎄올로기아)으로 일컬었다. 또한 그것을 신화적 신학(신들에 관한 지식)과 구분하기 위해 자연 신학이라고도 칭했다. 이런 자연 신학이 헬라 철학자들을 고대 신화를 비평하도록 만들었지만 많은 신을 숭배하는 데서 한분 참하나님을 섬기는 데로 그들을 돌려놓진 못했다. (55.1)
 사도 바울은 “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들은 그가 헬라인들의 자연 신학을 익히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으로 이끄는 데 부족하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 바울은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 1:22) 그들의 지혜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고로”(고전 1:21). (55.2)
 바울은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것이 드러내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불신과 죄와 무지로 어두워진 인간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유린되었다고 믿었다(롬 1:19-21). 하나님의 영의 깨우침을 받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 얻은 지혜는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쪽보다는 우상숭배로 몰아간다. 사도는 그런 인간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25절)고 지적했다. 최종적인 결과는 비열한 우상숭배와 추잡한 부도덕성과 잔인무도함 등이었다(22-32절; 참조 엡 4:17-19). (55.3)
 논란이 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방인들이 천연계와 양심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성경에 나오는 증거는,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에 반응하여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변화되고 영적인 지각력이 일깨워질 때 창조물과 섭리만으로도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얻을수 있음을 내비친다. 성경은 성령의 변화시키는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의 선포를 연관시킨다(행 2:38, 39; 10:42-44; 11:15-18; 갈 3:1-51; 벧전 1:10-12). 그리스도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증거하신 대로 구원은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이르러 온다. 이런 까닭에 예수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막 16:15-16; 참조 마 28:18-20; 롬 10:9-17; 딤전 2:3-7). (55.4)
 분명히,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은 성경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은 율법이 없지만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본성적으로 행함으로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이방인(롬 2:14, 15)에 관해 말한다. 이런 진술들은 인간의 음성을 통해 복음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도 성령이 변화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이 있다고는 암시하지 않는다. 또한 이 진술들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이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에 이르는 대안적인 길이라고 암시하지도 않는다(참조 신론 VII. C. 5). (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