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간략한 역사는 그리스도교 시대 동안 하나님의 율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 사조(思潮)들을 더듬어 본 것이다. (569.1)
 A.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론자들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론자들 그리고 신약 시대에 뒤이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의 저작물은 주로 서신, 설교, 논설과 그와 유사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십계명을 조직신학적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거기서 이런 교리를 신학적 용어로 깊이 설명한 어떤 주석을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신학적인 면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거나 그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교리들을 거부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특정한 쟁점, 즉 종종 교회 안에서 논란이 된 문제들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 그들이 이해한 바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569.2)
 이러한 요구 중 일부가 교회들 사이에서 발생한 이단적인 운동에서 일어났다. 에비온주의(Ebionism)를 하나의 실례로 들 수 있는데, 율법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이 초기 그룹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의 저작물들이 남아 있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 대부분이 그들의 원수들의 보고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569.3)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율법에 순종하도록 사람을 부르신 것이라고 그릇 믿고 있었다. 비록 그들 영성의 핵심에 율법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구약의 제사법을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외적 부가물로 간주했고, 그 결과 모세 오경의 일부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했다고 하는 점은 신약의 교훈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율법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그리스도의 주장은 자신이 율법의 구속력을 끝냄으로써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하나의 모범을 세움으로써 성취하셨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569.4)
 이레나이우스(AD 130-200년)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율법에 관한 논의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장 열렬히 옹호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이단 반박문(Against Heresies)〉이라는 글에서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율법에 관한 그리스도의 교훈은 율법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를 확대하고 그 영역을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율법을 성취하신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고 악한 행위를 삼가서 그런 악한 행위를 실행에 옮기려는 성향에 저항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569.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 160-215년)는 헬라철학은 사람을 예수께서 가르친 완전한 진리를 배운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예비적 교훈이라고 변호하였다. 클레멘트는 그의저작 〈스트로마타〉에서 율법은 선한 목자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의 율법은 지식의 교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은 진리를 불신하거나 진리에 관하여 무지할 수 없다. 율법은 경건을 연습하게 하고, 이루어져야 할 일을 지시하며, 죄를 짓지 못하도록 제지한다. 계명 준수는 전 인류를 안정된 삶에 이르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율법이 모든 윤리의 샘이며, 헬라인들이 그들의 법률을 끌어낸 원천이기 때문이다. (569.6)
 역시 알렉산드리아 신학교의 오리게네스(AD 185-254년)는 〈첫 번째 원칙들에 관하여(On First Principles)〉를 포함한 몇 개의 신학적 작품을 저술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우화화한 성경의 영적 해석을 설명했다. 그에게 성경의 참된 의미는 종종 그 본문 안에서는 분명하지 않고(이것을 그는 문자적 혹은 물리적인 것이라고 명시했다), 오히려 영(spirit)과 혼(soul)이 그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 즉 도덕적이며 영적인 의미 안에 있는데, 이것이 성경의 숨겨진 지적 혹은 영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해석학을 따랐으므로 구약과 신약의 사건들은 순수한 역사로 간주되지 않았고, “심지어 율법과 계명은 이성에 맞는 것만을 온전히 전달하진 않는다.”(4.1.16). 오리게네스에게는 “두 번째 율법”으로 알려진 신명기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초림 및 재림과 관련한 우화의 형태를 취한다. 율법에 대한 이러한 풍유적인 이해는 그리스도인 삶과 행동을 위한 율법의 중요성을 제거하고 성경의 교훈과 다른 사고방식을 그리스도교 신학 안으로 도입한다. (569.7)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초기 교부들 가운데 마지막 주자이면서 중세 신학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국의 수도승인 펠라기우스의 사상과 마주했을 때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요약했는데, 그중 하나에서 율법을 취급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펠라기우스는 율법이 복음과 함께 그 왕국에 이바지했다고 가르쳤다.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에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자유가 주어졌다. 더욱이 율법 자체는 은혜의 수단이다. 또 다른 반(反)펠라기우스적인 논문인 〈펠라기우스의 두 서신에 대한 반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파의 주장 즉 은혜가 인간에게 세 단계로, 다시 말하면 처음에는 자연의 창조에 의해, 다음에는 율법에 의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고 한 주장에 대하여 비평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율법이 은혜를 실어 나른다는 점을 부정하면서 은혜는 인류를 율법의 실행자로 만들기 위해 주어졌으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온다고 주장했다. (570.1)
 B. 중세의 사조(思潮)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중세 시기의 교회를 지배했으나, 중세의 중기(AD 1000-1250년경)의 끝에 이르러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년)의 저술이 그리스도교 신학을 새로운 방향2로 이끌었다. 그는〈율법에 관한 논설(Treatise on the Law)〉에서 영원한 율법이 보편적 도덕률의 원천인 자연법을 포함한 모든 율법의 근원에 깔려 있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자연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법, 특별히 십계명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그 안에 명백하고 상세하게 삶의 길을 보여 주셨다. 토마스에 따르면 복음의 법은 하나님의 법의 정점인데, 이는 하나님의 십계명은 사랑하는 것이며 더 광범한 “완전한 권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고는 십계명과 같은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지는(share) 않지만, 그 목적은 더 큰 완전을 추구하는 자들이 영원한 행복을 더 쉽게 달성하도록 해준다. (570.2)
