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7 장 재림징조들의 본질과 기능
 믿는 자에게는 천재(天災)나 인재(人災)가 실망의 이유가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자신의 통제하에 이루시고 계신다. 달갑지 않는 일들이 예상될 것이며, 그 일들이 격렬해 지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드라마를 끝내시기 위해 속히 오실 것임을 보여 줄 뿐이다. (105.2)
 회개를 촉구함. 재림의 징조는 또한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촉구하는 기별을 가지고 있다. 의심이 많고 반역적인 불신자들은 어떤 징조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대의 징조를 구별하지 못하는 그런 백성들을 꾸짖으셨다(마 16:3; 막 8:11). 그들에게 있어서 징조들은 단지 자신들의 정죄를 증가시켜 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의 징조가 전달하는 기별에 반응을 보이는 백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재난, 불법, 군사적 충돌을 듣거나 보며, 복음의 능력에 의한 변화된 삶을 살게 될 때에, 그들은 의미를 찾고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105.3)
 많은 사람들이 포로 수용소에서의 억류, 전쟁으로 인한 연인의 실종, 회오리 바람, 지진 또는 범죄 행위 등과 같은 재난의 경험을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었다. 그런 경우 징조는 그들을 반성하게 하고, 행위의 변화가 있게 하고 그리고 주님께 위탁하도록 하였다. 징조는 회개와 구원으로 죄인을 부르는 예언적 역할을 성취한다. (105.4)
 그러므로 재림 징조의 중요 역할은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쟁투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계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믿는 자들은 전쟁을 끝내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열렬히 기다리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그 같은 징조들에 의해 천재나 인재에 의해 파괴될 수 없는 영적인 실체를 찾으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105.5)
 결론
 본 장에서는 재림 징조의 성격과 기능을 살펴 보았다. 우리는 그것들의 성격이 일반적으로 시기를 정하는 선정주의(病情主義)를 저지시키고 끊임없이 준비하도록 용기를 주기 위해 의도된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105.6)
 재림 징조의 역할은 4중적이다. (105.7)
 첫째, 그것들은 각 시대에 있는 신자들의 소망을 고양시키고 믿음을 강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105.8)
 둘째, 그것들은 신자들이 주님의 강림에 의해 실현될 구속의 완성을 끊임없이 바라보도록 지시한다. (105.9)
 셋째, 그것들은 계산이나 예측을 하지 말고 끊임없이 준비하고 깨어있도록 용기를 준다. (105.10)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쟁투를 드러낸다. 이 계시는 쟁투를 끝내실 주님의 임재를 열렬히 기다리도록 촉구한다. 몇 가지의 질문들이 본 장에서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 시대에는 재림의 징조들이 어떻게 성취되는가? 어떤 징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약 5:8, 9)라고 말해 주고 있는가? 이제 이러한 질문들이 다음 세 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106.1)
 각주
 1. 린제이는 무화과나무는 그리스도의 가시적 강림의 대략적 날짜를 추산하는데 필요한 “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는 무화과나무의 첫 잎사귀가 돋아나는 데서 시간의 단서를 찾는다. 그는 그것이 1948년 5월 14일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국가 회복으로 해석한다. “그 날 유대 국민들은 혹독한 박해를 받은 거의 2천년의 유랑 후에 다시 한 국가가 되었다.” 마태복음 24장 34절“이 세대”를, “팔레스틴 땅에 다시 복귀한 이스라엘(32절의 무화과나무)을 보는 세대”로 해석함으로써 린제이는 1970년에 이렇게 예견하였다. “1948년부터 40년 내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The Late Great Planet Earth 〔Grand Rapids, 1970〕, pp. 53–54 ; W. Ward Gosque, Future Fact ? Future Fiction ? Christianity Today 21〔April 15. 1977〕, p. 40).

 2. 밑줄친 부분 강조.

 3. 토랜스(T. F. Torrance)의 Kingdom and Church(Edinburgh and London, 1956), p. 20에서 인용함.

 4.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징조들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된 시간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지적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다(Racing Toward Judgment〔New York, 1976〕, p. 138).

 5. 예를 들면, 마 1:23; 2:6, 18; 3:3; 4:4; 6, 15; 11:10; 12:18~19; 13:14~15, 35; 21:5을 보라.

 6. 단 9:24~27에 근거해서 메시야의 오실 시간을 결정하려는 고대 유대인들의 시도에 대한 학문적이고도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서 벤 지온 바콜더(Ben Zion Wacholder)의 “Chronomessianism:The Timing of Messianic Movements and the Calendar of Sabbatical Cycles,” Hebrew Union College Annual 46(1975), pp. 201ff 참조하라.

 7. Anthony A. Hoekema, The Bible and the Future(Grand Rapids, 1979), p. 133.

 8. W. Ward Gasque(. 1), p. 40.

 9. 로버트 주이트(Robert Jewett)는 진실된 삶은 예기치 않은 것들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예수의 비유들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우리들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는 대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는 준비와 열정적인 기대감을 가르치고 있다(Jesus Against the Rapture Seven Unexpeded Prophecies〔Philadelphia, 1979〕, p. 30). (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