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확실히 사도 요한인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사도 요한인지 아니면 다른 요한인지를 둘러싸고 일부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a) 요한계시록의 희랍어 문체가 요한복음 및 요한의 편지서의 희랍어 문체와 다르며,

 (b)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의 신원(身元)을 둘러싸고 이미 기원 후 3세기부터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65.1)
 (a) 첫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요한계시록의 희랍어는 요한의 복음서 및 그의 편지서의 희랍어와 다르다· 복음과 편지서는 문법적으로 너무나 하자가 없기 때문에 신학교 학생들에게 희랍어를 가르치는 기초 교제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희랍어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구어체이다. 그러나, 저명한 학자인 R. H. 찰즈(Charles)7는 요한계시록이 비문법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비인습적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요한계시록은 그 자체의 내적인 문법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수백 회에 걸쳐 구약을 인용하고 있다. 찰즈를 위시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요한은 구약을 인용함에 있어서 그 시대의 표준적인 희랍어 역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70인역을 사용하는 대신에 히브리 어 성경이나 타르굼이라고 하는 아람 어 역본에서 직접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끊임없이 희랍어 단어를 히브리 어나 아람 어 발음에 맞도록 고쳐 썼다. 또 2세기의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8 같은 초기의 기사들에 의하면 요한이 복음서와 편지서들을 쓸 때는 문필 조수들의 도움을 얻어 희랍어 문장을 다듬었으나 요한계시록을 쓸 때는 그런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다. (65.2)
 요한계시록과 요한의 복음 사이에는 언어학상의 차이들이 있지만 또 두드러진 유사성을 나타내고 있어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그 현저한 예의 하나가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린 양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어린 양이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무려 29회나 나오고 있는데 요한복음 1장 29, 36절을 제외하고는 신약 성경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65.3)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저자인가 하는 문제는 3세기에 제기되었지만 요한계시록이 저술된 시기와 장소에 가장 가깝게 살았던 희랍어 사용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열렬히 신임하였다. (65.4)
 순교자 유스티노스(Justion Martyr)는 기원후 135년경 에베소에 거주했다. 몇 년 후 그는 요한계시록을 “그리스도의 사도의 한 사람인 요한이라 이름하는∙∙∙어떤 사람”9의 저술이라고 하였다. (65.5)
 이레나이우스(Irenaeus)는 2세기 말경에 갈리아(프랑스)의 교회를 지도한 분인데 그는 아시아의 한 로마 령(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곳에서 폴리카르포스(Polycarp)를 알게 되었다 한다. 당시 폴리카르포스는 고령이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도 요한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분이다.10 이레나이우스는 유스티노스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주님의 제자” 요한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한이 “그렇게 오랜 시절이 아닌, 거의 우리의 시대에 속하는 도미티아누스 통치의 말년에” “계시의 이상”을 보았다고 기술했다.11 (65.6)
 이레나이우스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같은 시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 학교를 운영했던 클레멘트(알렉산드리아의)도 밧모 섬에 있던 사람이 “사도 요한”이었다고 주장했다. (65.7)
 그는 부연하여 말하기를, 요한이 황제의 사후에 에베소로 돌아왔으며 그 후에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목사들을 안수하고 새로운 회중을 조직했다고 했다.12 3세기 초반에 로마의 근교에 거주했던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학문이 깊은 교회 지도자였는데 그도 요한계시록이 “주님의 제자이며 사도인 복받은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가르쳤다.13 (66.1)
 이와같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요한계시록에 가깝게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이 사도 요한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을 굳게 믿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저자 자신이 자기을 간단히 “나 요한은 너희 형제”라고 밝히고 있다(계 1:9). 그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요한과 혼동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경우이든, 요한이 누구이든, 그의 기별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계 1:1). 이 기별을 받은 요한은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66.2)
 2. 요한계시록의 장, 절 구분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성경 66 권은 본래 현재 우리가 알고 있듯이 수자로 장절의 표시가 된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날에도 대부분의 책들은 줄줄이 수자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66.3)
 그러나, 현대의 대부분의 책들은 최소한 장(章)의 구분을 하고 있지만 고대에는 대부분의 책들이 장의 구분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시편만은 고대에도 물론 현재처럼 분류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 시편은 장이 아니고 각기 다른 독립적인 시들이다. (66.4)
 성경은 다른 어떤 책과도 달리 연구되었다. 성경은 전혀 다른 책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구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수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이 고안되었다. (66.5)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구약 구절의 수자 표시는 여러 다른 유대 랍비들 특히 마소라 랍비들(Masoretic rabbis) 또는 마소라 학자들(Masoretes)의 노력의 산물이다. 마소라 랍비들은 사본을 필사하는 기술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벤 아셀(Ben Asher)이라는 마소라 가족이 기원 후 900년경에 구약의 전체 구절을 총 23,100 구절로 표준화하였다. (66.6)
 현재와 같이 신약 성경 구절이 수치로 표시된 것은 앞서의 여러 방식들이 수정된 것인데 이 일을 이룩한 사람이 로버트 스티픈즈(Robert Stephens)이다. 스티픈즈는 1551년에 희랍어와 라틴 어로 인쇄된 신약 성경 성구 사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성구 사전을 신약 성경에 참조시킬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의 아들이 파리에서 리용으로 여행하는 도중 구절을 나누고 수자를 붙였던 이야기를 했다. (66.7)
 그러나, 장(章)들은 어떻게 해서 구분되었는가? 1100년 대에 파리 대학이 설립되면서 성경 연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가톨릭의 라틴 어 성경의 필사본들이 많이 제작되어 수요에 응해 팔렸다. 그러한 시기에 성경 연구를 더욱 촉진시키기 위하여 당시 파리 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던 스티픈 랑톤(Stephen Langton)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대로 요한계시록 및 성경의 여타 부분을 장(章)으로 분류하였다. (66.8)
 스티픈 랑톤은 영국인이었다· 후에 그는 파리 대학을 떠나 캔터베리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에 취임하였으며 1214년에는 존 왕으로 하여금 러니미드(Runnymede)에서 대헌장(大憲章. Magna Carta)에 서명케 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1228년에 사망하였다. (66.9)
 요한계시록은 기원 후 95년경에 저술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성경책에 분류된 장절의 표시는 요한계시록이 저술된 후 1100여 년이 되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66.10)
 References

