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8장 아마겟돈: 세계적인 심판과 구원의 날
 아마겟돈(Armageddon)이라는 용어는 요한계시록에 단 한번 나온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우리는 물론 이 구절을 그 성경적인 문맥 가운데서 이해하여야만 한다. 본문은 아마겟돈이라는 명칭이 “히브리어”단어라고 말한다. 이 점은 구약성경과 연관되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해석자들은 이 명칭을 통상적으로 “므깃도의 산”으로 번역하지만,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희랍어 사본들에서처럼 므깃도(megiddo) 혹은 마게돈(Magedon 또는 Mageddon)이라는 실제 단어를 번역하는 일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희랍어 번역인 70인역(Septuagint)은 므깃도 시의 이름을 통례적으로 마게도(Mageddo)로 전사(轉寫)한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대하 35:22; 삿 1:27; 수 12:21). 그러나 한 경우, 즉 스가랴 12:11에서는 “므깃 도 들판”이라는 표현을 “도살”(에코프토메누이〈έκκοπτομένου〉나 혹은 멸망의 “들판”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147.1)
 요한계시록 16:16의 희랍어 원문에서 멸망의 산으로 나오는 하르-마겟돈(Har-Magedon)이란 명칭은 사단의 영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모일 때에 혹은 연합할 때에 일어날 사건의 성질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멸망만이 그들의 운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본 벡크위드(Isbon T. Beckwith)는 “그렇다면 그것은(하르-마겟돈이라는 명칭) 적그리스도와 메시야 간의 대전투 장면을 가리키는 영상적 명칭이다”라고 결론짓는다.1) (147.2)
 로버트 마운스(Robert H. Mounce)도 마찬가지로 아마겟돈을 구속사의 클라이맥스로 본다. (148.1)
어느 곳에서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하르—마겟돈은 하나님의 권세와 권능이 모든 악의 세력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키는 것에 관한 상징이 된다. 혼란스러운 역사의 진행 배후에 있어온 하나님과 사단 간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간의, 선과 악 간의 대전투는 결국 하나님이 승리자로서 등장하시고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갈 마지막 전쟁으로 발전될 것이다.2)
(148.2)
 대부분의 성경 해석자들은 므깃도의 역사적 배경이 드보라의 노래에서 예찬된(삿 5장) 가나안의 적대적인 왕들과 이스라엘이 벌인 역사상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시스라의 병거들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절망 가운데 빠졌을 때에(삿 4:13) 여호와께서는 엄청난 폭우를 하늘에서 쏟아부어 “기손 강(므깃도와 근접한 강)이 그 무리를 표류시키게” 하는 것으로 개입하셨다(삿 5:19-21). 레온 모리스(Leon Morris)를 위시하여 그 외의 신학자들은 야훼가 개입한 이 승리의 전쟁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세력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킬 것에 대한 상징으로” 여긴다.3) 이 점은 히브리 성경에 있어서 야훼 전쟁의 논질이 무엇이냐란 질문을 제기케 한다(2-4장을 보라). 만일 아마겟돈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불구대천의 원수와 최종적으로 벌이시는 전쟁이라면 그 이전에 있었던 야훼의 전쟁들은 야훼의 묵시문서적인 전쟁의 모형 혹은 예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행위들은 근본적으로 항상 그 본질에 있어서나 또 목적에 있어서 일치한다. (148.3)
 드보라의 노래는 묵시문학적인 전망을 내포하고 있는 구절로 결론을 내리면서 이미 미래를 지적하였다. (149.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31절).
(149.2)
 아마겟돈은 전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과 그들의 확실한 대적들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모형들과는 다르다. (149.3)
 1. 묵시문학 문맥상의 아마겟돈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49.4)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49.5)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3-16).
(149.6)
 이 단락에는 여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 재앙으로 이어지는 문맥을 끊어 놓는 것처럼 보이는 별개의 이상(“또 내가 보매”)이 나온다. 이 막간 단락은 마귀의 영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최종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는가에 관하여 묘사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상은 아마겟돈이 마지막 때의 바벨론과 메시야 간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점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계 17:1419:11-21을 보라). (150.1)
 요한은 세 악령 (개역성경에는 ‘세 더러운 영’으로 번역하였음)이 용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 마운스는 “부정한 영이 사악한 삼자동맹(triumvirate)의 입들로부터 나왔다. 이 점은 마지막날에 사람들을 악한 일에 무조건적으로 전념하도록 이끌 설득력있고 기만적인 선동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4) (150.2)
 이 세계적인 “악한 일”은 실제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본문은 “온 천하(오이쿠메네, οικουμένη)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4절)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 서방 국가들과 동방 국가들간의 세계 전쟁을 예고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런 추측은 단어들을 성경상의 어원과 문맥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분석하였을 때에만 생길 수 있다. 이 구절에는 국가와 국가들 간의 전쟁이 나와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의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휠씬 더 심각한 악을 다루고 있다. 배도한 종교 세력들이 지상의 모든 정치 세력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한 가지 공통된 일을 위하여 모은다는 것이 바로 그깃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귀 세력의 마지막 살인 음모이다. 이것이 바로 바벨론을 대적하고자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친히 성전(聖戰)으로 심판을 하도록 촉발하는 “악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전쟁이다. 이 점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경험에서 항상 그러하였고,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개입하시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묵시문학적 전쟁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신 말씀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 (150.3)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151.1)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에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영적으로 깨어 있고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그 결정적인 순간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의(義)의 옷을 입고 있을 때에만 믿음의 마지막 시험에 굳게 설 수 있다(계 3:18 참조). 벡크위드(Isbon T. Beckwith)는 아마겟돈에 내재된 이 종교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춘다. “짐승의 모든 세력들이 전투하고자 모이는 것은 성도들에게 가장 최대의 위기이다.”5) (151.2)
 분명한 사실은 바벨론에 마지막 재앙이 임할 때에 성도들이 아직 하늘로 휴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상에 있는 악령에 사로잡힌 모든 정치 세력들과 배도한 종교 세력들의 연합체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백성들을 대적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의 우주적 전쟁에 비추어 볼 때만이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멀빈 벡스웰(C. Mervyn Maxwell)은 “아마겟돈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겟돈 전쟁’에서 지상의 왕들은 당사자들 간이 아닌 어린양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마귀들에 의하여 소집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6) 누가 세계를 통치할 것인가가 궁극적인 이슈이다. 대쟁투는 하늘에서 시작하여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지상에서도 계속되어 왔다. 타락한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쇄한다는 한 가지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정치 지도자들과 군지휘관들을 계속하여 모은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4). (151.3)
 천사가 설명한 이 세계를 아마겟돈 전쟁으로 몰고 갈 동기가 바로 이것이다. 동시에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찬란하게 승리하실 것이라는 점을 신자들로 하여금 확신케 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어린양으로서 친히 드린 속죄케 하는 희생이 그분의 최고 주권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하나님께만 사용한 만주의 주와 만왕의 왕이라는 명칭(신 10:17; 시 136:3; 단 2:47)이 이제 하나님의 전사로서 돌아오시는 그리스도께로 옮겨졌다.7) (152.1)
 그렇지만 실제로 지상의 왕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어린양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는가?” 조지 케어드(George B. Caird)는 “지상의 왕들이 어린양에 대하여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그 전쟁은 대핍박에 관한 또 다른 언급이 된다”고 설명한다.8) 요한은 이미 12장에서 새로운 국가 법령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겪을 묵시문학적 핍박을 말하였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