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8. 엘 로이—보시는 하나님 (주무시지 않는 인도자)
 오 주여,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날마다 우리의 일과를 지도하시며 또 우리가 만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134.1)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다른 경우들
 구약 시대에 사람들 앞에 여러 차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신(神)의 현현(顯現)” (theophany)이라 부른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헬라어의 테오스(theos, 신, 하나님)와 파이네인(phainein, 보이다, 나타나다)의 합성어이다. 그러면 신의 현현의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134.2)
 이 때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게 주리라’ 하시니, 그가 그곳에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야훼)께 제단을 쌓았더라”(창 12:7).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언약의 첫 번째 언급이었다. 여기 “나타나다”란 말의 히브리어 어근은 두 경우 모두 라아(raáh)인데 이 말은 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당신의 종에게 나타나시기로 선택하시고, 그 후에도 몇 차례 나타나시어 당신의 언약을 확인하셨다(창 15:1-21; 17:1-22). (134.3)
 한번은 소돔성과 그 자매 도성을 멸하실 계획을 그에게 알리시기 위해 나타나셨다(창 18:1-33). 몇 년 후 다시 당신의 종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야훼 의 사자”로 나타나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그의 손을 멈추셨다. 그리고 그는 대신 죽을 산양이 가시 넝쿨에 뿔이 걸려 있는 것을 보이셨다. 그 후에도 그는 또다시 나타나 당신의 언약을 재확인하셨다(창 22:1-19). (134.4)
 주님은 다른 부조들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셨다
 역사의 초기부터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남녀들에게 여러 번 “천사”로 나타나셨다. 영어로 “angel”이란 말은 히브리어 말라크(maláḵ)를 번역한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의미하나 구체적으로 야훼의 천사(maláḵ Yahweh)”를 가리키기도 한다(삿 2:1). 때로는 이 칭호가 말라크 엘로힘(maláḵ Élohim, 하나님의 사자)으로 소개되었다(출 14:19). 이런 칭호들은 히브리어의 경우에는 관사 없이 나오지만 영어에서는 반드시 정관사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한 한 분에게 해당되는 칭호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밝혀 내기로 하자. (134.5)
 기드온은 그 천사를 “오 주 하나님”(삿 6:20-24)이라 불렀고, 아도나이 야훼 는 이 칭호를 시인하셨다. 보통 천사에게 경배를 드리려고 하면 그는 예외 없이 경배 받기를 완강히 거부했다(참고 계 19:10). 찾아오신 분이 야훼 이신 줄 확신한 기드온은 제단을 쌓고 그것을 야훼-샬롬을 기념하는 제단으로 봉헌했다. 여호와의 사자는 후일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와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양육 방법을 말씀해 주신다. 그가 보통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던 것은 마노아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한 사실로 확인된다(삿 13:8). 그들 부부는 그분의 재방문을 기도로 요청한다. 그래서 말락 엘로힘 은 다시 찾아와 더 가르쳐 준다. 그 때 이름을 물었더니, “그건 기묘니라”고 그분은 대답하신다(삿 13:17, 18 난외주; 참고 사 9:6). 그후 마노아는 말하기를 “우리가 엘로힘 을 보았다”고 증언했다(삿 13:19-23).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보다 1,000년 이상 앞서 말라크 야훼 는 어떤 샘물 곁에 앉아 있는 하갈을 발견하셨다(창 16:7). 그녀에게 용기를 주는 대화가 끝난 후,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엘 로이 라 불렀다. (135.1)
 이런 여러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별자 말라크엘, 엘로힘, 그리고 야훼 자신을 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구약의 “원형적 성육신”을 통해 타락한 인간 남녀들은 자기를 나타내기로 선택하신 하나님, 그들의 복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여호수아가 경험한 현현(顯現)의 경우도 그랬다. 그는 자기를 야훼 의 군대 대장”이라 소개하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여호수아에게 경의의 표로 신을 벗으라고 명했다. 그분의 임재로 그 땅이 거룩해졌기 때문이었다(수 5:13-15). 그보다 40년 전에 그분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같은 명령을 모세에게 내리셨다(출 3:2-6). 그 때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부조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출 3:6, 7, 13, 14).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할 일을 정확히 말씀하시고 지도하셨다(수 6:2). (135.2)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길에 신비의 사다리 꼭대기 위에 나타나셨던 주님은(창 28:12; 참고 48:3) 계속적인 보호를 약속하시며 온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리라 말씀하셨다. 20년 후 귀향 길에 오른 그에게 하나님의 천사는 다시 한번 나타나신다. 이번엔 마하나임에서 심야의 씨름꾼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분은 야곱을 붙잡고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한 후(창 32:2, 6, 24-32),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주셨다. 그는 이스마엘에게 이름을 지어 준 바로 그분이었다. 그 날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복을 주고 돌보실 것을 약속하신 그는 그 후 5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약속을 지키셨다(창 47:9, 28). (136.1)
 동사 라아(raáh)의 의미