 1. 사도 요한은 침례 요한의 설교시에 현장에 있었다고 진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35~40절에 나오는 익명의 제자라는 추론은 틀림없다· 겸손은 그 사람의 특성이었다. 그가 만찬이나 그리스도의 재판이나 부활과 관계하여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아니했던 점을 살펴보라(요 13:23, 18:15, 20:2~5 참고).

 2. Tacitus, Annals, 15.44.2-8.

 3. Dio Cassius, Epitome, 67.14. See Donald McFayden, “The Occasion of the Domitianic Persecution,” The American Journal of Theology 24(January, 1920):46-66.

 4. Ibid.

 5. Tertullian, On Prescription Against Heretics, 36; ANF 3:260.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한 사건에서, 끓는 기름에 불이 붙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아마도 그 기름은 사람을 삶아 죽일 정도의 온도로 데워졌을 것이다. 아뭏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친구들을 불붙는 풀무에서 건져 내신 것을 연상하게 된다· 다니엘 3장을 보라.

 6. 요한계시록에 관한 끝없는 논의 중에서는 나는 특히 케니트 A 스트란드의 Interpreting the Book of Revelation, rev. and enl. ed.(Naples, Florida:Ann Arbor Publishers, Inc., 1970, 1972, 1976, 1979)에 크게 힘입었다. 나는 몇 가지 사소한 면에서만 스트란드와 견해를 달리 한다·

 7. R.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2 vols.,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Edinburgh:T. and T. Clark, 1920), hcxviiclix, esp. pp. cxlii-cxliv.

 8. The Muratorian Canon is available in various works, such as Daniel J. Theron. 무라토리 정경은 다니엘 J. 테론의 Evidence of Tradition (Grand Rapids, Mich.:Baker Book House, 1958), pp. 106-113 등과 같은 여러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다른 제자들이 검독하였다고 주장한다. 32, 33면에서 테론은 추가적으로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가 “복음서를 요한이 구술하는 대로 정확히 기록하였다는 불확실한 근거를 이야기 한다.”

 9. Justin, Dialogue With Trypho, a Jew, 81;ANF 1:240.

 10. Irenaeus, Against Heresies, 3.3.4;ANF 1:416.

 11. Irenaeus, Against Heresies, 4.20.11, 5.30.3;ANF 1:491, 558-560.

 12. Clement of Alexandria, Who Is the Rich Man That Shall Be Saved? 42;ANF 2:603

 13. Hippolytus, Christ and Antichrist, 36; ANF 5:211.

 14. See, for example, F. F. Bruce, The Books and the Parchments, 3d ed., rev.(London:Pickering and Inglis, Ltd., 1963), pp. 120, 121; Ira Maurice Price, rev. by William A. Irwin and Allen P. Wikgren, The Ancestry of Our English Bible(New York:Harper and Row, 1956), pp. 184, 185,203;E. Nestle, “Bible Text,” section ΠΙ, The New Schaff 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1963 reprint), 2:113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