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동안에는 안식일이 물러나고 일요일 준수를 장려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주요 조치가 취해졌다. 어떤 신학적인 판단 기준들이 안식일의 중요성을 폄하했지만, 그보다는 교회회의와 통치자들의 법령의 반포가 훨씬 영향력이 컸다. AD 538년 제3차 오를레앙 종교회의는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논밭 일”을 금했다(
Hefele 4:209).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법은 일요일 준수로부터 농사일은 면제해 주었지만(일요일에 농사일은 허용했지만),m이제 구체적으로
“논밭 일”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것은 오경의 안식일 요구사항을 일요일에 적용하는데 내딛은 거보였다. 585년의 제2차 마콘 종교회의와 589년의 나르본 종교회의는 매우 엄격한 일요일 준수를 위한 추가 규정을 반포했다(위의 책, 407, 422). 게다가 마콘 법령들을
“585년 11월 10일의 한 칙령에서 군트람왕이 공포하여, 일요일을 주의 깊게 지키라고 강요하였다.”(위의 책, 409). 이렇게 하여 국가 당국이 교회를 지원하였는데, 이런 현상은 이어지는 몇 세기 동안 규모와 영역에 있어서 점점 강해졌다. 6세기 말엽에 거의 유럽 전역에서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 이제 일요일은
“매주 그리스도인의 예배뿐 아니라 안식의 날로”도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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