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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한 예증(例證)이다. 창조의 설화에서 하나님은 일곱번이 나 자신의 창조물에 대하여 “좋다”고 선언하셨으며 (창 1:3, 10, 12, 17, 20, 25, 31) 세차례에 걸쳐 안식일을 축복하셨다. 이 3중(重)의 축복은 상승적(上昇的)인 질서를 따라 베풀어지고 있다. 제일 처음에는 바다와 공중에 사는 피조물들에게 육체적인 번식력의 축복을 주셨다. 두번째는 남자와 여자에게 육체적인 생식력과 지배권의 축복을 주셨다(창 1:28~30). 마지막으로 제칠일이 복을 받아 거룩하게 되었다(창 2:3; 출 20:11). 안식일이 제일 나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은 안식일이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도 전면적인 축복을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69.1)
 1. 안식일 축복의 의미
 하나님이 안식일 위에 부여하신 축복의 의의는 무엇이며 이 축복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가? 이 축복들은 인간의 축복과 같이, 하나의 기원(祈願)에 불과한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의 단순한 기원(祈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생육과 번영과 행복, 한마디로 묶어 말하여 충만하고 풍요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보증이다. 실례로서 하나남은 첫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 9:1; 49:22~26)고 축복하셨다. 비슷한 실례를 아론의 축도에서도 발견하는데 기록되기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민 6:24)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은 풍요한 인생의 유지와 보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시편 기자의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라는 노래 속에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이같은 의미를 안식일에 적용시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안식일을 축복하심으로써 단지 인류들에 대한 당신의 기원하는 마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충만하고 풍요한 삶을 영원히 보증하였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2 (69.2)
 그러나 안식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행위의 의미가 창세기 2장 3절에서 완전히 들어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에는 그 축복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수반되고 있다. 그 실례로서 “하나님이 그들(동물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욱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창 1:22)고 하셨다. 또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에 대하여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6; 9:1; 17:2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안식일 축북에 대해서는 그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니콜라 니그랫티 (Nicola Negretti)가 대단히 설득력 있는 설명을 주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안식일 축복과 거룩함의 더 깊은 의미는 창세기에 “인봉(印封)된 채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언제 이 봉인(封印)된 진리가 개봉될 것인가? 그것은 구속사(救賦史)가 전개되면서 그렇게 될 것이라3한다. (70.1)
 2. 만나(Manna)의 경험 속에 나타난 안식일 축복의 경험
 안식일 축복과 거룩함의 신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이 되는 출애굽기에 이르러 정체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안식일은 단순히 종료된 창조 사업에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탄생시킨 새로운 민족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도다”(출 16:29)라고 하였다. 완전한 세기를 알리는 우주론적인 상징이었던 안식일이 이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표시하는 구속론적—역사적 상징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기복(起伏)과 밀접히 연결된 제도가 되었다. 안식일의 일부 구속적인 특징과 기능들에 대해서는 5장에서 취급뒬 것이다. (70.2)
 육체적인 음식물. 만나의 이야기는 안식일 첫 축복의 본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선 먼저 창조의 설화와 만나의 이야기 사이에 있는 유사성에 유의해야 한다. 두 사건 모두 7일의 구조에 맞추어 이루어진 하나님의 행위들이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행위의 완전성에 대하여 증거한다. 즉 매일의 창조 사업은 “좋았으며” 만나의 하루 분(分)은 넉넉했다(출 16:18). 두 경우 모두에서 창조 행위는 안식일에 이르러 중단되었다. 창조 사업은 “마치었으며”(창 2:2) 만나는 내리지 않았다(출 16:25). 두 경우 모두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안식일에 내렸는데 전자의 경우에서는 선포로 후자의 경우에서는 만나의 보전(출 16:24)을 통하여 나타났다. 광야의 메마름과 음식물을 획득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평들을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안식일 기간에도 만나를 부패하지 못하게 했던 기적이야말로 안식일의 축복의 본질,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음식물과 생명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든든한 은사를 나타내 주는 가장 뚜렷한 표시라고 할 것이다. (70.3)
 만나 이야기의 문어적(文語的) 구성은 안식일의 축복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만나의 선물을 알리는 개시 선언에서(출 16:4)부터 안식일과 관련된 하나님의 폐회 선포에 이르는(출 16:29) 점강음(潮强音:점점 세게)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개시 선언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침묵은 처음에는 정확히 한 “호멜”씩으로 만나의 양을 제한시키고 있는 규정에 의하여(출 16:16~17), 다음에는 만나의 보존과 부패에 대한 설명(출 16:20~24)에 의하여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다. 이같은 행위들은 모두 공식적인 선포들로서, 처음에는 모세에 의하여(출 16:23, 25-26), 다음에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출 16:28, 29). (71.1)
