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엣세네파와 보이투스파
 요세푸스는 엣세네파를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장 엄격한 분파로 언급한다. 이들은 소수였지만 신약 시대에 중요한 당파였다. 아마도 희년서보다 100년 남짓 후에 저술되었고 사독 문서 또는 다마스쿠스 문서라 일컬어진 어떤 엣세네파인의 저술은 안식일에 관한 여러 구체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10.14-11. 18). 이 문서의 전체적인 주제는 대부분 희년서에 나타나는 주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안식일을 어긴 것에 대한 사형선고는 언급되지 않는다(아마도 이 당시엔 “생명과 수족”을 다스리는 권세가 로마 손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임). 더욱이, 안식일에 짐승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그것을 몰고 갈 때는 2,000규빗을 갈 수 있었지만,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는 1,000규빗(바리새인들이 허용한 거리의 절반)을 넘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다마스커스 문서가 규정하는 바에 따르면, 안식일에 아기를 업고 가면 안 되었고 안식일에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 도와주어서도 안 되었으며, 만일 안식일에 갓 태어난 동물이 웅덩이에 빠졌어도 건져내서는 안 되었다. 요세푸스는 심지어 엣세네파는 안식일에 배변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Wars 2.8.9). (601.6)
 신약 시대에 제사장 귀족 계급이었던 사두개인들은 헬라화주의자들이었지만 기본적인 유대 종교의준수 사항들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의 규정을 따랐다. 사두개파의 분파로 알려진 보이투스파는 엣세네파의 엄격성에 근접한 경향을 보였다. 보이투스파는 엣세네파처럼 연례 절기들이 매주 안식일에 맞아떨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태양력을 따랐다. 그들은 이것이 안식일을 보호하는 안전한 방책이라고 보았다. (602.1)
 4. 필론과 요세푸스
 AD 1세기 전반 신약 시대로의 전환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안식일 신학 및 그날의 활동에 대해 통찰을 준다. 그것들은 변중적인 문맥에서 주어졌으며, 팔레스타인보다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상황을 반영한다. 필론은 7이라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 사색하고 안식일을 세계의 생일로 일컫고, 안식일 계명에 내포된 평등과 자유의 측면을 포함하여 안식의 철학적의 이미를 다룬다(Special Laws 2. 15; Decalogue 20). (602.2)
 실천에 대해서 필론은 철학곧구약을공부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는 것을 언급한다. 틀림없이 그가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적 분위기와 필론 자신의 철학적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품성을 계발하고 양심에 순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안식일을 온전히 철학에만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On Creation 43). 유대인의 회당은 좋은 의미의 학교로서, 거기서 절제, 용기, 정의 등의 덕목을 길렀다(Special Law 2. 15). 지혜를 추구할 목적으로 그런 곳에서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스포츠나 오락에 시간을 허비함으로 정신을 약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Moses 2.39). (602.3)
 또한 요세푸스는 AD 1세기 후반에 유대인들이 제칠일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않고 그날을 구별함으로 유대인의 관습과 율법을 학습하는데 바친 것에 대해 말한다(Antiquities 16. 2. 3). 게다가 그는 한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의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망대 가까이에 서서 금요일 오후와토요일 저녁에 나팔을불어 안식일이 시작하고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관습에 대해 말한다(War 4. 9. 12). 이뿐 아니라 그는 안식일에는 금식하지 않는 표준적 유대인의 전통을 말해 주는 증거를 제공하며, 안식일 점심 식사를 해야 하는 요구사항을 언급한다(Life 279). (602.4)
 B. 초기교회에 나타난 안식일과 일요일
 1. 일요일 준수의 기원
 매주 일요일 준수가 일어나게 된 사건들의 정확한 경위는 다소 불투명하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가 안식일을 대체하는 것에서 기원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4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일요일이 휴일로서 안식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교의 매주 일요일은 특별한 예배를 위해 따로 떼 둔 시간이면서 동시에 일하는 일상적인 날이었다. (602.5)
 연례적인 일요일 부활 기념이 결국 부활절 축제일로 인식된 매주 일요일 준수보다 선행된 일이었다. 신약에서 유대인의 유월절은 실체인 유월절 어린양을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마찬가지로 첫 열매를 기념하는 유대인의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전 5:7; 15:20). (602.6)
