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사용된 모든 제물의 도살은 성소 뜰을 양분하기 위하여 동과 서로 그어진 가상의 선(線)북쪽에서 이루어졌다(레 1:11). 랍비들은 이 도살장이 제단과 성소의 휘장 사이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도살장은 제단의 북쪽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덟개의 짧은 기둥들이 서 있었다. 그 위에는 쇠 갈구리가 부착된 싯딤 나무의 사각판들이 각각 세 줄로 있었다. 그것들은 도살당한 짐승들을 걸어 두기 위해 사용되었다”(Middoth 3:5, Tamid 3:5, 이것은 스룹바벨 성전을 묘사하고 있지만 광야의 성막에서 생긴 일에도 원칙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114.1)
회개자는 이 기둥들 하나에 자기의 짐승을 매어 놓고 그 짐승의 두 앞발을 풀매듭(slip-knot)으로 묶었다. 밧줄을 고리로 만들어 뒷발 중 하나에 걸고 그는 셋을 함께 끌어당긴다. 짐승이 두 발로 설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옆으로 땅 위에 쓰러진다. “그것을 도살한 자는, 동쪽을 향하여 서되 그의 얼굴은 서쪽 즉 지성소를 향한다.” 그리고 그는 “짐승의 머리는 남쪽으로 돌리고 그 얼굴은 서쪽을 향하게 한다”(Tamid 4:1). (114.2)
그의 다음 동작은 그의 손을 제물의 뿔과 뿔 사이 머리에 얹는 것이었다. “얹는다”는 말은 마치 삼손이 경기장의 기둥들을 손으로 버티고 의지한 것처럼, 사람의 온 체중을 의지하고, 맡기고, 버틴다는 뜻이다(삿 16:29; 암 5:19). 이 동작으로 회개자는 상징적으로 제물의 머리 위에 자신의 죄책감의 모든 짐을 얹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자기의 특정한 죄들을 하나님께 조용히 고백한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갈바리로 향해 가는 길에 그 분은 세 번 십자가의 무게 아래 눌렸다. (114.3)
다음에 죄인은 칼을 들고 그의 대리 희생물의 목을 베도록 요구되었다(레 1:5). 이것은 그에게 충격적이요 공포에 싸이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죽음의 고통을 안고 투쟁하는 흠없은 대역(代役)을 살펴보았을 때, 그의 죄의 가증스러운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졌음에 틀림없다. 진절머리나고 혼절케 하는 이 행동을 요구함으로써 하나님은 회개자가, 자기가 한 일의 진상을 그대로 깨닫고, 자기 대신 죽어가는 고난받는 짐승을 자기의 손으로 직접 죽였다는 것을 깨닫도록 의도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갈바리에 대한 책임감을 생생하게 일깨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히 6:6)였기 때문이다. (114.4)
흘려진 피
죄인에게 봉사하는 제사장은 희생 제물이 흘린 피의 얼마를 그릇에 받았다. 이것은 의식에 따라 때로는 은으로 된 그릇, 다른 경우에는 금으로 된 그릇으로 할 것이었다. 그는 이 피를 여러 가지 의식의 요구를 채우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성막의 뜰에 있는 이 도살의 장소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이 피가 구원의 의식에서 담당한 역할을 생각해 보자. (115.1)
우리가 “흘린 피”를, 조용한 빛으로 빛나고 토로하는 기도의 향기가 나는 성소로, 또한 뜰에서 변함없이 불타고 있는 놋제단으로 가져가고 있는 지상의 봉사자를 상상할 때, 그리고 정교한 의식들을 통하여 그것을 튀기고, 그것을 전능의 “뿌린 피”로 바꾸고 있는 그를 관찰할 때, 우리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의 귀중한 피를 바치고 있는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115.2)
매일의 아침과 저녁의 흘린 피와 뿌린 피는 구원의 계획에 요긴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끊임없는 비준이었다. 엘렌 화잇은 말했다. “희생 제물은 주님께 드려졌다. 희생 제물의 피의 일부는 제단위에 뿌려졌다. 이것은 백성들이 그들 자신—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나타냈다. 일부는 백성들 위에 뿌려졌다(히 9:19, 20). 이것은 그리스도의 뿌린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특별한 보배로 은혜롭게 받으셨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엄숙한 언약에 들어갔다”(1BC, 1107). 지각 있는 관찰자는 모든 희생 제물이 장차 올 메시야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115.3)
예수님의 피는 인류의 피이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을 때 그분은 다윗의 씨뿐 아니라(롬 1:3; 딤후 2:8), “아브라함의 자손(씨)”(히 2:16)을 스스로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혈통은 각 시대의 구속받은 자들을 포함하는 표현인 “아브라함의 씨” 혹은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갈 3:29)의 혈통을 대표한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인류는 그분 안에서 죽었다. 그분께서 부활하셨을 때, 인류는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이 당신의 아버지께로 승천하셨을 때, 구속받은 인류는 그분 안에서 승천했다.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피는 인류를 대표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되실 때, 인류는 그분 안에서 영화롭게 될 것이다. (115.4)
