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데 발문 부분에 나타나고 있는 경고가 머리말 부분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오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발문에는 두 번씩 나오고 있는데 머리말에는 한 번만 나온다. 우리는 문학적 유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기계적인 유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문호(大文豪)들도 서술 방식을 중요시하지만 그렇다고 기별 내용보다 방식을 더 중요시하는 일은 결코 없다. (58.2)
 그간 많은 주석가들이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요한계시록의 전후 두 부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왔다. 요한계시록 전반부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1:10~3:22)를 포함하고 있고 후반부는 새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21:9~22:9). 각 부분을 잠깐 훑어보기로 하자.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일곱 개의 상징적인 도시에 흩어져 시련과 박해를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볼 것이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의 도시 곧 영화로운 새예루살렘과 하나가 되어 다시 자리를 잡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교회들이 이 땅에서 죄와 더불어 싸움을 싸우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교회가 신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와 선의 속에서 생을 누리고 있다. 이두 부분에서도 앞서의 서문과 발문의 경우처럼 그 문장과 귀절들이 서로 놀랍도록 유사성을 띄고 있다. 예를 들면 생명 나무, 열린 문,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에 대한 언급들이 여러 가지 유사한 표현의 일부이다. (58.3)
 첨언한다면, 전후반의 구분이 장(章)으로 배열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때 장절의 구분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요한의 사후 천여 년이 넘어서도 오늘과 같은 장절의 구분이 없었다. 요한계시록의 장절식 배열은 그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그런 배열 방식 자체가 영감 받은 것은 아니다(관련 문제와 해답 란을 참고하라). (58.4)
 일곱 교회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 보면 일곱 인(印)이 나온다(4:1~8:1). 새예루살렘 구획에서 좀더 앞으로 오면 천년 기간과 그 관련 사건들이 등장한다(19:11~21:8). 일곱 인에서도 특별히 6장 9, 10절을 눈여겨 보라. (58.5)
 여러분들은 거기에서 박해받는 영혼들이 하나님께 신원(仲免)을 호소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천년 기간에는 부활한 순교자들이 보좌에 앉아 원수들을 심판한다(20:4).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늘이 열리는 장면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고 있다. 이 두 부분에서 똑같이 백마를 탄 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58.6)
일곱 교회
(1:10~3:22)
세예루살렘
(21:9~22:9)
그리스도께서 여러 도시에서 싸우는 교회들을 권고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평화 중에 한 도성에 모인 교회들에게 보상하심
일곱 등대 사이에 다니신다. 2:1
생명나무 2:7
열린 문 3:8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다. 3:21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3:12
내가 속히 오리라 3:11
그리스도는 영원한 등불 21:23
생명나무 22:2
결코 닫히지 않는 문 21:25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22:1, 3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옴 21:10
내가 속히 오리라 22:7
(59.1)
 이 두 부분 모두에서 왕들과 장군들을 위시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죽여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으며, 또 재림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죽고 있다. (59.2)
 이 제 요한계시록의 중앙 부분으로 들어 가보면 교차적(交文的) 쌍의 가장 현저한 경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59.3)
일곱 인
(4:1~8:1)
천년기
(19:11-21:8)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그분의 백성을 보좌에 앉히심
하늘이 열림 4:1
흰말 탄자 뒤에 여러 색깔의 말이 따름 6:2~8
제단 아래 영혼들이 심판을 요구함 6:9, 10
흰옷 6:11; 7:9~14
왕과 장군들이 죽음을 바람 6:15, 16
하늘이 열림 19:11
흰말을 탄 자 뒤에 흰말들을 탄 자들이 따름 19:11-16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부활해서 재판석에 앉음 20:4~6
흰옷 19:14
왕, 대장 등이 죽임을 당함 19:17~21
(59.4)
 일곱 나팔(8:2~11:18)과 마지막 일곱 재앙(15:1~16:21)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가 매우 다르다. (60.1)
 강렬성에 있어서 우선 다르다. 재앙 쪽이 나팔 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관찰해 본다면 첫번째 여섯 나팔 중 다섯이, 그리고 첫번째 여섯 재앙 중 다섯이 대체적으로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순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케 될 것이다. 영향을 받는 순서는 땅 —> 바다 —> 강(江) —> 천체(天體) —> 유브라데스 강이다. 일곱 나팔은 악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바꾸라고 경고하기 위하여 내리는 가혹한 심판을 나타낸다. 마지막 일곱 재앙은 마음을 고쳐 먹지않은 악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내리는 대단히 가혹한 심판을 나타낸다. 아래의 도표를 보면 일곱 나팔과 일곱 재앙이 각기 “대쟁투”“바벨론의 멸망”이란 표시로 묶여 나란히 세워져 있다. (60.2)