 본다는 뜻을 가진 동사 라아(raáh)의 의미를 그것이 나타나는 글의 문맥 분석을 통해 그 성격을 알아보기로 하자: (136.2)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조사해 보기 위해 접근했다(출 3:4). 이 동사는 조심스런 주목을 의미한다. 제사장은 문둥병의 들었나 여부를 알기 위해 모든 증상을 치밀하게 살펴보았다(레 13:3, 13). 여기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 철저히 검사하는 것을 뜻한다. 히람은 솔로몬이 준 도성들이 자기가 제공한 노역과 봉사에 상응하는 값어치가 있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 평가 ∙ 감정해 보았다(왕상 9:12). (136.3)
 라아(raáh)는 사랑과 관심을 내포한 말이다. 한나는 자기의 괴로움을 보시고 아들을 선물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삼상 1:11). 그의 보심은 단순한 보심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는 돌보심이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께서 장차 보여주실 땅을 향해 고향을 등졌다(창 12:1). 이 말씀이 제시하는 의미를 깊이 음미해 보면 보시는 하나님이 새삼스레 친근하게 느껴진다. 엘 로이 는 변함없이 사람의 형편을 신중히 살펴보시고 거기에 대해 최선의 방법으로 선처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우리도 하갈처럼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군요!”라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 (136.4)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불타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해 준다.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상징은 볼품없는 비천한 떨기나무였다.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가리시고 그런 비천한 형태로 나타나신 것은 모세로 하여금 보고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며 대화하기 위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나신 것도 같은 목적에서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억제되고 그의 위엄이 가려졌으므로 사람의 약한 시력이 그것을 보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천한 몸’(빌 3:21)을 쓰시고, ‘사람들과 같이’(빌 2:7) 되어 오셔야 했다. 세상의 눈에 그는 아무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성육신(成肉身)하신 하나님이요 하늘과 땅의 빛이셨다. 그의 영광은 가려지고 그의 위대함과 위험은 숨겨졌으므로 그는 유혹받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실 수 있었다”(DA 23). 겸허하게 자기를 비우는 이 길이 엘 라이 께서 자신을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방법이었다. (137.1)
 요약과 정리
 주의 사자는 그리스도이며, 그는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나타나 당신의 은혜의 언약을 확인하셨고(창 12:7; 15:1-18; 17:1-22; 18:1-33; 22:1-19), 이혼 후의 하갈에게 나타나 당신의 보호를 약속하셨으며(창 16:7-14; 21:17), 야곱에게 두 번 나타나 당신의 임재로 위로하시고, 동시에 그의 속이는 심사를 누르고 승리할 힘을 주셨으며(창 28:11-13; 31:11; 35:1, 9; 48:2-11), 바로에게는 다가오는 기근을 예고하셨고(창 41:28), 이스라엘에게는 불과 구름으로(출 14:19), 모세에게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위해(출 32:34), 발람에게는 그의 무모한 물욕을 돌이키시기 위해(민 22:24-35), 여호수아에게는 이스라엘 대군을 승리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도록 격려하시기 위해(수 5:6-15; 6:1-5), 보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죄악을 경고하시기 위해(삿 2:1-4), 드보라에게는 폭군 시스라를 누르고 승리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전하시기 위해(삿 5:23), 기드온에게는 미디안 족속을 대항해 싸워 이기도록 격려하시기 위해(삿 6:11-24), 마노아 부부에게는 장차 이스라엘의 사사가 될 삼손을 어떻게 양육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삿 13:3-11), 사무엘에게는 그를 선지자 사역으로 부르시기 위해(삼상 3:21), 다윗에게는 정신적 각성을 주고 그의 죄를 꾸짖으시기 위해(삼하 24:15-19; 대상 21:12-30), 솔로몬에게는 삶의 방법을 지도하시기 위해(왕상 3:5; 9:2; 11:9; 대하 1:7; 7:11-13), 엘리야에게는 그의 실망을 달래고 그의 미래 사역의 방향을 지도하시기 위해(왕상 19:5-18; 왕하 1:3, 15) 찾아오셨다. 이 모든 경우 당신을 따르는 종들의 현지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고 필요를 충족히 공급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매번 그분의 라아(raáh)[보심, 감찰, 시찰, 돌보심]는 특별하고, 정확하고, 넓고 깊었다. 이 히브리어는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치밀한 관찰을 의미한다. (137.2)
 “이 진리를 항상 명심하라: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 하나님, 당신께서 나를 보시나이다.’ 우리 행위의 가장 적은 것이라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고 하신 그분의 눈에는 숨길 수 없다. 각 사람 마음 속 가장 은밀한 구석에 숨은 것이라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행위, 모든 목적, 모든 말이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 없는 듯이 상세히 기록되며, 하나님의 모든 감찰과 치밀한 관찰은 그의 일거일동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법을 주신 이의 목전에서 어찌 감히 우리가 그분의 율법 중 어느 한 조항이라도 기피, 반대, 또는 위장하거나 또 그렇게 남에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TC 5:627). (138.1)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은 항상 열려 있다. 그는 참새가 떨어지는 것과 과부의 동전을 보신다. 그는 회개하는 마리아의 눈물과 삭개오의 간절한 염원을 아신다. 그는 사울의 살인마적 분노 뒤에 숨은 회개를 인정하시고, 고향을 그리며 홀로 한숨 짓는 초췌한 탕자의 심중을 보신다. 보시는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자녀들의 생애에 선한 결과가 맺히도록 돌보신다. 엘 라이 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의 눈은 온 땅을 두루 다니시며 마음으로 낙원을 사모하는 모든 영혼을 찾으신다. (138.2)
 영원하신 하나님, 나의 시력이 엘라이의 시력 같이 되도록 안약을 내게 주옵소서. (1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