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8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본문 : 눅 17:11-19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경계 지역에 이르렀다. 긴 여로(旅路)에 지쳐 식사도 하고 좀 쉬어 갈 겸 한 마을로 들어가는데 동구 밖 멀리서 예수님의 일행을 본 일단의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큰 소리로 거듭 외쳐댔다. (72.1)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72.2)
 “긍휼히 여기소서.” (72.3)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바로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아 한 공동체(共同體)를 이루어 살던 불쌍한 문둥이들이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고치셨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도 치유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미 발가락이 나균에 녹아 떨어져 뭉그러졌기 때문에 먼 길을 걷기가 무척 힘든 처지였지만 예수님께만 가면 분명히 나음을 얻을 수 있다는 치유의 희망을 품고 감내했던 것이다. (72.4)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길, 전라도 길 (73.1)
 한하운 씨의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처절한 문둥병의 증상을 유장하게 읊고 있다. 이 시를 보아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열 문둥이들의 고통스런 형편을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그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보자마자 바로 이 때가 치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지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마구 외쳐댔던 것이다. (73.2)
 그러면 문둥이들이 멀리 떨어져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문둥병자에 대한 규례 때문이었다. 성경은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레 13:45-46)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율법 때문에 옛날 문둥병에 걸렸던 웃시야 왕도 별궁(別宮)에 홀로 살 수밖에 없었다. 문둥이들이 열 명이나 집단으로 있었던 것은 모두 다 공동체 밖으로 쫓겨나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문둥이들에게 예루살렘과 성벽이 있는 도시에 들어오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사회에 나오게 될 때는 멀리서 사람이 오는 인기척만 나도 윗 입술을 가리고 슬픈 음조로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질러야만 했다. 유대인들은 문둥병을 하나님이 내리는 천병(天病)으로 여겼고 문둥이를 가혹하게 대했으며 절대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문둥이가 만지는 것은 모두 다 부정하게 여겨졌다. 바람이 문둥병자 쪽에서 불어 올 때는 적어도 45m는 떨어져 있어야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문둥이들은 동구 밖 멀리서 주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73.3)
 예수님께서는 문둥이들이 “긍휼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불쌍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가시던 길을 멈추고 잠시 문둥이들을 쳐다보시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73.4)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74.1)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의 감식자(鑑識者)는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을 그 자리에서 당장 고쳐 주지 않으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문둥이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나아만에게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신 것은 다 같은 이치로, 그들을 시험하신 것이다. 믿음을 갖고 순종해 이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모두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구원했던 것이다. (74.2)
 열 문둥이도 신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믿음을 갖고 제사장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치료의 능력이 작용하여 문둥병 증세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썩어 진물 나던 종기들이 깨끗하게 아물어 버렸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 뭉그러져 뭉쳐졌던 손발에 다시 손가락 발가락이 솟아나 정상으로 회복됐으며, 얼굴과 피부에 덮여 있던 거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더니 새로운 생명력으로 건강미가 흘러넘쳤다. 문둥병이 나아 깨끗함을 받게 된 것이다. 치유의 은사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아마 예수님 있는 쪽을 향해 연방 절을 하며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고 펄쩍펄쩍뛰며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다음과같이 기록되어 있다. (74.3)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74.4)
 유대인 문둥이들은 이방인 사마리아 문둥이와 함께 기거했는데, 버림받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던 것이다. 오직 한 사람 바로 그 이방인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고 확신하고 돌아와 사례하였다. 예수님께서 엎드리어 사례하던 병이 나은 사마리아인에게 말했다. (74.5)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75.1)
 아무 대답없이 엎드려 있었다. 예수님은 묵묵부답인 그에게 믿음에 의해 병이 나았음을 주지시켜 주셨다. (75.2)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75.3)
 “주여, 감사하나이다.” (75.4)
 주님께서 왜 이 기적을 행하셨을까? 그것은 사마리아인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뿐 아니라 사마리아인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어 제자들에게 깊은 교훈을 주시고자 함이었다. 복음은 온 세상 모든 종족에게 차별 없이 전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화잇 부인은 다음과같이 말했다. (75.5)
 “그는 이방인이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열 사람을 고치셨다”(치료봉사, 134). (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