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8 장 하나님의 은혜의 징조와 재림소망
 소요, 배교 그리고 환난의 다양한 징조들은 감람산에서 복음 선포의 배경으로서 주어졌다. 다시 말해서 이런 다양한 징조를 통해서 예수님은 범세계적인 복음 사업에 수반될 어떤 바람 직하지 못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신의 재림시에 수반될 징조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것이 두드러진 재림의 징조이므로 본 연구에서 우선적으로 다룬다. (110.4)
 2. 구약에서의 전도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구약 선지자들은 오래 전부터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선포를 바라고 있다. 이사야서 45장 22절에서 하나님은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사 56:7)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메시야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사 49:6, 42:6, 40:5, 45:22 참조)하기 위해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3 (110.5)
 바울은 이 예언이 이방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선교로 성취될 것을 보았다(행 13:46, 47). 비슷하게 야고보도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모스의 예언의 성취로 해석했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컫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행 15:16~18; 암 9:11, 12).4 (110.6)
 대 사명의 기초.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선포에 대한 구약적 기대가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큰 사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설교에서 이 사명의 성취를 재림 전에 있을 징조나 혹은 형편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막 13:10 비교). (111.1)
 3. 대 사명의 의미
 단호한 증거.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 파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11.2)
 분명히 예수님은 모든 국가의 개개인이 회개해야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란 구절은 오히려 복음이 인식되어야 할 하나의 힘, 즉 모든 민족에 결정을 촉구하는 증언이 되어 그것을 거절하는 자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고 말할 때, 이 구절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바울은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즉 헬라로부터 팔레스틴까지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것은 그가 말한 다음의 진술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머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롬 15:23, 24).5 (111.3)
 분명히 바울은 이 광대한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전했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개개 인에게 증거할 수 있다거나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복된 소식이 각 지역에 선포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광활한 지역에서 실제로 회개한 사람은 비교적 적었다. (111.4)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World Christian Encyclopedia, 1982)에 따르면 로마 제국에는 AD 100년 경에 1억 8천 백만 명의 인구 중 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6 이것은 1세기 말에 인구의 약 1% 정도만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확히는 0.6%임). 추측컨대 바울이 기록했을 때인 50년대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그 이하였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동편을 복음화했다는 바울의 확신은 회개한 자들이 많았다는 데 있지 않고 복음의 빛을 전 지역에 비출 수 있었던 그리스도인의 전진기지가 주요 중심지들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111.5)
 4. 그리스도인의 선교가 측정될 수 있는가 ?
 19세기 후반기인 오늘날에 “우리는 과연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위대한 사명을 완성하는 데 더 가까워져 있는가 아니면 더 멀어져 있는가?”하고 질문할 수 있다. 이 중요한 재림의 징조가 어떻게 우리의 시대에 성취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대답은 우리 시대의 세계 복음화를 조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111.6)
 통계의 적합성. 어떤 사람은 세상을 복음화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성취된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서 통계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중 한 이유는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는 불가시적인 성령의 사역이 숫자에 의해 측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교인수의 통계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인수 중에 실제로 그리스도 인으로서 활동을 하지 않는 등록된 회원이 있으며 그리고 어떤 교회에도 가담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11.7)
 분명히 세계 선교에 대한 기독교의 통계 조사는 그 자체에 한계가 있으며 지나친 낙관주의나 부당한 비관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끝마치지 않은 일의 규모뿐 아니라 기독교의 성장에 대한 전체적 양상을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통계 조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약은 수치에 대한 건전한 관심과 그것과 교회 성장과의 관계를 보이고 있다. (112.1)
 하나님의 은혜의 표. 사도행전은 복음의 발전을 숫자와 통계로 기록하고 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행 2:41),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 4:4),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9:31, 12:24, 16:5, 19:20, 28:23, 31). (112.2)
 사도행전에 주어진 이러한 숫자와 양은 그리스도인 선교의 성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의 표를 나타낸다. 게다가 특정한 교회나 혹은 전체 기독교에 대한 현대적 통계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 선교가 발전하고 있는지 퇴보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역사의 이 시점에서 기독교의 위상을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세상이 얼마나 복음화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 얼마나 복음화되지 않았는지에 기초해서 재림의 임박성을 계산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중요한 이 재림의 징조가 우리의 시대에 어떻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지를 확증하려는 데 있다. (112.3)
 5. 20여 세기에 걸친 기독교의 확장
 적절한 관점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여 세기에 걸친 성장을 개략적으로 훑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 보고에 사용된 자료는 대부분 유능한 학자들에 의해 저술되고 최근에 옥스포드대학 출판소에서 발행한 주요 연구 프로젝트인 세계 기독교 백과 사전(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서 뽑은 것이다.7 (112.4)
 과거의 성장. 지난 19세기 동안에 기독교는 규모와 영향 면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1세기 말(A.D. 100)에 기독교인의 수는 인구 1억 8천 백만명 가운데 약 일백만 명이었으며, 이것은 인구의 일퍼센트 미만에 불과함을 나타내고 있다(0.6%). (112.5)
 일천 년 후에(A.D. 1000)는 2억 6천 9백만명의 인구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5천만명이었는데 이것은 인구의 18퍼센트이다. 9세기 후 곧 1900년에는 인구의 3분지 1이 기독교인이었는데 16억 1천 9백만명의 인구 중 5억 5천 8백만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