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낯설은 시골길을 운전하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지도상 당신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이정표 또는 도로 표지판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시야에 알만한 표지가 없었다. 기대했던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으며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서 오는 절망감을 묘사하기란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98.1)
알아볼 수 있는 표시판은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소망을 고취시키는 데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여행하든지 아니면 믿음으로 하늘로 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여행하든지 간에 진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소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징조(signs)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공관 복음서에서 가장 길게 기록된 감람산 설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다시 오심을 예시하는 여러 특별한 징조들을 주셨다. 몇몇의 신약 기자들 역시 재림 전에 있을 어떤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자주 “재림의 징조들”(Advent signs)이라고 언급할 것이다. (98.2)
여러 세기에 걸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서 재림의 징조가 성취 되기를 고대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할 린제이(Hal Lindsey)와 같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독특한 사건의 시간표를 지적하는 재림의 징조들을 연구했다. 예를 들어 린제이는 무화과나무가 움을 틔우는 그리스도의 말씀(마 24:32~35) 속에서 재림의 대략적인 연수를 계산하는 실마리가 되는 때, 즉 1988년을 찾아낸다.1(98.3)
본 장의 목적. 재림의 징조를 연구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종말의 시간표를 끌어내려고 했던 몇몇 선의의 그리스도인들의 시도는 재림의 징조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 이중적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이 두 질문은 본 장에서 우선 재림 징조의 성격과 역할을 다루는 가운데 제시될 것이다. (98.4)
본 연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전조(前兆)에 대한 합당한 사용과 인식을 함양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98.5)
제 1 부 재림의 징조들의 성격
1. 재림의 징조의 일반적 성격
감람산 설교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마지막 때의 징조들(적그리스도들, 전쟁, 기근, 범세계적 복음의 선포 그리고 환난을 포함하고 있음)은 사전에 날짜를 정확히 정하거나 고정될 수 없는 총괄적인 징조들이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지진이 샌프란시스코를 완전히 파괴하고, 기근이 에디오피아나 캄보디아에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게 할 때, “그제서야 나의 강림이 가까이 이른 것을 알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98.6)
일관적인 상관성.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어느 시대에나 어느 정도의 성취를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성격의 징조를 선택하셨다. 이에 대한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각 시대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에 대한 재확신을 경험하기 위해 재림의 징조를 볼 필요가 있다. (98.7)
하나님의 장래로부터 신비의 베일을 벗기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에 행해진 잘못된 시도들은 재림의 징조들을 합법적으로 동시대화(同時代化)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속히 오심에 대한 믿음과 소망은 그것이 위안을 주는 징조들에 의해 지탱될 때만이 생생한 기대감을 유지할 수 있다. (99.1)
2. 재림 징조의 동시대적 적용
재림의 징조를 동시 대화(contemporizing)하는 것의 정당성을 재림의 징조를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모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두려워 말라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 그러므로 너희가 ∙∙∙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거든 ∙∙∙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 6, 9, 15, 25, 26, 33, 42).2(99.2)
분명히 “너희”(You)는 그리스도 당시의 열 두 제자 뿐만 아니라 미래에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도들이 재림의 징조가 성취되는 것을 보는 첫번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신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징조들이 각 시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과 관련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99.3)
3. 재림 징조의 동시대적 이해
바울의 인식. 신약 신자들은 재림 징조의 동시대적인 적용을 이해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당시에 알려진 세상에 대한 복음 선포와 “이미 활동하고 있는”(살후 2:3, 7:2; 딤후 3:1~5) 불법과 반역과 같은 징조 가운데서 “때가 단축하여”졌다는 증거들을 보았다. “밤이 지나고 낮이 가까웠다”(고전 7:29, 31; 롬 13:12). (99.4)
베드로의 인식.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게 될 “불시련”에서(벧전 4:12) 아마도 네로의 박해에 대한 암시—“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벧전 4:7) 징조를 보았다. (99.5)
요한의 인식. 요한은 그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적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메시야성과 성육신을 부인했던 거짓 교사들(요일 4:2, 3) 가운데서 “이것이 마지막 때”(요일 2:18)라는 징조를 인식했다. 그는 이러한 결론을 “ ∙∙∙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요일 2:18)는 말에서 분명하게 이끌어 낸다. (99.6)
야고보의 인식. 야고보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 받지 못했거나 때로는 탐욕스런 부유한 지주(地主)들에 의해 전혀 지불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경험한 사회적인 불의를 재림의 징조로 간주했다(약 5:1~9). 그는 “주의 강림이 가깝고 ∙∙∙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기”(약 5:8, 9) 때문에 인내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99.7)
그리스도인들의 세기들. 여러 세기에 걸쳐서 바울,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와 같이 당대의 어떤 사건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알려 주는 전조(前兆)를 보아온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루터(Luther)가 1530년에 자신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끝마치기 위해 서둘러 일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일이 끝나기 전에 다시 오시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기록하기를 “우리가 세속적인 것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확실하다. 모든 것은 이루어졌고 성취되었다. 즉 로마제국은 끝났으며 터어키는 그 절정에 다달았고 찬란한 교황권도 쇠하여지고 있으며 세상은 마치 완전히 부서지고 파괴될 것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금이 가고 있다.”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