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7.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나님)
 엘 엘리온 의 또 다른 특성은 그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라는 데 있다(창 14:19). 소유주(qoneh, 코네)에서 파생한 동사 카나(qanah)는 “간직하다,” “제어하다”의 뜻(잠 1:5; 16:16) 외에도 “사다”의 뜻으로 사용된다(창 25:10; 3:19). 그러므로 엘 엘리온 은 당신의 사신 소유인 “천지간의 만물”을 당신의 권세로 간직하고 제어하시는 분이다. 그의 피로 사신 바 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다”(고전 6:19, 20).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행 17:28; 참고 골 1:17; 히 2:10).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친히 당신 수중에 장악하시고 계심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사람의 도움을 도외시하고 “나의 도움은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자원을 소유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담대히 간증할 수 있었다(창 14:22). (122.2)
 그러므로 엘 엘리온 의 처음 언급(창 14:18)에서는 하나님은 아들들과 딸들의 영원한 구입자—소유주, 낳은 자—로 계시되며, 그 자녀들에게 당신의 본성과 성품을 나누어주시고 그들을 불러 그들보다 불행한 입장에 있는 자들을 위해 제사장의 일을 하도록 하시고, 그 사업은 십일조로 지원하도록 마련하신 것이 나타난다. 멜기세덱이 가나안 사람인 것과 아브라함의 혈통과 무관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은 [아직] 그의 무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122.3)
 성경에는 그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선지자 발람은 아브라함의 혈족이 아니었으나 지극히 높으신 이를 알았고(민 23:7; 24:16), “야곱”이 모든 나라의 왕과 제사장이 될 것을 예언했다. 우스 땅의 욥과 미디안 광야의 이드로 역시 이 수수께끼 같은 유형의 제사장들이었다. (122.4)
 모세는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신 32:8, 9), 세상의 모든 자원을 소유하고 또 나누어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를 찬양했다. 다윗은 이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시 7:17과 그 표제, 9:2; 18:13; 21:7; 47:1-9; 56:2와 그 표제, 57:2와 그 표제를 비교하라) 사서 소유로 삼은 당신의 백성을 옹호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섭리를 인정했다(삼하 22:14). 다니엘은 엘 엘리온 의 보편성을 지적하고(단 2:37, 38; 4:17, 32; 5:21) 세상의 어떤 민족도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민족이 없음을 강조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만 계시도록 제한될 수 없고, 경배하기 위해 사람이 우상을 모셔 놓듯 앉혀 놓을 수 없는 분임을 스데반은 역설했다(행 7:48; 참고 17:25; 시 50:1, 13, 14; 눅 6:35; 행 10:35). 그리고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연설할 때 그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다(행 17:28). (122.5)
 아들 됨의 위험
 사도 바울은 이 아들 됨의 계시에는 위험이 따름을 경고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확신은 그의 자녀들에게 자기 만족과 심지어는 자기의 특권에 대한 자만심과 자족 의식을 초래할 수도 있다. 루시벨이 난 체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기가 지극히 높으신 이를 닮았다는 것과 자기의 지위가 높다는 것 때문에 그는 마침내 그분과의 평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사 14:14). 법왕이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대권을 가졌노라 주장하는 것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사상이다(살후 2:4). (123.1)
 아레오바고(Mars) 언덕에서 행한 “알지 못하는 신에게”란 제목의 연설에서 바울은 헬라의 철학자들을 상대로 하늘과 땅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설파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을 강조하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라”고 선언했다(행 17:22-24). 이 말은 모세가 엘 엘리온 을 묘사할 때 쓴 “하늘과 땅의 주인(qoneh, 코네)”이란 표현의 메아리였다(창 14:19, 22). (123.2)
 게세니우스(Gesenius)는 동사 카나(qanah)는 “속량하다,” “몸값 주고 사다”의 의미도 가진 것으로 보았다(출 15:16; 사 11:11; 느 5:8). 사는 목적이 결국 자기의 소유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123.3)
 이 낱말 카나(qanah)를 처음 쓴 사람은 하와였다. 아들을 낳고 그녀는 “내가 야훼—남자를 얻었다(qanah)”고 소리질렀다(창 4:1). KJV는 “내가 야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로 되어 있으나 로부터는 원문에 없는 말을 첨가한 것이다. 하와는 그 아들을 야훼 께서 약속하신 “생명을 주는 씨”로 오해했다. 그녀는 그 아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창 4:1; 참고 요일 3:12; 겔 18:4). (124.1)
 카나 는 또한 “준비하다,” “형성하다,” “만들다”로 풀이되고 번역된다. 이 말이 하나님의 역사를 수식할 때는 그의 창조적 솜씨를 말한다. “그분은 너를 지으시고 세우신 분이 아니냐?”라고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물었다(신 32:6). 다윗은 노래했다: “주께서 나의 내장을 형성하셨고(시 139:13, ASV; KJV는 “주께서 나의 내장을 소유하셨고로 번역했음). 그분은 당신이 만드신 것을 소유하신다. 또 카나 는 “사다”(買入)의 뜻을 가진다(출 21:2; 창 47:20, 22). 그는 당신이 만드신 것을 소유하신다. 이런 다채로운 의미들은 엘 엘리온 과 그의 백성과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한다. (124.2)
