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7.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 엘리온(Él èlyon)은 충성되고 승리하는 남은 무리를 상대로 약탈을 일삼는 왕들을 패배시킨 아브라함의 용기와 포로된 자들을 되찾은 그의 승리의 이야기를 통해 소개된다(창 14:18). (111.1)
 노아의 후손들은 점점 배도의 길에 빠져들었으나 아브라함의 친족 중에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무리가 남아 있었다. 어두움이 세상 주민 위에 내려 덮이고 있을 때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의 일환으로 하나님은 부조 아브라함을 불러 다신교적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아갈 것을 명하셨다. 타향에서 그와 그의 아내는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세상에 본이 되어야 했다. 여호와의 언약 사회에서 순종하는 가족이 된다는 것이 무엇임을 체험한 후 그들은 마침내 메시야의 조상이 되도록 허락되었다. (111.2)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와 함께 드디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는 그의 나이 75세였다. 그들은 벧엘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제단을 쌓았다(창 12:1-8). 제단의 봉화(烽火)는 이웃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을 거쳐 남북으로 내왕하는 대상(隊商)들의 눈에도 띄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섞여 사는구나 생각했다. 야영지의 그의 부족은 경배 행위로 참 하나님을 증거했다. 여러 해를 넘기는 동안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기를 배웠다. 그러나 곧 기근이 닥쳐 부조는 말라 버린 초장을 뒤로하고 몇 단계 남하를 계속하여 권속들과 함께 드디어는 애굽까지 갔다. (112.1)
 기근이 지나가자 주님은 노부부를 명하여 롯과 또 그들이 거느린 무리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그들은 다시 벧엘 부근 그들의 제단 가까이에 정착하고 참 하나님 경배하기를 계속한다(창 13:1-5). 점차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짐승 떼가 불어나 부유해지고 그들의 장막은 수많은 목자들과 종들로 붐빈다. 물과 목초지의 부족으로 양편 목자들 간에 마찰이 잦던 중 그들은 서로 갈라서기로 결정한다. 아브라함은 벧엘을 떠나 남쪽의 헤브론으로 가서 다시 제단을 쌓고 경배하기를 계속한다(창 13:5-18). 롯은 비옥한 요단 계곡으로 이주하여 소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충성심이 시들게 한다. (112.2)
 성경 역사상 최초의 전쟁
 아브라함이 모르는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네 족장들은 소돔과 고모라 지방에 있는 다섯 도성을 침략한다. 그들은 롯과 그의 가족을 포로로 잡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수많은 노략물을 수레에 싣고 도주한다(창 14:1-12). 조카의 조난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318명의 훈련된 사병(私兵)을 거느리고 도적 떼의 뒤를 추격한다. 다메섹 근교에서 그들을 따라잡은 아브라함은 부하들을 좌우로 갈라 적을 포위하고 네 족장을 쳐죽이고 롯과 그의 가족과 모든 노략물을 도로 빼앗는다(창 14:13-17). (112.3)
 가나안으로 돌아온 그는 소돔 왕의 영접을 받고 그에게 백성과 노략물을 돌려주는 동시에 신비의 인물 “살렘 왕 멜기세덱”의 환영을 받는다. 그는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리온)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말하기를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주시옵소서.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니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리더라”(창 14:18-20). 이 만남에서 아브라함은 증거하기를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야훼 께 내 손을 드노라[선서를 의미]”(창 14:22) 하였다. 여기 야훼엘 엘리온 이 함께 동격으로 나타난다. (113.1)
 아브라함의 이 경험을 보는 바울의 시각
 앤드류 주욱스(Andrew Jukes)는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처음 일곱 장에서 이 경험의 중요성을 설명했음을 지적했다. 먼저 바울은 아들을 통해 만물을 지으신(히 1:2; 3:4) 하나님의 창조의 오묘를 추적했다. 이 때 그는 창조자—­언약 체결자이신 엘로힘­—의 이름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영원 불변하시는 주님의 본성을 논하고(히 1:11, 12), 그분은 죄인을 죄 없다 하지 아니하시므로(히 2:1-3) 그분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분의 의와 공의의 특성은 야훼 에 의해 나타내 진다. 그는 주께로 나오는 사랑스럽지 않은 자들을 성결케 하기 위해 야훼 의 은혜의 성령께서 부으시는 사랑의 대폭포를 강조한다. 이 충만한 선하심을 엘 샷댜이 께서 나타내신다(히 6:4, 5). (113.2)
 그리고 바울은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된” 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히 6:20; 7:1; 5:1). 그러나 그는 그 대제사장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독자들의 그리스도인적 성숙이 그들의 특권과 경험이 요구하는 단계까지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책망한다. 그들은 오래 전에 “죽은 행실에서 회개함”으로 기초를 다졌어야 한다는 것이다(히 6:1). 그들은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야훼 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았어야 했다. 동시에 그들은 엘로힘께서 세우신 언약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고 엘 샷다이 의 가르침을 받아 침례와 안수 수준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어야 했다(히 6:2-5). (113.3)
