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서 주일로 제8장 태양 숭배와 일요일 준수의 기원
 태양의 날과 일요일 준수의 기원
 기독교의 일요일과 이교도들이 존경하는 태양의 날 사이의 연합이 유세비우스(A.D. 260-340년경)시대 이전까지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초기 교부들이 그리스도를 종종 “진정한 빛,” “의의 태양” 등으로 언급하기는 하고 있지만, 태양의 날이 가지는 상징성을 가지고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유세비우스 이전에는 만들어 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에 반해서 유세비우스는 유대의 안식일이 기독교의 일요일로 대체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빛과 태양, 태양의 날 등의 모티프를 몇 차례에 걸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편 91편 주석(Commentary on Psalm 91)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37.1)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동맹으로 안식일의 의식을 빛의 소생으로 대체시켰다. 그분께서는 주의 구원의 날, 즉 빛의 첫 날을 통해서 우리에게 참된 휴식의 한 전형을 주셨다. ∙∙∙ 6일 휴식 후에 모임을 갖는 시간인 첫째 날이자 진정한 태양의 날인 이 빛의 날에 우리는 거룩하고 영적인 안식일을 지킨다 ∙∙∙ . 우리는 안식일을 위해 규정된 모든 것들을 주의 날로 옮겼다. 그 날은 보다 권위 있고 보다 고귀하게 여겨지는 최고의 날이며, 유대교의 안식일보다 더 존경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날은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이 세상 창조시의 바로 그 날이다. 이 날은 또한 의의 태양이신 분께서 우리의 영혼들을 위해 부활하신 날이기도 하다.81)
(337.2)
 일요일 준수에 대한 두 가지 기본 논거를 빛의 창조와 의의 태양이신 분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으로 설명한 유세비우스의 설명은82) 히에로니 무스(Jerome, A.D. 342-420년경)에 의해서도 거의 축어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에 그 날이 이교도들에 의해 태양의 날로 불려진다면, 우리도 기꺼이 그것을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날은 세상의 빛이 나타난 날이며 의의 태양이신 분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83) (337.3)
 투린의 막시무스(Maximus of Turin, A.D. 400-423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설교에서 우리는 이 논거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음을 발 견하게 된다. “태양의 날”이라는 바로 그 명칭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고지(告知)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338.1)
우리는 주님의 날을 존귀하고 신성한 날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 날에 구세주께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악의 세계의 어둠을 정복하셨고, 부활의 영광을 살짝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동일한 날을 이교도들이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인데, 일찍이 부활하신 의의 태양께서 그 날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84)
(338.2)
 일요일 준수의 의미와 그 동기가 태양의 날에 대한 상징과 명백한 관련이 있음을 설명해주는 이러한 유사한 자료들은 일요일제도가 상당히 정착된 시기 이후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진술들이 교회가 후기에 인정한 사실들을 나타내주고 있다면, 그것들은 태양의 날이 일요일 준수의 기원에 미친 영향력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합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므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즉, 콜슨(F. H. Colson)이 인지했듯이 “후기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록들은 비록 그것이 기록되어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의 것들로 인해 더 잘 설명되고, 더 깊이 고려될”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85) (338.3)
 밀라노 칙령(A.D. 313)이 반포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의 비난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신념과 관습들을 변호할 수밖에 없는 비 합법적인 소수들이었음을 잊지 말자. 우리가 주목했듯이, 테르툴리아누스는 비록 그리스도인들과 이교도들 모두에 의해서 지켜졌던 태양의 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인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기독교의 일요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태양 상징을 사용하기를 피했다. 첫 번째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신 숭배자들이라는 이교도들의 기소(그가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는 기소 내용임)를 지지해줄 것이기 때 문이며, 두 번째는 이교 축일의 영향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미치고 있음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그의 논문인 “우상숭배에 대하여”(On Idolatry)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형제들 중에서 그것들[즉, 이교 축일들]이 지켜지고 있으니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 라고 외치고 있다.86) 그러므로 일요일 제도가 여전히 미숙한 관례로 존재했던 시대에 태양의 날을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와 연관시키려 했던 시도는 그것이 어떤 시도였든지 간에 여전히 이교의 영향을 받기 쉬운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쉽게 오해되어졌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이교도들의 기소들이 사실임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1세기 이후에 일요일 준수가 잘 정착되었을 때 교부들 중 적어도 몇몇은 주저하지 않고 기독교의 일요일을 “진정한 태양의 날”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87) 이 명칭을 내세운 것이 “새로운 변증 기술의 하나”로 여겨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은연 중에 가지고 있던 인식이 스스로의 기록으로 드러나게 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88) (339.1)
