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10 장 죄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대속죄일의 경험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레 4:13~14). (231.2)
 매일의 제사의 경험 가운데 하나는 비록 부주의 하고 소홀해서 죄를 범하고도 깨닫지 못하다가 죄를 깨달으면 속죄제물을 드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 까지 유예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대속죄일까지는 모든 죄를 정리하여야 하였다. 지금은 원형적인 대속죄일 기간에 살고 있다. 대속죄일에 취급되는 속죄 사업의 엄숙함은 각 개인이 알고 인정하는 죄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허물을 심판하시는데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해서 죄를 지으면 본성이 악해서 그렇다고 편리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죄들은 하나님께서 다 눈감아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악한 본성 자체가 악한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거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핑계하는 것이다. 성경은 태어날 때 유산으로 물려받은 본성을 자체를 죄라고 부르는 적이 없다. 본성에 굴복했기 때문에 본성이 사악한 경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231.3)
 레위기는 이런 회피성 대답들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고 있다. 레위기 4~6장은 부주의와 소홀로 말미암는 부지중에(무지로)범한 죄들과 고의로 지은 죄들을 위한 구체적인 속죄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속죄제가 악한 본성에 대한 제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부지중에 지은 속죄제 마다 “죄를 범하다”(레 4:4, 13, 22, 27) 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그것이 부주의와 소홀함으로 인한 무지로 인한 자신의 죄이기 때문이다.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매일의 봉사의 용서와 대속죄일 봉사에서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232.1)
 레위기 4장“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허물이 있”(아샴: 죄가 있다, 유죄로 판명되다 — 레 4: 13, 22, 27) 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232.2)
 레위기 6장은 고의적인 죄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죄,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 맹세하는 죄를 다루고 있다. 레위기 5장 4절은 무심중(경솔하게) 맹세하는 것조차도 깨달을 때에는 자복하고 회개하라고 하고 있다. 스가랴 6장 에서는 영혼의 성전을 죄와 정죄로 더럽히는 대표적인 속건제였던 맹세하는 죄와 도독질하는 죄를 취급한다. 스가랴는 이상 중에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아주 인상 깊은 인상을 받았다. (232.3)
 스가랴는 두루마리의 이상 가운데서 영혼의 성소를 더럽힌 죄를 보았다.“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슥 5:1~4). (232.4)
 유다의 도적질하는 죄와 거짓 맹세하는 죄가 무엇인가?
 학개서는 그 당시의 배경을 설명해 준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학 1:2~5). (233.1)
 이 두루마리에 대한 이상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된 상태를 잘 드러내 준다. 우리는 영혼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심판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부주의 한 믿음, 믿음의 부족을 회개해 한다. 남은 자손의 삶의 표준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표적을 빗가간 상태로 있으면서 죄가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회개해야 한다. (233.2)
 “마음을 살피시는 위대하신 분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은밀한 중에 범한 모든 죄를 아신다. 기만당한 이 사람들은 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께서 보시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치 그분께서 세상을 포기해 버리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시고, 그들이 숨기기 위하여 그처럼 주의를 기울였던 죄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공개하실 것이다.16 (233.3)
 아버지는 제사장으로서 조석으로 하루를 통하여 지은 그의 죄와 자녀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그가 알고 지은 죄들, 하나님의 눈만이 알아차린 숨은 죄들을 고백해야 한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그가, 그가 없을 때는 어머니가 맡아서 열심히 수행되는 이 규칙적인 행위는 가족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날 어린이들이 종교적인 성향이 없는 것은 교육적 결함 때문이다.”17 (234.1)
 4. 영혼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라.
 “그대들 각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더러워진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하고, 깨어 기도하라. 그대들이 발견할 때까지 예수님을 찾고자 결심하라. 그분의 사랑이 그대들의 마음속에 거하고, 그분의 정신이 그대들의 생애를 지배하고 그대들의 품성을 꼴 지워 줄 때까지 그분을 붙든 손을 놓지 말라. 그리고 믿으라. 그러면 그분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18 (234.2)
 “나는 그대의 이름 반대편에도 ‘부족하다’는 말이 하늘의 기록 책에 적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자아를 비우고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다 같이 선을 행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룩해지지 않은 능력이다. 그대는 경건의 단순함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19 (234.3)
 5. 두 가지 정결
 품성의 정결을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결함 없는 품성을 말함이고, 두 번째는 죄의 도말을 통한 정결을 말한다. 아래 결함 없는 품성에 대한 인용절들을 보라! (234.4)
 “우리의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품성에 있는 결함들을 고치고, 심령의 전에서 모든 불결을 정결케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것들이 고쳐지고 정결케 될 때,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20 (235.1)
 “그대는 시간이 없다. 사단의 덫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강한 노력을 기울이라. 그대는 예수께 배워야 한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그러면 거기서 쉼을 얻을 것이다. 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성결을 이루어 정결하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준비되는 일은 그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대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야 하며 온유와 의를 구하며 주님의 맹렬한 분노의 날에 숨김을 받아야 한다.”21 (235.2)
 6. 신앙의 표준을 높이라.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일은 낮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고상한 수준, 즉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며,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