 이미 받은 빛에 따라 살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그것을 거부한 자들이 되었다(히 6:4-9). 그러므로 바울의 논지는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초보적인 것에 낙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비밀”(시 91:1)에 가려진 보다 깊은 것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늘과 땅을 소유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으므로, 우리는 이제 부조 아브라함이 살렘 왕을 만난 일화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114.1)
 구원의 역사에서 이 시점은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을 계시하기 때문에 자못 그 의의가 크다. 그러면 하나님에 관해 더 깊은 것을 알기 전에 그 사건의 배경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자기가 양성한 군대를 이끌고 아브라함은 구원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을 위해 최초의 야간 강행군을 감행했고 최초의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그는 최초로 포로들과 모든 노략물들을 탈환하는 경험을 한다. 그 때 성경에 언급된 최초의 제사장이 나오고, 그 제사장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칭호가 최초로 등장한다. 믿음의 조상은 그 때 그에게 십일조를 드린다. 이것은 실제적인 경배 행위에 해당하며, 십일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14.2)
 성경 역사는 하늘의 계시를 전달하는 수레
 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늘은 아브라함과 그를 따르는 자들, 그리고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두 가지 중요한 사실, 즉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품과, (2) 그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역할을 주목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살펴야 한다. (114.3)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칭호는 히브리어의 엘 엘리온(Él &èlyon)을 번역한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대로 (Él)은 “큰,” “강한” 것을 말하며, 흔히 하나님으로 번역된 말이다. 엘리온(èlyon)은 “지극히 높은”이란 말인데, 이 말은 “올라가다, 오른다”의 뜻을 가진 올라(ólah)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은 성전 마당에서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번제물의 이름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항상 “지극히 높은”으로 번역되지는 않았으나 형용사로서 엘리온 은 같은 종류의 것을 비교할 때 최상급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벧호론의 가장 높은 연못(수 16:5; 참고 왕하 18:17; 대하 32:30; 사 7:3), 바로의 빵 맡은 관원이 머리에 이고 있던 세 광주리 중 가장 윗 광주리(창 40:17), 에스겔이 계시로 본 성전의 가장 윗방(겔 41:7; 참고 42:5), 솔로몬의 성전은 모든 신전들 중 가장 높았고(왕상 9:8; 대하 7:21), 왕궁 대문은 모든 대문들 보다 높았다 (대하 23:20).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민족들보다 높게 될 것이며(신 26:19), 다윗의 왕위는 다른 어떤 군주의 위 보다 높았다(시 89:27; 참고 신 28:1). 성경의 엘리온 은 유사한 물건이나 인물을 비교할 때 최상급을 말한다. (114.4)
 하나님을 수식할 때도 엘리온 의 뜻은 조금도 변치 않는다. “이는 주여, 주께서는 온 땅 위에 [가장] 높으시며(엘리온), 주께서는 모든 신들(엘로힘) 위에 훨씬 높으심[어원인 알라(álah)의 피동형이 쓰임]이니이다”(시 97:9). 그는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사 57:15)이시다. 엘리온만 따로 사용되어서 그 말이 하나님을 말한 경우는 모두 20번인데, 사용자로는 발람(민 24:16)과 모세(신 32:8; 참고 행 17:26; 시 78:35, 56; 89:27-여기선 메시야에게 적용됨)가 있다. (115.1)
 엘 엘리온 으로, 즉 엘리온 이 합쳐진 형태로 쓰인 것이 다섯 번(창 14:18-22; 시 78:35), 야훼 와 함께 쓰인 것이 두 번(시 7:17; 47:3), 엘로힘 과 함께 쓰인 경우가 두 번(시 18:13; 57:3) 있다. (115.2)
 하나님의 역설(逆說)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설(逆說)에 접한다. 하늘이 보기에 다른 신이란 전혀 없는데(행 19:26; 갈 4:8), 어떻게 유일하신 참 신을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설화의 신들과 비교할 수 있는가? 공연히 엘 엘리온 이란 최상급 비교사를 씀으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줄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 이름에 계시된 하나님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열쇠 구실을 한다. (115.3)
 영원하신 아버지여,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우리 발에서 신을 벗는 겸허한 정신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는 우리가 밟는 곳은 주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터이기 때문이옵니다. (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