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3 장 제자들이 믿음 (2:1-11)
1-3a 기본적 상황
3b-5 예수와 그의 모친 사이의 대화
6-8 이적 그 자체
9-10 이적의 확인
11 저자의 주석
 문단의 배경
 구약과 그 당시의 배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 사항들이 요한복음 2:1-11의 측면들을 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풍부한 포도주는 하나님이 말세에 이룩할 미래의 왕국을 기술하는 구약 구절들의 특징적인 표현이다(사 25:6; 렘 31:12; 암 9:13, 14). 그러므로 예수께서 결혼 잔치에서 여분의 포도주를 제공하신 것은 요한복음이 구약의 종말 기대가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이해를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증이다(이 책의 제6장을 보라). (88.2)
 물 항아리의 크기(20-30갤런[약 80-115리터]들이)는 고대 세계에서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의식적 정결에 집착하는 것을 질책하기 위해 물 항아리의 크기를 언급했을 것이다. 신선한 물은 고대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얻기가 어려웠으므로, 이 이야기의 세부 사항들이 모두 눈여겨볼 만하다. (88.3)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이야기는 또한 독자들에게 구약에 나타나는 변화의 이야기를 상기시켜 준다. 모세는 고대 애굽에 내린 재앙들 중의 하나로 물을 피로 바꾸었다(출 7:14-24). 엘리사는 여리고의 쓴 물을 맛이 달고 유용한 물로 다시 변화시켰다(왕하 2:19-22). 가나의 이적에 대하여 특별히 흥미로운 평행 구절은 열왕기하 3:12-25인데, 이것 역시 엘리사의 경험에 나타난 것이다. 여러 왕들이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구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갔다. 그의 대답은 예수께서 그의 모친에게 하신 것과 같았다: “우리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하튼 그는 그들과 함께 일하기로 동의했다. 그의 충고대로 기적적으로 물이 흘러나왔고, 적들에게는 그것이 피처럼 생각되었다(3:22, 23). 이러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은 모압에 대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88.4)
 당시의 문제는 또한 이 혼인 이야기에 대한 배경적인 지식에 의해 제기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이 그리스도인의 주정(酒酊) 음료 사용 여부에 대한 논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요한복음 2:1-11 또는 그것의 배경에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가 발효된 것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없다. 한 가지를 지적하면, 이 문단에서 사용된 포도주란 단어(오이노스[oinos])는 헬라어에서 중립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가리킬 수도 있고 발효된 포도주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 문단의 용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방법으로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89.1)
 포도즙이 있었다고 해도 전혀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 가지를 지적하면, 만약 혼인 예식이 가을에 거행되었다면(예수의 침례가 약 한 달 이전에 있었다고 할 경우), 팔레스타인은 포도 수확기로 신선한 포도즙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할 수 없었다 해도 매우 뛰어난 보존 방법들이 그 시대에 잘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포도즙은 끓여서 잼을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것을 공기가 모두 제거될 때까지 질항아리 속에 눌러 넣어두었다. 그런 후에 윗부분에 얇게 바른 감람유 층이 여러 달 혹은 심지어 여러 해 동안 그 내용물을 보존시켜 주었다. 후에 사람들은 그 보존물에 물을 섞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기는 결과가 발효되지 않은 음료이다. 이보다 앞서 이 혼인 예식에 제공된 것의 대부분이 물을 다시 섞어서 만든 포도즙이었다면, 예수께서 포도나무에서 갓 짜낸 신선한 포도즙을 만들어내신 것은 이 문단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주의를 끌 만한 일이었다(10절; 참고 화잇, 시대의 소망, 149). (89.2)
 그러므로 주정 음료 사용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이 본문에 기초해서 가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주정 음료를 전적으로 금해야 할 상당한 과학적, 사회적, 영적인 이유가 있다. 엘렌 화잇은 교회 증언, 5:354-361에서 그 몇 가지 이유들을 요약해 주고 있다. (90.1)
 문단의 세부 사항
 예수, 그의 모친,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혼인 예식에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예수의 친척의 혼인 예식이었음을 시사한다(화잇, 시대의 소망, 146). 제3세기의 전승에 의하면, 요한, 즉 사랑받는 제자는 마리아의 자매인 살로메의 아들이었다. 이는 요한과 예수가 이종사촌간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전승은 몇 학자들로 하여금 이것이 요한 자신의 결혼식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의 친척의 결혼식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Brown, 1:98). 하여튼 혼인 예식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잔치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일을 도와주는 신부 보호자(matron of honor)의 역할에 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포도주의 부족을 자신이 책임질 문제로 보았을 것이다. (90.2)
