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7 장 재림징조들의 본질과 기능
 위에서 열거한 증언들은 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림의 징조가 그들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고 있었다는 공통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한 확신을 그 당시의 다른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인 발전에서 이끌어 내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100.2)
 이 사실은 특별한 징조들이 어떤 주어진 때나 혹은 다른 역사적 시기에 성취되고 있다고 간주할 어떤 확고한 법칙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 바울이 시대의 징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요한이나 후에 루터, 그리고 그대와 나에게 인상을 주었던 똑같은 사건이 아닐 수도 있었다. (100.3)
 과거의 실망들. 어떤 사람들은 재림의 징조들을 동시대화하는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들이 과거에 실망스러운 것으로 입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상상적인 예언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고자 하는 잘못된 시도들이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한 물의를 일으키는 예언들이 재림의 소망에 대한 믿음을 와해시켜 왔고 또 그리스도의 실제적 오심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100.4)
 하나님의 장래의 신비의 베일을 걷어 올리려는 잘못된 시도들은 재림의 징조에 대한 합법적인 동시 대화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은 확실한 징조들에 의해 유지될 때만이 생생한 기대로 남게 될 것이다. (100.5)
 하나님의 지혜의 표. 이 결론은 분명히 린제이와 같이 재림의 징조를 단지 재림 직전에 일어날 독특한 사건이지 그리스도인의 전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는 예수님 자신이 초기에 언급하신 것처럼 자신의 임재의 징조를 직접적으로 그의 제자들과 그의 시대에 관련시키므로 동시대화 하셨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100.6)
 더 나아가 각 시대에 어느 정도의 성취를 발견할 수 있는 징조들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재림의 징조들이 전 역사를 통해서 “싸움은 길지 않을 것인 바, 오늘은 전쟁의 아우성이지만 내일은 승리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라는 확신으로써 신자들이 고난과 고통을 직면할 수 있게 하지 않았던가? (100.7)
 5. 재림 징조의 증대
 그리스도인의 전 역사를 통해서 재림의 징조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그것들이 더욱 증대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사단의 세력들 사이의 전쟁이 우리가 재림에 더욱 가까와질수록 격렬해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배교와 불법한 자들 그리고 반역이 증가될 것이고, 고통과 박해는 “대환난”에서 절정에 달할 것이며,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이런 저런 재림 징조들의 증대는 신자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벧전 4:7)다는 확신을 준다. (101.1)
 그러므로 결론은 재림의 징조는 일반적인 성격에 속한 것으로서, 시기를 정하는 선정주의(病情主義-sensationalism)에는 실망을 주고 그리스도인의 전 역사를 통해서 최종적인 구속의 완성이 주님의 강림에 의해 달성될 것을 내다보는 신자들에게는 용기를 주고자 계획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생애를 재림 징조가 적절한지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본 장의 둘째 부분에서 재림의 징조의 중요한 네 기능을 보게 될 것이다. (101.2)
 제 2 부 재림 징조의 기능
 1. 재림의 징조는 소망과 믿음을 고양시킴
 보류된 징조들. 재림 징조의 첫째 주요 역할은 신자들의 소망을 고양시키고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징조들과 믿음은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는 징조를 보는 사람의 신앙이나 아니면 불신앙의 자세이다. 그리스도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 12:39)로부터 징조를 보류하셨는데,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징조도 의심하고 반역적인 마음속에는 믿음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101.3)
 주어진 징조들. 그러나 징조들은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화시키고 또 소망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까닭에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증거로”(행 1:3) 자신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 그러한 증거들은 믿음을 강화시켰다. 신앙 또는 불신앙의 자세는 재림 징조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한다. 불신자에게는 징조가 의미없는 바, 이는 두드러진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을 징조들로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자들에게는 징조가 의미있는 바, 그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완성시키시기 위해 일하시고 계신다는 일관된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림의 징조가 신자의 믿음을 어떻게 강화시키는가? 다음의 연속되는 부분들이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101.4)
 2. 재림의 징조들이 구속의 완성을 지적함
 확신감. 재림 징조의 두번째 중요한 역할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실현될 임박한 구속의 완성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유추(類推)를 사용하자면 우리가 재림의 징조를 고속도로의 번호나 이름이 적혀 있는 고속도로 표시판(Highway Markers)에 비유할 수는 있으나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자세히 기록하는 고속도로의 이정표(Highway Mileposts)는 아니다. (101.5)
 필자가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여행을 할 때 본인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94번 인터스테이트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인터스테이트 94번 표지판이 나타날 때마다 본인이 올바른 목적지의 고속도로에 있다는 것을 재확신하게 된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역사의 과정에서 재림 징조들의 빈번한 발생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을 향한 올바른 길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재확신시키는 구실을 해 왔다. (102.1)
 진행 의식. 재림의 징조는 신자들에게 천국을 향한 올바른 길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행의 끝에 거의 다 이르렀다는 확신을 준다. 그러나 “가깝다”는 것은 결코 월(月) 또는 해(年)에 의하여 정의되어질 수는 없는 바,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징조들이 고속도로의 팻말과는 같으나 결코 고속도로의 거리 표지판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102.2)
 재림 징조의 나타남을 보는 신자는 비록 자신이 종점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여행의 끝에 점점 더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계속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재림 징조는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꼭집어서 말하지 않고 그것의 가까움을 가리킨다.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다(막 13:32).4 (102.3)
 결론적으로 재림의 징조는 신자들로 하여금 확실성과 임박성, 즉 올바른 길로 여행하고 있다는 확실성과 주님과 만날 여행의 종착점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확실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102.4)
 3. 재림의 징조는 끊임없는 준비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