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특히 메시야의 초림을 200년도 채 남기지 않은 기원전 2, 3세기 동안 팔레스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헬라 왕국들인 시리아와 이집트의 싸움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페허로 만들었으며, 특히 헬라문명의 광신자(狂信者)인 북방의 시리아(셀루쿠스 왕조)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에 의해 헬라화를 강요당했다. 매력적인 헬라문명에 압도되어 그토록 보수적이었던 유대인들은 앞을 다투어 헬라의 언어, 관습, 의복, 제도를 채택했으며
심지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까지 바뀌어, 여호수아는 야손(Jason)으로, 엘리아김은 알리키무스(Alicimus)등으로 불리워, 선민의 특성은 극도로 위협받았다. 히브리 신앙은 진부(陳腐)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예루살렘에는 올림픽의 본산인 헬라의 체육관이 세워졌고, 나체로 경주하는등 스포츠의 공세는 대단하여, 심지어는 성전의 제사장들도 성소봉사보다는 운동 경기에 더욱 매력을 느낄 정도였다.
SDABC, vol. 5, 29. (216.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