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현대
 율법에 관한 교리를 포함하여 모든 교리는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전통과 의심, 교의(敎義)와 상대주의 사이의 긴장 아래에서 발전되었다. 종교는 전통에 의하여 만들어진 형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에 대하여 늘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특히 종교개혁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더 그랬다. 그 결과 광범위한 불일치의 모습을 보여 준다. 급진적 종교개혁자들과 칼뱅주의자들의 청교도 계승자인 존 버년(1628-1688년)은 율법과 은혜의 통합에 대하여 논증했다. 후에 웨슬리파는 실제 그리스도인 삶에서 율법과 은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두둔했다. (572.1)
 정통파 루터교도들은 율법과 은혜 사이의 엄정한 분리를 계속하여 가르쳤다. 이 관점에서 그들은 교회 내의 경건주의를 향하여 율법을 가지고 복음을 혼란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경건주의자들은 은혜의 교리 안에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한 쪽이 다른 쪽을 모순이라고 못 박는 일이 없어야 한다. (572.2)
 19 세기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형성되면서 그리스도교의 논의에 율법을 모든 성경 즉 구약과 신약으로 보는 신선한 관점이 소개되었다. 초기 재림 교인들은 율법과 복음의 통합이라든지 선한 행위로 간주한 순종에 대한 의혹 같은 것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이었다. (572.3)
 비록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칙을 옹호했지만, 하나님의 율법, 구체적으로는 안식일 명령과 더불어 십계명을 순종해야 한다는 그들의 강력한 주장은 율법의 역할에 대하여 비평가들로부터 광범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이들은 율법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희생에서 그 종말에 이르렀으며, 그것 때문에 안식일은 더 이상 그리스도교 신학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재림교인들은 이러한 반율법주의자들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했으며 그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었는데, 그들 교훈의 핵심 특징은 하나님 율법의 영속성이다. (572.4)
 19세기 말의 사회복음(social gospel)영향 아래, 정치색을 띤 사회복음 신학과 더불어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논의는 구체적인 목적을 잃고 죄는 이기심과 동일시되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그들의 더 높은 자아에 대하여, 선한 사람들 혹은 보편적인 선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일 뿐, 고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직접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세기 말에 전통적 개신교의 쇠퇴 및 이와 같은 세속적 정신과 더불어 죄는 종종 사회적 부정의(injustice)의 상태, 일반화된 사회적인 질병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적, 경제적, 문학적 및 심리학적 용어로 재(再)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발전은 영향력을 얻어 하나님의 율법의 역할에 관한관심이 줄어들게 하였다. (5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