그러나 갈바리에서 마련된 은사이신 분에 대한 계시로서, 또한 죄에 대한 억제책으로서 의도된 희생 제물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죽임당한 제물들을 과시적으로 무의미하게 증가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의미가 아니고 양(量)이 강조되었다. 여호와께서는 겸손의 정신과 마음에서 우러난 회개를 가라앉게 해버린 이스라엘의 무의미한 대량 도살과 쓸데없는 피의 강을,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라고 말씀하시므로 한번 이상 통렬히 비난하셨다(사 1:11~13). 그분께서는 “나는 인자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호 6:6)한다는 말씀으로 설명하고자 하셨다. (115.5)
예수님은,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사시기 위해 오셨을 때, 당신의 아버지께서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보증하시고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고 하셨다(히 10:8, 9). (115.6)
이보다 10세기 전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상기시켰다(삼상 15:22). 죄인이 그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희생 제물의 중심이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혜를 통하여 그분의 계명들에 순종할 결심을 하지 않으면 그의 모든 종교 활동은 무가치하다. (116.1)
피는 웅변적이다
제사장이 제단 아래 쏟아 버린 나머지 피는 아벨의 피처럼(창 4:10; 히 12:24), 몇 가지의 심오한 진리를 웅변적으로 표현했다(레 4:7, 18, 30, 34; 5:9). 계시 가운데서 계시자는 “희생당한 자들이 보복을 위하여 제단 아래서 인간의 시기와 증오에 대하여 부르짖고 있는 탄원의 소리”를 들었다(계 6:9; RH, 1900. 7. 17.). 오늘날 아벨의 피보다 더욱 웅변적인 피를 가진 한 분이 갈바리의 제단에서 부르짖는다. (116.2)
피는 이스라엘에게 화해를 가르쳤다. 이 말은 율법의 요구가 무구한 희생물의 죽음으로 만족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만일 피가 조금이라도 더럽혀져 있으면 효력이 없게 되어 있었다. 피는 대속을 가르쳤다. 이것은 희생물이 죄인의 위치에 서서 그 대신으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에서 제사장은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히 용서받은 회개한 죄들을 성막에 기록하기 위하여 피를 사용했다. 그것을 가지고 그는 그들의 죄를 “가리웠고”, 또 “속죄를 이루었다.” 이 바쳐진 피가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킨 죄를 도말했다. 오직 그 때에야 속죄의 희생이 완성되었다. 죄인이 하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함으로써 피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칭의의 위안을 주는 진리를 공개했다. 이것은 죄인이 관대한 재판관에 의해 의롭다는 선고를 받고, 이제는 그의 창조주와의 언약 관계를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깨닫고 회개자는 그의 생애를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다. (116.3)
이 희생을 명상함으로써 히브리의 예배자는 다음의 큰 복음의 진리를 파악했다.
1) 대리적 죽음을 통한 죄로부터의 분리
2) 하나님의 어린양의 구원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3) 언약 관계의 회복 그리고
4) 봉사에 바치는 그의 생애의 헌신. (116.4)
“그리스도의 사명, 너무도 희미하게 이해되고, 너무도 어렴풋이 알려졌기 때문에 그분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갈바리의 십자가의 제단의 신비로 부르게 된 사명은 사람의 마음에 차츰 펼쳐질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다른 모든 사람의 사명의 원천과 원칙이 발견된다는 것도 알려질 것이다. 도시와 마을과 세상의 큰길과 샛길에서 활동하는 모든 진실한 선교 일꾼들의 동기가 되어온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RH, 1894. 10. 30.). “자아 희생의 제단—하나님과 영혼 간에 만나는 지정된 장소—에서 우리는 마음을 살피고 내주(內在)하시는 그리스도의 필요를 드러내는 하늘의 횃불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다”(Signs, 1901. 1. 9.).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받고, 새 삶을 살기 위한 능력을 받고, 우리는 다른 죄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바쳐진 희생 제물의 효능을 지고 또한 작자 미상의 시인이 쓴 다음 시를 언제나 읊으면서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116.5)
유대의 제단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짐승의 피는
죄 지은 양심에 평안을 주지도 하나의 오점도 씻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늘의 어린양 그리스도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버렸노라.
더욱 고귀한 이름의 희생 제물
그것들보다 더 귀한 피가
나의 영혼은 당신이 지셨던 짐을 보기 위해 뒤돌아보노라.
저주받은 나무에 달려 있을 때
그 죄가 그 곳에 있은 것을 아노라.
믿고 저주가 사라진 것을 보고 우리는 즐거워하고
즐거운 음성으로 어린양을 찬양하며
운명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노래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