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오경
 1 .개관
 대부분의 경우에 샵바트, 샤바트, 샵바톤은 주일 중 일곱째 날을 가리키는 데 시용되지만, 오경의 다양한 본문에서 몇몇 연례 절기와 제7년(“안식”년)을 가리킬 때도 이런 안식일 관련 용어가 사용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 용어가 땅의 “안식”처럼 은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579.1)
 오경의 세 본문이 제칠일 안식일과 창조를 구체적으로 연관시킨다(창 2:1-3; 출 20:11; 13-17). 기타 여러 본문은 주일 중 일곱째 날에 있는 안식을 언급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안식일 관련 본문들은 오경에 나타나는 순서에 따라 분석될 것이다 〈참조 창조 I. A. 14). (579.2)
 2. 오경에 나타난 안식일 관련 본문들
 창조 주일의 첫 6일 동안에 이뤄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묘사한 후 창세기 2:1은 창조가 마쳤음을 요약적으로 진술한다. 그런 후 창세기 2:2, 3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579.3)
 이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사항은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1)히브리어 명사 샵바트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쉬셨음을 말하는 두 경우 모두에서 동사 샤바트가 나타난다.

   (2) 주일 중 “일곱째 날”이 다섯 번 언급되는데, 세 번은 “일곱째 날”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두 번은 대명사(it)를 사용한다.

   (3) 이 진술은 카이애즘(교차대구법)의 형태를 띠고 있다. (579.4)
 A. 하나님이 그의 일을 마치심(2절)

   B. 그리고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2절)

      C.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하”심(3절)

   B’.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3절)

 A’. 창조하시며(3절) (579.5)
 이 카이애즘 구조에서 두 개의 도입부적인 진술(A,B)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 및 그분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에 주의를 돌린다. 같은 두 사상이 순서가 반대로 바뀌어 결론 부분에서 반복된다(B’와 A’). 이렇게 카이애즘 구조의 중심부에 일곱째 날을 복주고 거룩하게 하신 것에 대한 언급이 위치한다. 이런 카이애즘 구조(A—B—C—B’—A’)에서 중심에 위치한 사항이 본문의 주요 초점이 된다. 따라서 창세기 2:2, 3에서 주요 초점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3절)는 진술이다. (579.6)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신” 것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동사는 바라크인데, 그분이 동물과 인간에게 복을 주신 것을 가리키는 데도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창 1:22, 28). 이 하나님의 축복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그것이 처음 주어졌을 때로부터 계속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거룩하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용어(“거룩하다”라는 의미의 카다쉬에서 나옴)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목적과 명령의 성취를 위해 어떤 것을 “구별하다, 따로 떼놓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진술은 이 날을 다른 여섯 날로부터 구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위해 이 날이 계속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개념을 강조한다. “따로 떼놓은” 어떤 것은 과거에 대한 기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지속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이렇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 것은 후에도 오경의 여러 언급들에서 반복되며(참조 출 16:23; 31:14-16; 35:2), 창세기 2:2, 3 진술 전체의 기본적인 표현이 출애굽기 20:8-11의 안식일 계명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579.7)
 이 본문의 진술은 안식일 관련 표현을 담고 있다. “또 [바로가]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샤바트) 하는도다 하고.” 주일 중 일곱째 날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전후 문맥은 이 휴식에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580.1)
 출애굽기 16장은 구약에서 히브리어 명사 샵바트(23절)의 첫 번째 용례를 담고 있다. 사실 이 본문에서 이 명사가 네 번 사용된다(23, 25, 26, 29절). 이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2주 전에 신 광야에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신 사건이다. 출애굽기 16:5에 따르면, 여섯째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을 거둬들여야 했다. 16장 후반부에 가서 그들은 일곱째 날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으며(25, 26절), 다른 날에 거둔 만나는 하룻밤이 지나면 상했지만 여섯째 날에 거둔 것은 상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19-24절). 일곱째 날에 어떤 사람들이 만나를 거두러 나갔으나 하나도 얻지 못했다(27절). 하나님의 반응이 이랬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야훼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 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28-29절). 이 표현은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알려졌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580.2)
 출애굽기 20장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진술한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은 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할 것이지만 일곱째 날은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시한다. 그 명령의 근거는 11절에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야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야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80.3)
 여기서 사용된 표현은 창세기 2:2, 3을 요약하면서 출애굽기 20:11이 창조의 안식일을 가리킨다는 데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안식일 계명이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인 십계명 안에 나타난다는 점 역시 의미 있다. 십계명에 부가된 것 또는 십계명에 대한 설명인 기타 오경의 법들과 함께 십계명이 특별하다는 점은 신명기 5:22을 보면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이 열 개의 계명에다 더 이상 덧붙이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즉 십계명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실재였다. (580.4)
 더욱이 안식일 계명을 포함하는 십계명을 지켜야하는, 출애굽기 20장에 제시된 언약의 근거는 구속사, 좀 더 적절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구속 자체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야훼와 언약 관계에 들어갔다(참조 출 19장). 그런 다음 십계명의 전문(前文)이자 역사적 서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구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야훼로라”(출 20:2).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속함을 받았다. 야훼가 베푸신 이런 이전의 은혜가 언약 관계를 위한 토대가 되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했다. (580.5)
 때때로 안식일과 하나님의 언약 개념은 사실상 동의어이다(참조 출 31:16). 십계명의 다른 아홉 계명 이상으로 안식일은 야훼를 섬기지 않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는 가시적인 차별성을 제공했다. 따라서 안식일은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분과 친교를 나누는 한 백성으로 밝혀주기 때문이다. (5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