 일부 세목(細目)들은 특별한 의의들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한 사람에 대한 만나의 일일분의 양(量)을 한 호멜로 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제7 일에 거두어들일 갑절의 분량을 정확히 측정키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같은 정확성은 주일(週日)의 평일 동안에 사용하고 남은 만나가 아침이 되자 부패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제칠일에는 아침까지도 부패하지 않는 기적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였다(출 16:24). 이같은 기적은 다시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축복과 거룩함을 받아들이고 경험케 만드는 소인(素因)으로 작용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은 안식일에 기적적으로 공급된 육신의 양식인 썩지 않는 만나와 영적인 양식인 썩지 않는 하늘의 만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71.2)
 하나님의 말씀. 안식일에는 만나가 땅에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분명히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생명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풍요케 하는, 위로부터의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을 하늘로 향하도록 하기 위하여 마련된 조처였다. 이 중요한 교훈은 신명기 8장 3절에 제시되었는데 기록되기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 네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라”(신 8:3)고 하였다. (71.3)
 6일 동안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눈에 보이는 만나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쳤지만 제칠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식일에 육신의 축복을 더 얻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도록 분부를 받지 않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이미 거두어들인 만나로 만족히 여기고 안식하라는 분부를 받았다. 하나님의 목소리 보다는 애굽의 소리에 더 귀가 익어 있던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이같은 하나님의 권고는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71.4)
 부서진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깊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신의 말씀과 임재(臨在)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통하여 가르치셨다. 혹자는 궁극적으로 안식일의 축복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51)고 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임재(臨在)가 아닌가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제라드 폰 라드(Gerhard Von Rad)가 말했듯이 안식일의 축복에 의하여 “존귀한 선(善), 사실상 최종적인 구원의 선(善)을 위하여 그 길이 예비된 것이다.”4 5장(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봉사로 절정을 맞이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들과 안식일의 축복들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취급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선 안식일의 축복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관심과 풍요한 삶에 대한 보장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있는지를 살필 것이다. (71.5)
 참고문헌
 1. A penetrating analysis of some of the causes for the prevailing skepticism about God’s concern for human affairs is offered by Herbert W. Richardson, Toward an American Theology, 1967, pp. 1-21.

 2. George Elliot, The Abiding Sabbath, 1884, p. 27, comments,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God can bless the seventh day only by making it a blessing to man. Insensate time cannot feel the benedictions of Deity. Man’s blessing is a prayer, but God’s blessing is an act. He alone can give the blessing he pronounces. The Sabbath serves man’s whole nature, and thus it is to him a blessing.” Similarly Joseph Breuer, Introduction to Rabbi Samson Raphael Hirsch’s Commentary on the Torah, 1948, interprets the blessing of the Sabbath as meaning that “God bestowed on the seventh day the power to succeed in its Divine destination and ‘sanctified it,’ i.e. raised it above any attempt to remove it from its appointed position∙∙∙.This seventh day and all that it means to mankind will succeed in its task to educate and win back an estranged mankind.” H. C. Leupold, Exposition of Genesis, 1950, p. 103, remarks, “those blessings of the Sabbath that are later to flow forth for the good of man are potentially bestowed on it.”

 3. Nikola Negretti, Ii Settimo Giorno,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73, p. 170. Negretti sees the “unsealing” of the sanctity and blessedness of the Sabbath in the narrative of the manna and of Sinai; see pp. 171-251.

 4. Gerhard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1961, p. 60.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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