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3 장 제자들이 믿음 (2:1-11)
 요한에게 있어서 물을 포도주로 대체하는 것은 예수께서 유대교보다 “더 나은 것”을 제공하셨다는 사실을 상징하였다. 그는 정결 의식, 성전, 절기, 그리고 유대 제도의 규례들에 대한 대체물이었다. 유대인 예배자가 정결 의식, 성전, 그리고 절기를 통해 추구했던 모든 것은 예수 안에서 풍성하게 발견될 수 있었다. 특히 포도주는 영생에 이르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길을 제공한 예수의 피를 상징하였다. 포도주를 통하여 영광스러운 종말 왕국에 대한 구약의 약속이 예수의 시대에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도 이것의 연장으로서, 요한복음은 실제적인 삶의 모든 대용품들에 대한 궁극적인 대체물을 예수에게서 발견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고 있다. (93.2)
 예수의 때
 예수께서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기를 원치 않으셨다(4절).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때는 특별히 그의 체포, 심문, 그리고 죽음의 때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를 체포할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7:30; 8:20; 13:1; 17:1). 반면에 12:23에서 예수의 때는 그가 영광스럽게 되는 때이다. 얼른 보기에는 이 문단이 다른 문단들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24절은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되는 때가 또한 그의 고난과 죽음의 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의 때와 영광 사이의 연관성은 가나의 혼인 이야기에서 처음 나타난다(4, 11절). 이것은 요한의 생각 가운데는 가나에서의 첫 이적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93.3)
 예수의 영광
 요한복음에 의하면, 십자가가 어떻게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는가? 이에 대한 최선의 답은 12:37-41에 있다. 이 문단에서 요한은 이사야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41절). 이 과정에서 그는 이사야서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는데, 하나는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구절에서 따왔고(12:38), 다른 하나는 6장의 이사야가 선지자로 사명을 위임받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40절). 이사야 6장에서 선지자는 야훼가 높이 들린 보좌에 계신 것을 보았다. 53:8-12에서 그는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고난받는 종을 보았다. 요한이 믿은 바와 같이, 이사야가 이사야 6장에서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면, 예수는 그의 인격(person) 속에 하나님의 영광과 대권을 지니신 구약의 야훼[여호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사야도 이사야 53장에서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면, 그 영광은 보좌 위에 보여진 하나님의 광채 가운데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94.1)
 요한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분명히 중심 되는 사항이었다. 이 복음서의 정수는, 우리가 서언에서 본 것처럼, 예수가 이 때까지 이 땅에 전해졌던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명백한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이다(1:1, 14). 서언은 십자가에게 각광을 비추지 않았지만(하나의 희박한 가능성은 11절“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는 구절이다), 이 복음서의 본론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궁극적이고도 가장 명백한 현시(顯示)로 부각된다. 요한이 이 계시의 모든 사항을 세세히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죄와 그것의 결과에 대한 그분의 증오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가장 명백한 현시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믿어지지 않는 위대한 자비의 현시가 있다. (94.2)
 이와 같은 예수의 영광에 대한 보다 충만한 의미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사랑받는 제자는 십자가 옆에 있던 유일한 제자였다. 열두 제자 중에서 오직 그만 구주의 궁극적인 영광을 보았고, 그리하여 예수에 대한 그의 증거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95.1)
 가나와 십자가
 그러므로 가나의 혼인 이야기와 십자가의 이야기 사이에는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혼인은 예수의 부활처럼 “사흘 되던 날”에 있었다. 가나에서 예수의 때와 영광이 함께 연결되는데, 이것은 가나 이외의 곳으로는 오직 십자가 자체의 정황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다(12:23, 24; 17:1, 5). 2:419:26 (십자가 이야기의 일부)에서만 예수의 모친이 나타나고, 두 번 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여자”라고 부르신다. 또한 포도주는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을 맺고 있다. (95.2)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가나의 혼인과 십자가 사이에는 괄목(刮目)할 만큼 많은 연관성이 있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표적은 그가 고난과 죽음에 굴복함으로써 행하신 궁극적인 표적의 맛보기(foretaste)였다. 2:11에서 그 표적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십자가에 대한 그들의 미래의 반응을 예표했을 뿐만 아니라(20:8, 24-29), 또한 그들의 말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예표하였다(17:20; 20:30, 31). (95.3)