 포도주의 공급이 손님들의 부조(扶助)에 의존하고 있었다면(Brown, 1:102), 마리아가 예수에게 한 말(3절)은 자신의 마땅한 몫을 가져오지 않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꾸지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이 예수와 그의 모친을 미묘한 곤경에 빠지게 하자, 그녀는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내려고 예수에게 그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라고 권한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자신의 모친을 부를 때 사용하신 여자여(woman)라는 용어가 고대에서는 굳이 무례한 표현은 아니었다. 요세푸스의 저술(고대사 17:74)에서 매우 사랑받는 아내가 그녀의 남편에 의해 “여자여”라고 불리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그의 모친과 단 두 번 조우하시는데, 두 번 다 그는 이 용어를 사용하셨다(2:4; 19:25-27). (90.3)
 비록 여자여 라는 용어가 무례한 표현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번 경우에서 예수께서는 그의 모친과 분명히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그녀는 인기 있는 메시야가 하는 일을 하도록 그에게 압력을 가하기를 원했다. 반면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일정(agenda)이 그의 모친이나 여타의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에 의해서만 정해진다는 것을 의식하고 계셨다.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라면, 그의 사업에 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와 같은 행동이 적절할 때가 오겠지만, 예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4절). 대신에 그는 자신의 사명을 영화롭게 하여 그에 대한 바른 믿음을 낳게 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11절). 만일 예수께서 여기서 그의 모친에게 다소 거칠게 대하셨다면, 이는 그가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자신의 활동 시간표를 바꾸려고 유혹하는 사단의 작용을 인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화잇, 시대의 소망, 147). (91.1)
 본문은 물이 유대교의 물 항아리 속에서 포도주로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6절). 출애굽 기간 동안에 모세는 애굽의 물 항아리 속의 물을 피로 변하게 했다. 모세의 행위와 예수의 행위 사이의 평행이 요한복음에서 매우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문단의 주요 주제」를 보라). (91.2)
 연회장이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 흥미롭다(9절). 그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유대교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간직해 두었다고 생각한 것(10절)은 요한복음의 기별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예수의 이적은, 하나님의 축복들이 크게 종말론적으로 부어지는 일이 예수라는 인물을 통하여 이르러왔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적은 “표적”(“sign”)이라 일컬어졌다(11절). (91.3)
 구약에서 “표적”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간직한 자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행위였다(출 3:12; 4:1-9; 삼상 10:1-9). 예수의 이적들도 그의 사명에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이적들은 그 이상의 목적을 수행한다. 그것들은 그 왕국에 대한 비유의 역할을 한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져오신 포도주는 예수라는 인물 속에서 인류에게 허락된 위대한 종말론적 및 영적 축복들을 상징한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을 통하여 예수의 성품과 사명은 더 분명히 빛을 발하였고, 그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그 결과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11절). 그러므로 이적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영광”을 보게 할 때, 그것들은 믿음을 낳게 한다. 이적들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면(3-5, 23-25절; 6:26), 그것들은 예수에 대한 참된 믿음을 막아버리는 장벽이 될 수 있다. (91.4)
 문단의 주요 주제
 포도주가 모자람
 표면적으로 볼 때, 이것은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스스로도 매우 당황하고 다른 이들도 당황하게 하는 한 쌍의 가난한 부부에 관한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고매한 방문자는 연회장(宴會長)까지 놀라게 한 기적적인 행위로써 그들의 당황한 처지로부터 그들을 구출해 주었다. 그러나 이 복음서에서 이 이야기는 하나의 유쾌하고 악의 없는 간주곡으로 말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 복음서의 저자의 신학에 심각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92.1)
 이 문단의 중심이 되고 가장 뚜렷한 신학적 관점은 메시야 없는 유대교의 실속없음(barrenness)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로서의 포도주의 역할이다. 정결 의식을 위한 대형 물 항아리들(6절)에서 요한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사항들에 대한 유대교의 과도한 관심을 보았다. 고발의 내용은 이러했다: “포도주가 모자란다”(3절). 그리고 마침내 좋은 포도주가 나왔을 때, 연회장은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조차도 몰랐다(9절). 그는 그들이 좋은 것을 먼저 내는 관습을 따르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10절). (92.2)
 그러므로 연회장은, 예수께서 찾아오셨지만 그를 알지도 못했고(1:10), 그를 영접하지도 않은 그의 “백성”(11절)을 대표했다. 유대교는 씻기 위한 물에 관심을 쏟고 있는 반면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좋은 포도주를 제공하셨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그와 같은 영적 “포도주”가 거기에 있음을 깨달은 때에도 그것이 그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5:11-13; 9:13-17, 24). 이와 마찬가지로 니고데모도 예수께서 가동(稼動)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해 무지함을 보여주었다. (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