 심지어는 태양과 빛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태양의 날과 그것의 상징성에 호의적으로 기울어지게 하였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참된 빛, 의의 태양으로 이해했던 풍부하고 오래된 전통이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89) 예를 들어 말라기 선지자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4:2).90) 침례 요한의 부친인 사가랴는 “돋는 해(ανατολή)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겠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였다.(눅 1:78-79). 요한도 그의 복음서와 계시록에서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빛,” “어둠에 비취는 빛”(요 1:4-5), “참 빛”(요 1:9), “켜서 비취는 등불”(요 5:35)이라고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세상의 빛”(요 8:12, 9:4-5)으로 밝히고 있으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빛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요 12:34) “빛을 믿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새 땅에서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시”기 때문에 햇빛이 쓸 데 없을 것이라는 보증으로 계시록은 종결되고 있다(계 22:4).91) (339.2)
 두 가지 별개의 전통이 존재하였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빛과 태양으로 결합시켰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을 특별히 태양의 날에 존경했던 이교도의 전통이었다. 이 두 전통이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사상적으로 잘 융합되었다. 이 사상적 융합이 진행 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태양을 존중했었고, 이제는 유대교의 안식일로 부터 자신들을 구별시킬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매주 예배를 위해 태양의 날을 채택하는 경향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태양의 날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기독교 사상에 존재하고 있던 의미를 잘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로마사회 내에서는 전날인 토성의 날 대신 태양의 날이 가치 있는 날로 여겨졌기 때문에 기독교사회에서도 그것이 아마도 더 구체적으로 고려되어졌을 것이었다.92) (340.1)
 하지만 분명하게 주장되어져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의 날을 도입한 것은 이교의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숭배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것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테르툴리아누스의 단호한 부정이 암시해줌),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 날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것과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은 하나님의 행위를 기념하기 위한 의도에서 그 날을 도입한 것이었다. 그 두 사건 모두는 태양의 날에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태양과 관련된 풍성한 상징적 의미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공포되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 들은 인지했다. (341.1)
 우리가 이미 인용한 글을 통해서 유세비우스는 이것을 잘 예증해주고 있는데, 그는 태양의 날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록한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이 세상 창조시의 바로 그 날이다. 이 날은 또한 의의 태양이신 분께서 우리의 영혼들을 위해 부활하신 날이기도 하다.”93) 빛이 창조된 것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태양의 날과 연관시키는 유세비우스의 이 표현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이해해오고 있던 사실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목해 보았듯이 거의 2세기 전에 유스티노스마르튀르는 빛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태양의 날과 함께 관련지었다.94) 왜 그렇게 하였는가? 아마도 이 세 가지(빛의 창조, 그리스도의 부활, 태양의 날)가 첫째 날의 태양—빛과 연관된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41.2)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떻게 떠오르는 태양과 연관되었는가?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그것은 분명히 태양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로 하나님을 묘사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 전통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유스티노스는 그리스도께서 “태양의 광선 보다 더 열정적으로 빚을 제공하시는 분이시”95)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몇 개의 구약본문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기별을 선포하기 위해서 제공한 효과적인 상징들과 일치시킬 수 있는 태양에 관한 일반적인 관념들로 인해 이 주제는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예를 들자면 사르디스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A.D. 190년경)는 침례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서 태양과 별들이 대양 속에서 날마다 침례를 받으며 어둠이 물러가도록 그것들이 날마다 떠오른다는 일반적인 관념을 활용하고 있다.96) (341.3)
