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속하는 능력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인 친교에 사랑어린 존경을 낳는 역할을 띤다. 이것은우리 모두가 한 구원을 공유하고 우리의 주시며 구주이신 분이 또한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의 주시며 구주이심을 상기시켜 준다. 매 안식일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면서 서로를 위한 사랑과 존경심이 자라난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들 가운데 있는 유대관계는 너무도 긴밀하여 그들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정신으로 물들게 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 분명 그분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지만, 그분의 진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언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진술은 교회의 공동체적 삶에도 의미를 준다. 각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자들을 사랑하되 기꺼이 그들을 대신하여 기쁘게 죽을 만큼 사랑한다. 사실 초기교회의 역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할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에 옮겼음을 거듭거듭 증언한다. (597.4)
 안식일의 교회론적인 측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다. 그것은 성도들을 세우고 그들이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도록 하는 성령의 역사와 관련된다. 이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특별한 선물을 주시는 것, 곧 성령의 은사를 말한다(롬 12:4-8; 고전 12:4-11; 엡 4:11-14). 안식일에 이런 은사 가운데 다양한 것이 공적으로 표현된다. 더욱이 안식일이 구속의 표징이라는 사실은 성령께서 그 선물들을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로 감사하게 한다. 또한 교인들이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영적 은사를 확인해야 한다. (597.5)
 E. 안식일과 종말론
 고대 유대교에는 안식일이 이 세상에서 영원을 맛보는 날이라는 말이 있다(Mishnah Tamid 7. 4). 성경에는 분명한 증거가 없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히브리서 3:7-4:13에 나오는 “안식”을 새 땅을 언급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지만 주된 강조점은 현세에서 시작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경험에 있다. 이런 경험도 물론 영생의 시작이며, 하늘과 새 땅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598.1)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안식일을 무시하는 경향이 거의 보편화되어 있지만, 성경은 그리스도를 창조주요 구속주로 기억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요구를 계속한다. 불가피하게 이런 상황 때문에 안식일이 논란속에 휩싸여 있다. (598.2)
 안식일은 또한 지상 역사의 최종적 위기에 특별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종말이 가까워오면서 악령의 세력이 증폭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용곧 사탄의 분노는 여자(교회)의 남은 자손에게 집중 될 것이며(계 12:17), 이어서 이 분노의 성격과 강도가 13:11-17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믿음을 가진 자로 묘사되어 있다(12:17). 거짓의 표 곧 짐승의 표가 강한 법적인 제재로써 온 세상에 강요된다(13:16, 17). 이 표는 성경에 제칠일 안식일로 제시된 하나님의 표징과 대치된다. 안식일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표징이었듯이, 마지막 위기의 때에도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충성의 표가 될 것이다.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그분의 구원하는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그들이 짐승의 세력과 그 표를 거절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참조 남은 자/세 천사의 기별 V; 각 시대의 대쟁투V. A-D). (5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