 이렇게 도표를 만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곱 나팔에 관한 부분이 끝나는 곳에 놀랍게도 하얀 옷을 입은 여인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녀들의 진정한 어머니가 등장하는가 하면, 마지막 일곱 재앙 부분의 뒤에는 자주 옷을 입은 여인 즉 자녀들도 역시 음녀인 음녀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두 여인 모두 일정 기간을 광야에서 보낸다. 두 여인 모두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달린 짐승을 상대해야 한다. 이 구획의 각 부분에서 우리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는 신비적인 외침을 듣는다. 이런 외침은 요한계시록 어디에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60.3)
 이제는 앞에 소개한 도표들을 하나로 합친 큰 도표가 필요하게 되었다. 아래에 요한계시록 전체의 대칭적 또는 교차적 구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열한 도표를 소개한다. 도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절반을 도표의 왼쪽 절반과 함께 통독하고 그 다음에는 계시록의 후반을 도표의 오른쪽 절반과 함께 통독하라. 동시에 도표의 앞뒤로 눈을 움직이면서 짝을 이루는 항목의 유사성과 대비성을 눈 여겨 보라. (60.4)
 문학적 분석으로 인한 보상
 앞에서 약속하기를 요한계시록의 구성에 관한 연구를 한다면 “요한계시록 예언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아직도 성취되지 않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 하였다. (60.5)
일곱 나팔
(8:2~11:18)
대쟁투
(11:19~14:20)
마지막 일곱 재앙
(15:1~16:21)
바벨론의 멸망
(17:1~19:10)
혹심한 심판으로 세상에 경고한다 극심한 심판으로 세상을 벌하심
1. 땅 8:7
2. 바다 8:8, 9
3. 강들과 샘 근원 8:10, 11
4. 해, 달, 별 8:12
5. 흑암, 무저갱, 메뚜기 9:1~11
6. 유브라데 강 9:13-21
7. 큰 음성: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11:15-18
1. 땅 16:2
2. 바다 16:3
3. 강들, 샘 근원 16:4
4. 해 16:8, 9
5. 짐승의 보좌에 흑암이 임함 16:10, 11
6. 유브라데 강 16:12, 16
7. 큰 음성:다 되었다! 16:17~21
 미래는 얼마나 남았는가? 교차 대구적 개요에 의한다면 사실상 교차 대구의 후반부 전체가 아직도 미래에 속한다. 확실히 새예루살렘의 강림은 미래의 사건이다. 확실히 천년 기간도 미래의 일이다. 마지막 일곱 재앙도 분명히 미래의 일이다. 영적 바벨론의 종국적인 멸망도 틀림없이 미래사인 것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의 후반이 실질적으로 모두 미래에 속한다. (61.1)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전반부는 어떤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기록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사방에 흩어져 있다. 많은 주석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바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기독교 시대 전체에 걸치는 교회의 경험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12~14장의 대 쟁투 광경은 그리스도의 탄생(12:1, 2, 5)과 더불어 시작하여 다니엘 7, 8장에서 예언된 긴 박해 기간을 거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난다(14:14~20). 이와같이 요한계시록의 전반부를 끝마치는 대쟁투의 장면은 기독교 역사 전체에 걸치고 있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은 일곱 교회와 대쟁투 광경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다니엘 2, 7, 8, 9장이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듯이). (61.2)
 이같이 요한계시록의 교차 대구적인 구조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두 개의 주요 묶음으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거의 전적으로 마지막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는 반면에(요한계시록의 후반부)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시대에 걸친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요한계시록 전반부). 요한계시록 전반부를 역사적 부분이라 하고, 후반부를 종말론적 부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종말론적이란 말의 영어 단어 에스카톨로지컬(Eschatological)은 끝이란 뜻의 희랍어 에스카톤(Eschaton)에서 왔다. 이 말은 학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친숙히 일반화된 용어로서 “세상의 마지막에 관련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61.3)
일곱 나팔
(8:2~11:18)
대쟁투
(11:19~14:20)
마지막 일곱 재앙
(15:1~16:21)
바벨론의 멸망
(17:1~19:10)

참 어머니와 그 자녀들의 시련
거짓 어머니의 추락

흰옷을 입은 참 어머니 12:1, 2
그 자녀들이 계명을 지킴 12:17
광야의 여인 12:14
머리 일곱 개 뿔 열개 달린 짐승 12:3, 13:1
바벨론이 무너졌다! 14:8
예수의 증거 12:17(흠정역)

자주 옷을 입은 거짓 어머니 17:4
그녀의 자녀들은 음녀 17:5
광야의 여인 17:3
머리 일곱 개와 뿔 열개 가진 짐승 17:3
바벨론이 무너졌다! 18:2
예수의 증거 19:10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