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11 장 세상역사의 세 번째 대요(단 10, 11장)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우리는 일견 산란(散亂)하고 혼잡(混雜)하게만 보이는 세계 역사에, 분명한 방향(方向)이 있고, 확실한 의미가 있으며, 뚜렷한 목적이 있음을 거듭 확인해 왔다. 다니엘 2장에서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세상 역사를, 7장에서는 선악의 대쟁투에 직결되는 이러한 정치와 종교의 상관(相關)에 의한 측면을, 8장9장에서는 세상 역사의 핵심이요 내용인 인간의 구속(救贖)이 성소를 중심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펴보았다. (216.1)
 이제 마지막으로 10장에서 12장까지의 계시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계시처럼 상징이나 표상에 의하지 않고, 곧 바로 자의적(字義的)으로 상설(詳說)하여 모든 것을 종합하고 결론지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양날 선 칼처럼, 찔러 쪼개듯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할 뿐만 아니라, 지으신 만물은 물론 개인과 세상의 장차 이루어질 역사까지도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됨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216.2)
 그리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벧후 3:11)라는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질문에 대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며,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라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6.3)
 I. 세상 역사의 배후와 위기(10장)
 10장의 내용은 11장의 서론이 되고 있어서, 실제로 10장11장은 결부(結付)돼 있으며 12장은 그 결론이 되고 있다. (216.4)
 가. 계시의 연대 및 배경
 「바사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단 10:1). (216.5)
 가) 연대
 다니엘이 받은 마지막 계시인 10-12장의 계시는 페르샤왕 고레스 3년, 즉 기원전 535년 경(536/535 BC)에 있었다. 이 때쯤 다니엘은 88세 가량의 고령이었으며, 이 계시는 그가 3주일 간 슬퍼하며 절식하고 난 뒤인, 고레스 3년 정월 14일에 있었다. 다니엘이 사용한 역서(曆書)가 가을에 신년이 시작되는 유대력이면 535 BC 4월 23일경이 되고, 봄에 신년이 시작되는 바벨론이나 페르샤 역서이면 536 BC 4월 23일경이 된다. 다니엘서 주석, 250. Thiele, 120. (216.6)
 나) 배경
 기원전 535년 경이라면 이미 2년 전 쯤에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일부 유대인들이 고레스의 석방령으로 귀국한 때였다(대하 36:21-23, 스 1:1-3). 그런데 왜 이 때까지 다니엘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한 고국, 특별히 예루살렘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을까. 틀림 없이 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가 국가의 중임(重任)을 맡고 있으면서, 동족들을 위해 페르샤 궁중의 배후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쯤 해방의 노래를 부르며 회복돼가는 예루살렘을 위해 시온의 찬가(讚歌)라도 불러야 할 그가 왜 세 주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슬픔에 잠겨 있었을까? (216.7)
 당시의 예루살렘의 형편과 페르샤 궁중의 분위기가 이에 대한 대답이 될만하다. 우선 고레스의 석방령으로 귀국한 포로의 수는 그냥 남아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5만명도 못되는 소수였고(스 2:64),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대로 안정이 된 포로의 때에 그대로 정착(定着)할 셈이었다. 게다가 돌아간 사람들은 벽두부터 안팎의 난관에 부딪혀 돌아간지 2년이 되었어도 성전의 재건에 착수하지 못한 채였다(스 3:8). 특히 사마리아인들의 훼방은 심각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고레스의 시대로부터․․․의사(議士)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沮戱)”하기까지 했다(스 4:5). (216.8)
 유대인들이 역대에 이름난 반역적인 민족임을 들어,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을 허락한 고레스의 정책을 번복시키려는 거짓 고발들이 페르샤 궁중으로 날아들었다. 고레스의 마음은 뒤숭숭해졌으며,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자신의 관용책(寬容策)에 대해 회의와 우려가 높아져 갔다. (216.9)
 이러한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感知)한 다니엘은, 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영광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은 2년여 전에 받은 9장의 계시를 통해 그 동안 그가 염려해 온 포로의 석방과 2300 주야의 관계는 깨달았지만, 동족 유대인에게 배정된 70주일(490년)기간 동안에 메시야가 배척을 당하고 그 결과로 또 다시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케 하는자 ”에 의해 훼파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다시금 미궁(迷宮)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또 다시 하나님의 성소와 백성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짓밟힘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216.10)
 이러한 착잡한 상황에서 88세의 고령의 다니엘은 다시 3주간 계속된 금식기도를 시작했으며, 그의 기도는 마침내 들으신 바 되어(10:12) 저번에도 나타났던 계시의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선지자와 왕, 545. (216.11)
 그 결과로 다니엘은 그가 받은 계시에 대해 이제까지 가졌던 좁고 피상적인 견해를 벗어나 인간 역사의 배후(背後)를 꿰뚫어 통찰(洞察)하는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어, 비로소 “큰 전쟁,”“ 선악의 대쟁투”의 진상(眞相)을 봄으로써,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닫게 된 것이다 (10:1). (216.12)
 나. 기도의 응답
 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
 티그리스(Tigris)강의 옛 이름인 아카드어의 “이디글랏”(Idiglat)에서 온 말이다. 힛데겔(Hiddekel) 강변을 따라 수행원들과 함께 거닐며, 아마도 유월절이 됐어도 제대로 준수되지 못하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던 때 받게 된 이 계시에서 다니엘은 3주일의 금식기도 끝에 마침내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페르샤의 땅에 임하시는 미가엘 곧 그리스도의 혁혁한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특권을 누림과 동시에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접할 때 언제나 나타내는 육신의 반응을 나타내며 기력을 잃고 말았다. 이때 다니엘이 잠시 뵌 분이 그리스도였음은 SL, 50, GC, 470, 471. , 문맥에서도 분명하거니와, 밧모섬에서 요한이 계시 가운데 만나 뵌 그리스도와 같은 분으로 묘사되었음을 다음 성경절들의 비교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216.13)
◦ 인자 같으신 분 (단 10:5 — 계 1:13)
◦ 흰 옷(세마포)를 입으심 (단 10:5 — 계 1:13)
◦ 정금 띠를 두르심 (단 10:5 — 계 1:13)
◦ 횃불 같은 눈 (단 10:6 — 계 1:14)
◦ 빛난 놋같은 팔과 발 (단 10:6 — 계 1:15)
◦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단 10:6 — 계 1:15)
(2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