태양이 별들과 달과 함께 대양 속에서 그 자신을 씻고 있다면, 그리스도 역시 요단강에서 스스로를 씻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늘들의 왕이시며 창조의 주관자이시고, 동방의 태양이신, 하데스(음부)의 죽음에서와 세상의 유한성에서 나타나신 그분! 하늘로부터 떠오르신 유일한 태양이신 그분!97)
(342.1)
 그리스도의 부활을 태양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초기의 암시는 이그나티우스의 “마그네시안에게 보내는 서한”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우리가 결정을 내렸음을 언급하면서 그는 “그것으로(에 의해) 우리의 삶은 또한 그와 그의 죽음을 통하여 소생하였다”(9:1)라고 덧붙인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가 “죽은 자의 부활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사(ανίστημι)가 아니라, 하늘의 물체들이 떠오르는 것에 일정하게 적용되는 동사(ανατέλλω)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98)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 여겨야 하는가? 보테(B. Botte)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떠오르는 별의 이미지로 진술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그나티우스가 일요일에 부과된 태양의 날이라는 명칭을 신중하게 암시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솔한 것일까?”99) (342.2)
 그리스도의 부활을 묘사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에 사용되는 동사를 채택한 것으로 보아 이그나티우스가 그 구절에서 태양의 날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주목해 보았듯이 계속된 문맥의 주제는 선지자들에 대한 것인데, 그들은 분명히 태양의 날을 준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그나티우스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태양이 뜨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 그러한 사상들이 융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다시 말해, 일요일이 태양의 날이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의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연합시키기 위해서는 그리 복잡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었다. 태양의 날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그 날에 발생한 하나님의 두 행위, 즉 첫 번째 빛의 창조와 “제 2의 창조에서의 태양”의 소생과 적절하게 일치하였다. 콜슨(F. H. Colson)은 합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343.1)
이러한 일치는 이 이교 제도 속에서 하나님의 영께서 더 나은 어떤 것을 세상에 준비하고 계셨다는 하나의 증거로 여겨질 수 있었다. 사실상 독실한 개종자는 과거 이교도 시절에 소중하게 연관을 맺고 있던 어떤 것 위에 기독교적 해석을 덧붙일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100)
(343.2)
 우리가 주목하듯이 이런 감정들은 후기 시대에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투린의 막시무스는 이교의 태양의 날을 “일찍이 부활하셔서 그날을 영화롭게 해주신” “의의 태양이신 분”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101) 이와 유사하게 유세비우스도 “구세주의 날은 ∙∙∙ 그 명칭이 빛으로부터 유래하고 있으며, 태양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102) 초기 문헌들 속에서는 이렇게 대담하게 시인하는 내용들 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교부들은 근래에 도입된 제도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마지못해서 일요일의 도입과 그 상징적 의미의 채택이 만족할만하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임을 시인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축제(날짜, 촛불, 츄리, 선물 등)가 이교의 무적의 태양신 탄생(Natalis Solis Invicti) 축일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인정한다. 왜 그런가? 의심할 것 없이 그렇게 인정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탄생 대신에 태양신 탄생을 기념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추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교주의로부터 개종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교의 날짜와 상징들을 차용하였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실제로 나타났던 것처럼) 그들이 최근에 포기했던 이교의 관습들로 쉽게 빠져들도록 조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부들이 적어도 초기에 예방 조처로 기독교의 일요일과 이교의 태양의 날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입증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에 “기독교화”된 이교의 축일이 기독교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이교도화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44.1)
 결론
 이 장에서 우리는 태양의 날이 일요일 준수의 기원에 영향을 미치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요인들이 일요일 준수가 발생했을 때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345.1)