 레위기 23:11에 따르면, 요제의 곡식 단은 “안식일 다음 날” 드려졌다. 바리새인들은 그날이 유월절 안식일 다음 날이었다고 해석했다. 그들은 니산월 14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고 니산월 15일에 유월절 안식일을 기념하고 니산월 16일에 첫 열매를 요제로 드렸다. 이들은 이런 날짜들이 주일 중 몇 요일에 오든 상관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엣세네파 및 사두개파 보이투스파 사람들은 “안식일 다음 날”을 항상 매주 안식일 다음 날 곧 일요일로 해석했다. (603.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기념하는 “첫 열매” 축제를 매주가 아니라 매년 지켰는데, 유대인들이 초실절을 기념하던 이전 관습을 따라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2세기 말에 벌어진 “부활절 논쟁”에서 드러난 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파 및 엣세네파 보이투스파의 계산 방식 형태를 둘 다 채용했다. (603.2)
 마침내 이런 연례 축제 행사는, 반유대적 정서(특히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팽배했던)와 안식일의 금식으로 인한 안식일에 대한 폄하 같은 다양한 요인 때문에 매주 축제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부활절과 오순절 사이의 7주간의 기간이 고대 교회의 어떤 분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띠었음을 암시하는 증거가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도 일요일들을 기념하던 관행이 마침내 한해 내내 일요일을 기념하는 관행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603.3)
 2. AD 2-3세기의 안식일과 일요일
 a. 최초기의 정보
 2세기에 나타나는 세 개의 휴일 관련 언급을 지적해야 한다. 왜나하면 그것들은 일요일이나 안식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일요일 준수 혹은 안식을 준수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이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을 남긴 사람과 자료는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와 비두니아의 로마 총독 플리니우스 그리고〈디다케(Didache〉이다. (603.4)
 AD 115년경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소아시아의 마그네시아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 한 통을 써보내, 다양한 극단적인 유대교 관습에 대해 경고했다. Magnesians 9. 1에서 그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는 것”(sabbatizing)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의 소망도 그분 안에서 부활한 주의 것(Lord’s)에 따라 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자주 이 말을 “안식일을 더 이상 지키지 말고 주의 날[일요일]에 따라 살라”는 의미로 해석해 왔다. 사실 “날”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데 첨가했다. “주의”(Lord’s)라는 말 다음에 “날”이라는 말 대신 “삶”이라는 말을 보충하여 “주의 삶에 따라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나 사용된 헬라어 구문에 가능하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또는 그것 안에서)“우리의 소망도 그분 안에서 부활했다.”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주의 삶”이 문맥에 훨씬 잘 어울린다, “sabbatizing”이라는 표현은 어떤 날의 준수보다는 전반적인 생활 방식을 내비치는 말이다. 4세기에 이그나티우스의 글을 보충한 어떤 사람은 “sabbatizing”이라는 말을 “안식일 준수”와동등한 말로 보지 않고, 안식일과 일요일을 준수하라고 격려했다. 그가 반대한 것은 유대인식 안식일 준수 형태뿐이었다〈참조 V. B. 3. a). 이그나티우스가 남긴 진술의 문맥 곧 구약의 선지자들의 모본에 호소하는 내용(8. 2-9.1)을 보면, 그가 예배일보다는 삶의 방식을 다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sabbatizing”하지 않고 “주의 것[삶]”에 따라 살았던 이런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일 중 첫째 날이 아니라 제칠일 안식일을 지켰다. (603.5)
 AD 112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로마 총독 플리니우스의 편지는 비두니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에 대해 말한다. 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배도했고, 플리니우스가 이들의 이전 신조와 관습에 대해 묻자 이들은 해뜨기 직전에 “정해진 날” 그들이 만나 하나님께 하듯 그리스도께 찬양을 부른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었다고 말했다(Letters 10. 96). 이런 관행은 매주 안식일이나 매주 일요일 준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연례적인 부활절에 태양의 일어남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603.6)
 2세기 초의 것으로 보이는〈디다케〉라는 훈령 지침은 14장에서, “주님의 주의 것(Lord’s of the Lord)”에 따라 모이고 떡을 떼고 성찬을 들어야 한다. 이 본문은 매주 일요일 기념, 연례 부활절, 제칠일 안식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문맥과 진술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전혀 다른 제안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즉 “훈령”(명령 또는 “교리”)이 보충되어야 할 명사이다. 이렇게 보면 “주의 훈령[가르침]에 따라”가된다. (6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