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목하듯이 이런 감정들은 후기 시대에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투린의 막시무스는 이교의 태양의 날을
“일찍이 부활하셔서 그날을 영화롭게 해주신” “의의 태양이신 분”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101) 이와 유사하게 유세비우스도
“구세주의 날은 ∙∙∙ 그 명칭이 빛으로부터 유래하고 있으며, 태양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102) 초기 문헌들 속에서는 이렇게 대담하게 시인하는 내용들 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교부들은 근래에 도입된 제도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마지못해서 일요일의 도입과 그 상징적 의미의 채택이 만족할만하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임을 시인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축제(날짜, 촛불, 츄리, 선물 등)가 이교의 무적의 태양신 탄생(
Natalis Solis Invicti) 축일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인정한다. 왜 그런가? 의심할 것 없이 그렇게 인정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탄생 대신에 태양신 탄생을 기념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추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교주의로부터 개종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교의 날짜와 상징들을 차용하였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실제로 나타났던 것처럼) 그들이 최근에 포기했던 이교의 관습들로 쉽게 빠져들도록 조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부들이 적어도 초기에 예방 조처로 기독교의 일요일과 이교의 태양의 날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입증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에
“기독교화”된 이교의 축일이 기독교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이교도화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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