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서론과 정의
 계시 관련 언어는 대부분 사람과 연관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언어를 천연계의 현상에 대해서도 사용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 19:1) 같은 구절들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개념을 가리키기 위해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었지만 그중에서 “일반 계시”(general revelation)라는 말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52.1)
 성경은 천연계에 나타난 계시에 관해 말할 뿐 아니라(시 19:1-4; 롬 1:19-23), 인간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인식도 내비친다. 바울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롬 2:15) 이방인에 대해 말하고, 전도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고 주장한다. 도덕적인 책임 곧 선과 악, 옳고 그름 사이의 구별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발현으로 여겨진다. (52.2)
 일반 계시는 보편적이며 모든 인간 존재가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정의될 수 있는데, 이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요 유지자요 주인으로 알려진다. 인류와 관련지어 말하자면, 이 일반 계시는 외적인 것이면서 내적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눈을 돌리든지 하나님의 작품 및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와 마주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아덴의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 17:28)고 선포한 것이다. (52.3)
 일반 계시에 대해 다양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결정적인 이슈는 일반 계시가 하나님에 대한 이성적인 지식 곧 자연 신학에 필요한 요소를 제공하는지와 관련된다. 도처에 편만한 악, 고통, 타락, 파멸, 죽음 등에서 하나님에 대한 어떤 개념을 끌어낼 수 있을까? 특히 점점 증가하는 명백한 종교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질문은 일반 계시가 하나님에 대한 구원하는 지식을 제공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유대교/그리스도교 전통을 벗어난 종교나 세계관을 따르는 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선교는 필요한가? 하나님은 자신을 보편적으로 계시함으로 어떤 종교든지 인간을 하나님 자신에 대한 구원하는 지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하셨는가? (52.4)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려면 인간 가족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성경에 따르면, 창조를 끝낸 후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 1:31). “심히 좋다”(very good)라는 것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신 첫 인간 부부가 포함되었다. 그들에게는 영적, 도덕적, 정신적, 육체적 결함이 없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전 7:29)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완전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불순종하였다. 그 결과들은 급진적이었다. 사랑과 존경이 수치와 두려움으로 뒤바뀌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부부는 창조주가 접근하자 숨었다. 그 후 인간 가운데 있는 악과 고통과 죽음은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는 엄연한 실재가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심히 좋지” 않았다. 바울에 따르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 있다(롬 8:22). 인간 존재는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히 2:15) 처지에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로 인간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그런 계시에 사랑과 믿음으로 반응하기는 더욱 어렵다(참조 죄론 III. 1-3; 인간론 II. A, B). (52.5)
 B. 일반 계시의 양태(樣態)
 일반적으로 일반 계시의 주요 양태를 세 가지(천연계, 인간 존재, 역사)로 구분할 수 있다. 성경은 이런 구분을 지지하지만, 계시가 각각의 양태를 통해 어느 정도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53.1)
 1. 천연계
 성경의 기자들은 천연계의 현상을 하나님과 그분의 속성에 대한 계시로 자주 언급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든 측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의 발현이다. 몇몇 시편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필요에 공급하시는 천지의 창조주인 하나님께 끊임없이 찬양을 돌린다(시 8:1-4; 19:1-6; 33:1-9; 104:1-35; 136:1-9). 신앙 공동체를 위한 이런 찬송 시편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장엄함과 사랑 깊은 돌보심의 계시임을 보여 준다. 구약의 많은 부분 특히 욥기와 이사야의 많은 부분은 같은 기별을 전달한다. 이사야 40:12-31의 도전적인 질문들은 전능하지만 동정어린 마음을 지니신 창조주 곧 야훼를 가리킨다. (53.2)
 예수는 영적인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청중들의 시선을 천연계의 사물들로 돌리곤 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는 가장 비천한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고 물었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게 하신다(마 5:45). 천연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기타 교훈에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거짓 선지자)에 관한 것도 있다(마 7:15-20). 창세기 3장과 조화되게 예수는 천연계가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을 드러낸다고 가르쳤다. (53.3)
 그러나 천연계의 현상은 선과 악에 대한 모호한 면모를 알게 해 준다. 더욱이 악의 결과로 천연계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온 세상을 강타한 가장 큰 “천연 재해”는 노아 시대의 범세계적 홍수였다. 창세기 6-8장에 따르면, 그것은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의 굳어진 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다. 빈번하게 성경은 천연계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힘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제시한다(애굽에 내린 열 재앙[출 7:1-12:32],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황폐시키는 가뭄[왕상 17:1], 요나가 도망가려고 탄 배를 위협한 폭풍[욘 1:1-16]).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반역과 배도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성경은 욥기 1-2장에서 천연 재해가 사탄이 활동한 결과일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언제나 그것을 궁극적으로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다. 욥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 하나님은 사탄에게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다(욥 2:3)고 말씀하셨다. (53.4)
 바울은 천연계를 하나님의 계시의 한 양태로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롬 1:20)고 말했다. 성경에 따르면, 천연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돌보심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죄악 세상에 창궐한 부패와 질병, 재앙과 죽음으로 천연계도 타락의 결과들을 들춰낸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매일 나타나지만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연 신학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중적인 측면을 모두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53.5)
 2. 인간 존재
 인간 존재는 일반 계시의 또 다른 양태를 구성한다. 인간 존재는 타락한 상태에 있지만 그들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표를 지닌다(창 1:26, 27). 다윗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역사를 바라보면서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4)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시 8:5)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질문에 답한다. (53.6)
 성경은 인간 존재에겐 하나님을 아는 직관적인 지식이 있다고 강하게 내비친다. 시작부터 그분의 존재에 대한 지식은 전제되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레데의 시인 에피메니데스(BC6세기)의 글에서 인용한구절로 자신의 주장을 확증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행 17:27-28). 그러나 이런 직관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그런 현자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행 17:24)은 알지 못하는 신이었다(23, 24절). (54.1)
 그리고 성경은 양심의 소리를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양심의 주된 임무는 우리에게 옳은 일을 하고 그릇된 일을 피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또한 양심은 심판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런 기능은 사람마다 달리 작용할수 있지만 보편적인 현상이다. 신약에 의하면, 양심의 소리도 저항하거나 억누를 수 있다(딤전 4:2; 딛 1:15). (54.2)
 인간의 이성도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제시되어 왔다. 특별히 합리주의자와 이신론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성의 빛만으로도 하나님과그분의 속성과 뜻을 충분히 알수있으므로 초자연적인 계시 같은 것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성은 계시를 받고 이해하는데 그리고 거룩한 진리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계시와 진리를 생성하지는 못한다. 오래 전 욥에게 던진 소발의 질문에 이런 사실이 표현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 11:7). 바울은 세상이 이성과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적었다(고전 1 :21). 성경은 자율적인 인간 이성을 하나님에 대한참된 지식의 원천으로 보지 않는다. (54.3)
 3. 역사
 역사도 일반 계시의 한 양태로 여겨진다 성경은 하나님을 천연계뿐 아니라 역사의 주인으로 제시한다. 선지자 다니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신다(단 2:21). 성경에 나오는 예언적 및 역사적 기사들은 시종일관 열국의 일을 지도하시고 열국과 그 지도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제시한다(창 6:6, 7; 11:7-9; 18:16-19:25; 렘 18:7-11; 암 1:3-2:16).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현자들에게 하나님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행 17:26)고 천명했다. (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