 C. 종교개혁
 개혁자들은 성경을 통해 복음을 새롭게 관찰하게 되었으나 율법에 관해서는 명백히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던 중세의 특징들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했다. 마르틴 루터(1483-1546년)는 율법을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의 많은 부분은 가정이나 국가와 같은 시민 기관을 통하여 이해하게 되는 자연법을 통하여 인지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율법의 신학적 기능이 뒤따라온다. 루터가 생각한 율법의 기능은 인간 편에서는 사람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요, 하나님 편에서는 그의 진노를 일깨우는 것이다. (570.3)
 루터는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았다. 그 차이는 사람의 단순한 이해를 넘어선다. 즉, 복음이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예”인 반면 율법은 죄 많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니오”라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 사이의 이런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루터는 칭의, 예정 그리고 윤리학 등 전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그가 율법을 거부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볼때 율법은 여전히 죄인이면서 의롭게 된 죄인을 지켜주며, 죄인이 자기의 절망적인 곤경을 인정하게 만든다. 은혜는 그 답을 제공한다. (570.4)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루터는 율법에 대하여 죽은 그리스도인에게 사실상 율법 전체 즉 의식법과 도덕법은 “전적으로 폐지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남아 있으며 육신은 그 율법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루터의 주된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였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양심 안에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만 육신 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데 그 이유는 육체 안에서는율법이 기승을부리기 때문이다. (571.1)
 루터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율법은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불의한 자들을 위한 목적도 있다. 그것은 죄인들을 규제 아래 두어 그들의 악한 행동을 제어한다. 그리스도인들도 본성적으로는 경건한 이가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율법에서 유익을 얻는다. 더 나아가 율법은 죄를 깨닫고, 죄에 저항하는 법 등 그리스도인 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571.2)
 다른 사조(思潮)들 역시 종교개혁에서 두드러진다. 울리히 츠빙글리(1481-1531년)는 다소 사회주의적인 견해(social views) 보였고, 장 칼뱅(1509-1564년)은 오늘날 복음 운동의 탁월한 개척자로서 기억된다. (571.3)
 츠빙글리는 율법을 “오로지 하나님의 뜻의 현현으로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뜻”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들은 “율법에 따라 저주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신자에게는 율법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데,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 역시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형식을 지배하는 율법에서 자유롭다. 예수께서 그것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 회심 시에 신자는 “자유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율법과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은 폐지되었다. (571.4)
 칼뱅은 율법을 인간 양심에 기록된 자연법과 기록된 율법의 두 관점에서 언급했다. 기록된 율법은 완전한 정의와 완전한 삶에 관한 교훈을 준다. 율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데,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우리가 그의 이상을 성취하지 못함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율법을 성취한다고 해서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닌 것은, 우리 자신의 행함에는 아무런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죄를 제거함으로써 온다. 동시에 율법에는 몇 가지 기능이 있다. 즉 율법은 죄인을 기소하고, 신자들을 교훈하고, 인간의 사악함을 드러내고, 은혜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께로 이끌며, 불의한 개인들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의를 보여 주며,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심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신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것이(1)하나님의 공의를 가리켜서 모든 불의와 죄를 깨닫게 하고,(2) 인간의 오만함을 무너뜨려서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며, 오직 그의 은혜를 확신하게 하고,(3)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즉 죽음을 선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보면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하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께 받아들이실 만한 일들과 주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571.5)
 종교개혁을 되돌아볼 때는 언제나 급진적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그 지도자들을 급진적 개혁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주요 개혁자들에게 거절당한 개혁의 한 진영을 대표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영향력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의 개혁자 콘라트 그레벨은 루터의 개혁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으며, 그의 개혁에 비평적이었다. 그는 돌비에 새겨진 율법보다는 심비(心碑)에 새겨진 율법의 중요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급진적 개혁자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능한 발타자르 후브마이어는 그가 일컬은 대로 율법의 “구별 가능한 목적들”, 곧 육신에 대한 파멸의 위협, 죄를 거스르도록 해주는 도움과 증언 그리고 경건의 길을 가르치는 교사에 대해 언급했다. (5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