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자는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진 피가 말굴레까지 닿는다고 묘사함으로 온 땅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은 넷을 땅의 숫자로 사용한다(
계 7:1; 20:8). 이 4의 배수로 증폭된 천육백은 우리가 사는 전세계를 암시하여 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최후심판은 악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안전하고 보호해 주는 유일한 장소는 어린양이 계신 곳, 시온산 위뿐이다(
계 14:1-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
계 19:15)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고 한다. 마운스는 그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요한은 아들이 심판을 집행하는 것으로 실토하고 있지는 않다.”10) 그렇지만 요한의 요점은 이사야가 에돔에 대하여 말한 전쟁 신탁에 비추어 가장 잘 평가될 수 있는 한 계시적 진리를 진술하는 데 있다(
사 63:1-4; 전술한 1 이하를 보라). 그리스도께서 포도주 틀을 밟으므로 포도주가 흐르게 되며, 그는 그 포도주를 자기의 진노의 잔에 붓는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모든 추종자들은 그것을 마셔야만 한다(
계 14:9, 10). 이사야는 이미 다음과 같이 그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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