 “하나님의 자손”(신 14:1)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손”이다(시 82:6). 그들의 무관심을 꾸짖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당신의 이상을 나타내 보이셨다: “분명히 그들은 나의 백성이요 거짓말하지 않는 자식들이라”(사 63:8; 참고 계 14:5의 144,000; 단 12:1). 예수님은 설명하시기를 당신의 참된 제자들은 “너희 아버지의 자녀”(마 5:45)라 하시고 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왕국의 자녀”(마 8:12; 참고 13:38)라 하셨다. 그는 특별히 그들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눅 6:35)란 사상을 강조하셨다. 그들은 “나의 어린 자녀들”(요일 3:18)로 인정을 받았으므로, “상속자들”(롬 8:17; 참고 9:26)이다. (124.3)
 요약: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칭호 엘 엘리온 은 구속주와 구속받은 백성의 관계,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 “너희는 신들이라” 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는 이름이다. 그가 낳은 자녀들을 그는 당신의 가족으로 인정하신다. (124.4)
 하나님이 성령으로 자녀를 낳는다는 이 신비가 엘 엘리온“비밀”이다. 그는 이런 자녀를 각처에 가지고 계신다. 심지어 이방인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는 이 지구상의 모든 주민을 “한 피”(행 17:26), 즉 예수의 피로 자손을 만드셨다. “우리는 그분의 자손이라”(행 17:28). (125.1)
 예수의 성육신은 “경건의 신비”라 불린다(딤전 3:16). 반역하는 세상을 당신께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man's fallen nature)을 취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되는 능력을 받도록 계획하신 것, 이것이 복음이요, 우리를 전율케 하는 엘 엘리온 의 비밀”(시 91:1)이다. (125.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의 이름은 멜기세덱
 멜기세덱은 고집스런 자녀들을 돌이키기 위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의 이름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는 사역을 맡기신다. 그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그는 살렘에 살았으므로 그의 이름은 멜기살렘, 즉 “평화의 왕”으로도 알려졌다(히 7:1, 2).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레위 지파의 족보에 그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음을 강조한다.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조상도 자손도 기록에서 찾을 수 없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하는 사람이었다(히 7:3; 참고 5:5-10). 완벽한 족보에 이름이 없는 자는 레위족 제사장으로 봉직할 수 없었다(에 2:61-63). 그러나 영감의 글은 이 가나안의 한 왕을 역시 레위족이 아닌 유다 지파에 속한 예수의 제사장직의 전형인 비(非)레위 제사장의 유형으로 삼고 있다. (125.3)
 누군지 알 수 없는 멜기세덱은 왕이었으므로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왕족 제사장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출 19:6; 벧전 2:5; 계 1:6; 5:9, 10; 20:4). 이 “왕들과 제사장들”은 하늘 왕국에 속한 신민(臣民)이다(참고 단 4:17, 25, 32; 5:21). 비록 육신적 혈통으로는 제사장 사역을 주장할 아무런 권리가 없으나 그들은 성령의 직접적 부르심으로 그 일에 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많은 형제들 중 지극히 높으신 이의 대리자로 발탁된 그들은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그 나라는 의와 화평의 왕국이다. 피로 사고 속함 받은 그들은 입양(入養)을 통해 그분의 왕족 제사장 가문의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125.4)
 롯을 구출한 승리를 안고 고대 헤브론의 제단 앞 경배의 장소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부터 한 비밀을 계시 받는다. 그것은 그의 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유대인이 차별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족 제사장들이 될 것이며,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후손이 성취할 성업을 알아차린 아브라함은 선서하기를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엘 엘리온 야훼 께 손을 드노라”(창 15: 22)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들 각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엘 엘리온)의 비밀 속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엘 샷다이)의 그늘(날개) 아래 살리로다”(시 91:1). (126.1)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성취되고 엘 엘리온 의 자녀들이 그분을 지극히 높으신 이로 알게 되고, 구원받고 해방되어(창 14:20) 변화되어 새 사람된 자녀로 인정받으면, 사랑하는 사도가 말한 놀라운 말씀의 성취를 볼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것을 아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이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그 때 비로소 그분은 그들에게 “너희는 신들이라”하신 놀라운 엘 엘리온 의 비밀”의 뜻과 권세와 영광을 충분히 설명하실 것이다. 얼마나 큰 감격으로 우리는 그분을 찬송해야 할까! (126.2)
들어라! 폭발하는 저 환호성!
   들어라!, 저 큰 무리의 개선의 함성!
우리 예수, 지극히 높은 보좌에 오르시네.
   오, 이 얼마나 큰 경사인가!
면류관 씌우세! 면류관 씌우세!
   씌우세! 씌우세! 면류관! 면류관!
면류관 씌우세! 우리 주께!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
         (SDA Hymnal, No. 165)
(1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