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다. 이에 대한 기본적인 증언은 안식일이 기념하도록 기능하는 창조와 구속의 국면들이다.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사업은 완전했고, 따라서 그것은 죄가 그분의 창조를 손상시켰을 때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구원도 완전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안식일 치유 기적들 및 그것들과 관련하여 하신 그분의 강론은 구원 사역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도 완전할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사 66:22; 계 21:1-4). (595.3)
 7.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마 12:8)는 그분의 선언 및 그분의 안식일 치유 기적을통해 그분의 신성을 증언한다. 그분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이유는 그분이 그것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치유들은 초자연적인 육체적 치유뿐 아니라 죄 사함과 영적인 회복도 포함하며, 따라서 그분의 신성에 대한 논박할 수 없는증언이며 하늘 아버지와 하나라는 그분의 주장이 진실한 것임을 강조한다(요 5:17, 19, 20; 9:3-5; 10:30). 따라서 안식일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식하도록 도와준다(참조신론 I-VIII). (595.4)
 B. 안식일과 인간론
 1. 안식일과 인간의 “피조성”
 “안식일은 인간 존재인 우리에게 뭐라 말하는가?” 이는 안식일이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에 관한 질문과 정반대편의 질문이다. 안식일은 창조 주간에 우리의 주의를 돌림으로 우리가 창조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관여하는 활동에 맞추어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의 첫 부모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형상은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하나님이 인간 가족에게 주신 능력 가운데는 친교, 사랑, 동정심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이런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죄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훼손되고 망가졌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이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것들을 회복시킨다. (595.5)
 우리가 개인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피조성”“피조물 됨”의 다양한 면을 지닌다.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 불멸성을 부여하지 않으셨고, 따라서 인간 존재는 죽음에 매이게 되었다 하나님만이 불멸성을 지닌다(딤전 6:16). 그분만이 불멸성을 부여하실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을 신실히 따르는 자들에게 불멸을 입혀주실 것이다(고전 15:51-54; 살전 4:15-17). (596.1)
 안식일이 우리의 “피조성”“피조물 됨”을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처럼, 또한 그것은 우리가 전지 전능한 존재가 아니고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생명과 능력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우리가 기동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런 사실은 우리 안에 참된 겸손의 정신을 심어준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이 그의 존재와 재능에 있어서 지고의 하나님께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자랑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가 피조물임을 깨닫는 것은 다른 모든 인간 존재를 존중하고 보살피는 태도를 갖게 한다. 또한 하나님이 자연 환경을 보살피는 자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이런 깨달음은 또한 우리가 사는 환경에도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596.2)
 2. “공평하게 하는 분”으로서의 안식일
 안식일은 창조주와 우리의 피조성에 우리의 주의를 돌림으로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참조 III. A. 5), 안식일 시간은 동일한 정규성과 동일한 양으로 모든 인간 존재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하나님은 안식일의 안식이 모든 사람, 곧 주인뿐 아니라 종들과 객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안식일의 이런 보편성은 “야훼에게 연합”“이방인”도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고 한 이사야의 언급에도 나타난다(사 56:6, 7). 시간의 한 부분으로서의 안식일은 그 보편성으로 인해 공평하게, 값없이 모든 인간 존재가 접근할수 있는 것이다. (596.3)
 3. 안식일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가치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이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잠재력을 주셨음을 가르친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 가운데 하나는 그분께서 창조하신 인간 존재에게 안식일을 주셔서 그분과 특별한 친교를 누리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 자체, 인간 사이의 친교, 아름다운 환경, 지적 및 육체적 힘 같은 기타 모든 축복 역시 그분께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인간존재는 하나님과 사회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할수 있다 하나님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1주일 가운데 엿새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신 것처럼(창 1:31), 우리도 엿새 동안의 일을 마치고 우리로 그일을 성취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596.4)
 4. 안식일 그리고 친교와 사랑과 동정심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 존재에게 친교를 위한 필요, 사랑하고 보살피고 동정을 베푸는 힘을 주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안식일은 성회를 위한 날이었다(레 23:3). 그 날은 또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자비롭게도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셨기에 그들도 동료 인간 존재를 동정과 사랑과 친절로 대해야 함을 상기시켰다. (596.5)
 C. 안식일과 구원론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존재를 위한 그분의 원래 계획을 망가뜨렸으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계획이 회복되어 그분의 구원하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모든자에게 작동할수 있다. 안식일은죄의 상황을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한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거룩하게 하는 능력 및 그리스도의 주 되심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 날은 우리가 구속, 구원, 회복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죄라는 질병과 그 속박 상태를 이길 수 있는 치유책을 갖고 계시는 유일한 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돌이킨다.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가리킴으로 구원을 위한 우리의 필요 및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치른 막대한 희생을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596.6)
 안식일의 구원론적인 의미를 위한 성경적 토대는 몇 가지 고찰에 나타난다.

   (1) 십계명의 다른 아홉 계명과 더불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의무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과 구원 활동의 기본 틀 안에서 시내산에서 제시되었다.

   (2) 안식일은 야훼가 그분의 백성의 하나님이며 그분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표징으로 선포되었다.

   (3) 안식일은 잘 지키기만 하면 이사야 58:13-14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줄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안식일 치유는 육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치유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설득력 있게 예시한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주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분(참조 고전 10:1-4)도 그리스도이셨고, 죄를 사하시고 죄에 얽매인 인간에게 자유와 온전함을 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597.1)
 안식일과 구원의 관계에 대한 결론적인 말로, 죄악 세상에서 인간 존재에게 구속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이 창조의 표징과 기념으로서의 안식일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창조와 창조주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재창조”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야 한다.그렇지만 이것이 창조의 기념으로서의 안식일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말은 아니고, 죄의 속박 가운데 있는 인간 존재에게 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하나님에 대한모든 지식과 관계에 기초이며 그것들보다 선행한다는 중요한 사실에 주의를 돌릴 따름이다. 즉 의미 있는 안식일 준수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597.2)
 D. 안식일과 교회론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안식일은 그 본질 및 그것이 우리로 우리의 피조성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공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은 구원론적인 측면에서도 “공평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존재가 구원을 위한 필요를 공유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구원을 자신들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자들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갈 3:28) 친교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이 친교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 곧 그리스도 교회이다. (5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