 출애굽 표상학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의 이적이 애굽의 물 항아리에서 물을 피로 변화시킨 모세의 행위(출 7:19)에 대한 평행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모세와 예수 사이의 비교가 이 복음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주요 주제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1:17; 3:14; 5:45-47; 6:30-33; 9:28, 29). 그러나 이와 같은 비교는 모세의 이름이 언급된 문단들을 단순히 읽음으로써 찾아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하게 깔려 있다. (95.4)
 이 복음서의 본론에는 일곱 개의 구체적인 이적들이 언급되어 있다(2:1-11; 4:46-54; 5:2-9; 6:1-15, 16-21; 9:1-39; 11:38-44; 결어에도 한 개의 이적이 포함되어 있다—21:1-11). 혼인 예식의 이적은 요한복음의 일곱 개의 이적들의 각각이 애굽에 내린 재앙들 중의 하나와 상응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리켜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2:1-11), 모세는 물을 피로 변화시켰다(출 7:14-24).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에게 생명을 주셨으나(4:46-54), 모세는 애굽의 가축들이 악질로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출 9:1-7).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육체적인 치유를 가져다주셨는데(5:2-9), 모세는 애굽인들이 독종으로 고통 당하게 하였다(출 9:8-12). 예수께서는 폭풍을 잠잠케 하셨지만(6:16-21), 모세는 재난을 일으켰다(출 9:13-35). 예수께서 광야에서 떡을 만드신 것(6:1-15)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게 하고(6:30-33; 출 16:4, 15; 느 9:15), 메뚜기를 보내어 애굽인들의 양식을 먹어치우게 한 것(출 10:1-20)과 같다. 예수께서는 눈먼 자에게 광명을 가져다주셨으나(9:1-41), 모세는 애굽에 흑암을 가져다주었다(출 10:21-29).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나(11:38-44), 모세는 애굽의 장자들을 죽게 하였다(출 11:1-12:30). 더욱 명백한 평행은 십자가 위의 예수를 유월절 양으로 언급한 것이다(19:36; 출 12:1-11, 21-28) (96.1)
 위에 나타난 평행들 중의 몇 개는 다른 것들보다 연관성이 빈약하지만, 요한으로서는 예수의 활동들과 모세의 행위들 사이의 공통적인 양식(pattern)을 주시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러한 뚜렷한 평행들이 요한복음에 존재하는가? 예수의 이적들과 죽음은 한 데 어우러져서 새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새 출애굽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다(누가복음 9:31의 헬라어를 보라). 출애굽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새 이스라엘을 위한 교훈이 되어야만 했다. (96.2)
 하지만 이와 같이 새 출애굽의 경험에는 현저한 반전(反轉, reversals)이 있다. 바로의 역할은 요한복음에서 모세에게로 넘겨지는데, 이 모세의 기록과 권위를 예수를 거절하는 자들이 사용한다. 이리하여 이 복음서에서 유대인들은 애굽인들과 짝이 된다! 바로와 애굽인들처럼 이 복음서의 유대인들은 예수의 권위의 표적들은 받아들이지만, 그의 주장들은 거절하고,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파멸시키려 한 것처럼 그를 파멸시키려 한다. (97.1)
 다른 한편으로, 모세가 옳게 사용될 때, 그는 백성들을 예수께로 이끌어 오고(5:45-47), 예수께 이끌려 나온 사람들은 새 이스라엘이 된다(1:47-51). 그리하여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생애의 사건들은 새 이스라엘을 설립하게 하고 옛 이스라엘을 거절하게 하는 새 출애굽의 사건들과 같다.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십자가를 포함하여)은 새 이스라엘로서 예수께 모이는 사람들과 옛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의 표적들을 거절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12:42, 43). (97.2)
 예수와 모세 사이의 평행들은, 사복음서의 충만한 증거를 취합(聚合)할 때, 훨씬 더 놀랍다. 모세처럼 예수도 탄생시에 적의에 찬 왕에 의해 위협을 받았으며, 그 왕은 갓난아이들을 모두 죽였으나 그가 참으로 죽이기를 원하는 한 아이는 죽이지 못한 채 끝났다(마 2:16-18). 모세처럼 그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요 1:17, 18). 모세처럼 그도 40일 동안 금식했다(마 4:2; 눅 4:2; 참고 화잇, 부조와 선지자). 그는 70제자(눅 10:1)와 12사도(마 10:1-4; 막 3:13-19; 눅 6:12-16)를 임명하였다. 그는 높은 산에서 새 율법을 주었다(마 5-7). 그는 광야에서 군중을 먹였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5). 그는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처럼 십자가 위에 들렸다(요 3:14). 그리고 그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애굽에서 나왔다(마 2:13-15, 19-23). (97.3)
 예수의 이야기를 더욱 충만하게 하는 말에 덧붙여 말한다면, 예수와 모세 사이의 평행들은 우리가 1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다른 이유로 인하여 교훈이 된다. 예수는 이 땅 위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러한 계시로서, 모세 및 구약 신앙의 다른 측면들과의 평행들은 하나님께 이르는 모든 다른 통로들에 대한 예수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한다. 모세는 바로와 애굽인들에 대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물을 피로 변화시킨 반면에,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훨씬 더 큰 권위를 세우고자 비슷한 이적을 행하셨다. 모세가 그의 백성을 단순히 지상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반면에,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을 죽음에서 구출하셔서 그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3:16; 5:24; 10:10). (97.4)
 ■ 말씀을 적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